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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 노회찬이 준 장미의 의미

3월 8일, ‘그녀에게 빵과 장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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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여성의 날’은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과 함께 변화한 여성들의 지위와 밀접히 연관된다.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변동에 따라 여성들은 가사노동 담당자에서 자본주의 체제 아래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편입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체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다.


뉴욕의 여성 노동자들은 1857년 항의 시위를 조직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했고 남성 위주의 주류사회는 가혹한 탄압으로 응수했다. 2년 후 3월, 이 여성들은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908년에는 1만 5천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시간 단축, 임금 향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면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후 1910년 제2 인터내셔널의 주도 아래 ‘매년 같은 날,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여성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의 날 행사가 제안되고 1911년 3월 19일에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 치러졌다. 이 행사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덴마크 등지에서 약 100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 뒤에 여성의 날은 1913년부터 3월 8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 2019년 한국의 세계 여성의 날 포스터.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메이데이(노동자의 날)가 우여곡절 끝에 공휴일이 된 이 땅의 역사는 ‘세계 여성의 날’에서도 비슷하게 되풀이됐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정권 시절에 이날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소수에 의해서 기념되는 행사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은 1985년에 가서야 일부 해소되면서 비로소 세계 여성의 날로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었다. 1987년의 6월항쟁을 계기로 세계 여성의 날은 그 정치 경제적 의미를 구현하는 기념일로 다시 서게 될 수 있었다. 


며칠 전에 블로그에 올릴 글을 정리하다가 미국 의회가 ‘현대 민권운동의 어머니’라는 찬사를 바친 로자 파크스(Rosa Parks, 1913~2005)를, 그리고 흑인 투표권 쟁취 운동을 시작한 셀마의 어밀리아 보인튼 로빈슨(Amelia Boynton Robinson, 1911∼2015)을 만났다. (관련 글: 피의 일요일, 셀마-몽고메리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마거릿 생어, ‘어머니가 되지 않을 권리’ 주창

▲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1883~1966)는 ‘미국 산아제한 운동’의 상징적 존재다.

이들 걸출한 여권운동의 지도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1883~1966)는 ‘미국 산아제한 운동’의 상징적 존재다. 모든 여성에게는 가족계획의 권리가 있다고 믿었던 생어는 피임에 관한 사실들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인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에 자신을 바쳤던 여성 운동가였다. 


‘낙태죄’ 찬반논란이 뜨거운 2019년의 한국에서 마거릿 생어를 떠올리는 까닭은 자명하다. 그의 삶과 투쟁은 곧 여성이 비로소 독립적 존재로 거듭나는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생어는 여성이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인식되고 ‘아이 낳는 기계’로 취급되는 폭력에 맞서 자신이 ‘자기 몸의 주인’이라는 것을 선언한 최초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마거릿 생어는 “어머니가 될 것인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뜻대로 선택하게 되기 전까지는 어떤 여성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어머니가 되지 않을 권리’를 제창했다. 그 스스로 11명의 자녀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생어는 ‘과도한 출산과 가난’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산아제한 운동에 뛰어들었다. 


피임에 대해 교육조차 금지됐던 때여서 임신은 여성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손에 놓여 있었고 원치 않게 임신하게 된 많은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 애쓰다가 죽어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의 ‘산아제한 운동’은 남성 위주 주류사회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풍속교란방지법’ 등의 탄압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1916년 산아제한진료소를 열어 여성들에게 피임법을 교육했다.

▲ 마가렛 생거가 미국에서 첫 번째 산아 제한 클리닉을 개설한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공안질서방해죄로 체포돼 노동형을 선고받으면서도 그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성병 예방과 치료를 위해 여성에게 피임기구를 제공할 권한을 의사에게 준다’는 판결을 끌어냈다. 이는 제한적이나마 여성에게 피임의 권리를 부여한 첫걸음이 됐다.


1939년 의사에게 무제한으로 ‘피임처방권’을 부여하는 법이 제정되고 1960년 생어와 과학자들은 먹는 피임약을 개발해냄으로써 산아제한 운동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 경구용 피임약의 개발로 여성들은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활동을 앞당겼을 뿐 아니라 여권 신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관습과 여성 억압에 굴하지 않았던 한 여인의 인간 승리는 여성과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기술하게 된 것이다.

▲ 마거릿 생어가 발행한 팸플릿 ‘패밀리 리미테이션’

마거릿 생어가 피임의 권리를 임신의 주체인 여성에게 돌려줬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낙태죄 찬반논란이 뜨겁다. 한국은 낙태, 즉 임신중절을 원칙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다.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의 80%가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인공 임신중절이 가능하지만, 이스라엘, 폴란드, 뉴질랜드 등은 낙태가 불법이다.

“’태아 생명권’과 ‘여성 자기 결정권’의 대립구도는 허구”

상당수 가톨릭국가에서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도 지난해 5월에는 가톨릭국가인 아일랜드에서 낙태 금지 헌법 조항 폐지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 압도적 찬성으로 낙태죄가 폐지됐다. 이 법의 폐지가 결정되자 낙태금지법 폐지 캠페인을 벌인 시민운동가는 투표 결과가 “여성을 2등 시민으로 대우하는 것에 대한 아일랜드의 거부”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한국은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낙태의 한계가 명시돼 있는데 △ 신체 질환, △ 성범죄에 의한 임신, △ 모체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며 경제적 이유로는 낙태할 수 없다. 또 위 한계에 해당하더라도 본인은 물론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 지난해 아일랜드에서 낙태죄 폐지가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되자 여성들이 환호하고 있다.

▲ “낙태는 당사자인 여성”의 권리로 확인돼야 함이 옳다는 것이다.

현재 헌법재판소에는 오는 4월 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재판과정에서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의 결정이 예정돼 있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측은 이 논란의 핵심을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충돌로 바라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 구도는 흔히 ‘국가가 태아의 생명권을 얼마나 선택적으로 적용하는지, 인구조절정책을 위해 여성의 몸을 어떻게 출산의 도구로 활용해왔는지’를 논의에서 배제해 버린다는 게 폐지 찬성 측 주장이다. 


여성계에서는 임신 중단을 논의할 때 여성의 건강을 ‘재생산권’이라고 하는 주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대립 구도만으로 낙태죄를 논의하는 게 ‘허구’라며 “’국가가 불가피하게 임신을 중단한 여성만을 처벌하는 것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현실적 문제로 낙태를 바라보면 문제는 더 명료해진다. “피임실천율도 10%밖에 안 되는데 임신하면 무조건 다 낳으라는 법은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고 “더욱이 낙태죄는 임신중절을 줄이지도 못한다”는 여성계의 지적이 그것이다. 


임신중절 수술은 90% 이상이 불법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처벌된 사례도 거의 없어 사실상 낙태죄는 “현실과 괴리된 실효성 없는 법”이다. 따라서 ‘태아의 생명’뿐 아니라 “그 생명을 넘어서 이어지는 총체적 삶까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인 여성”의 권리로 확인돼야 함이 옳다는 것이다. 4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생산적 논의를 담아내야 하는 이유다.

노회찬의 장미

▲ 장미를 들고 있는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노회찬재단

고 노회찬 전 의원은 2005년부터 매년 여성의 날에 국회 청소노동자 등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 여성 국회의원, 여성 기자 등 각계각층의 여성들에게 장미꽃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그는 가고 없지만 올 여성의 날에도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그를 대신해 ‘노회찬 장미’를 여성들에게 배달했다.


여성의 날 ‘장미’는 1912년 여성 노동운동가인 로즈 슈나이더만(Rose Schneiderman)이 “노동자는 빵뿐 아니라 장미도 가져야 한다”고 연설하면서 여성의 날의 상징이 됐다. ‘빵’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의미한다면 ‘장미’는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권리’를 뜻한다. 


노회찬은 갔지만, 그가 여성의 날에 장미 선물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여성과 여성의 삶과 권리에 관한 관심의 촉구였고 성 평등의 실현이었다. 미투 운동을 통해 달아오른 여성 인권에 대한 자각과 투쟁이 또 다른 ‘여혐’으로 이어지는 2019년을 우울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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