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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어오라는 남편, 그래서 나갔다

‘전업맘’이던 내가 돈 벌기로 결심한 이유
직썰 작성일자2019.03.10. | 193,487  view

*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책을 펴낸 엄마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서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을 나눕니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1. 남편에게 선언했다. “나, 페미니스트야”

2. “당신, 페미니즘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냐?”

source : ⓒtvN <아는 와이프>

엄마가 된다고 해서 나의 일, 경제활동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양가 부모님 도움을 전혀 받을 수도 없고, 남편 역시 매일 자정이 다 돼서야 퇴근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 양육자인 내가 다시 전일제 근무를 한다는 건 초인적인 정신력과 체력이 따라주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아이를 보육 기관에 보낸 사이 짬짬이 용돈 벌이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출산 후 5년을 보냈다.


세상은 나 같은 엄마를 ‘경력단절 여성’라고 부르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육아도 경력’이라고 외친다 한들 그건 당사자의 안쓰러운 발악일 뿐이었다. 공공기관의 문서에도 버젓이 등장하는 그 이름, ‘경력단절 여성’. 줄이면 ‘경단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몸과 마음을 모조리 내어놓은 수년간의 시간은 결코 경력이 될 수 없다는 공식 인증이었다. 게다가 언뜻 측은히 여겨주는 듯하지만 그 말엔 집에 있는 엄마를 향한 무시와 시기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래도 남편 돈으로 먹고사니까 좋은 거 아니야?”
“공부한 거 아까워 어떡하니.”
“요즘 같은 때 맞벌이 안 하고 어떻게 애를 키워?”

돈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훈계하는 말에 휩싸이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내가 느끼는 박탈감, 초조함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들여다보지 못한다. 왜 일을 하고 싶은지, 또는 왜 하고 싶지 않은지 스스로 해명하기에 앞서 그냥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중압감, 뒤처진다는 불안을 느낀다.


나도 그랬다. 사회, 경제 활동을 통해 계속 돈을 벌고 성취를 느끼고 싶었지만 갈팡질팡했다. 

‘나 혼자 육아, 집안일 다 하는데 돈까지 벌어다 줘야 해?’
‘아끼고 살면 괜찮지 않을까.’
‘남편은 한 몸 쥐어 짜내며 고생하는데 나만 하고 싶은 일을 골라도 될까?’

그러나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한계가 명확했다. 프리랜서로 했던 일은 너무도 불규칙했고, 좋아하는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기엔 보람은 있어도 성과나 보상의 폭은 각박했다.


한편 시간을 모조리 내어 아이를 돌보고 남편이 돈을 잘 벌도록 돕는다 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없었다. 남편과 아이가 이루는 성과가 나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노동만 있을 뿐 자립을 위한 어떠한 물질적 자원도 주지 못했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 본 적이 없다. 내 힘으로 능력을 인정 받았고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었다. 남편에게 경력, 연봉, 어느 것 하나 뒤져본 적이 없는데 그에게 경제적으로 의탁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왜 이번 달 카드 값이 많이 나왔냐?”, “그 냄비가 꼭 있어야 하냐?”는 잔소리는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나의 자존감은 미세하게 닳고 있었다.


마흔을 앞두고 때 늦은 진로 고민에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돈벌이, 육아, 집안일. 이 세 가지를 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예상하면서도 나는 경제활동을 갈망하고 있었다. 10년 동안 쌓았던 경력이 아까워서도, 많은 돈이 필요해서도,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나의 능력으로 버는 일정한 수익이 필요했다. 자립과 독립성, 그 자체를 위한 돈이 절실했다.

내가 돈을 벌고 싶은 이유

source : ⓒtvN <아는 와이프>
“그럼 네가 돈 벌어와!”

남편은 나와 싸울 때면 꼭 이 말을 했다. 남편이 밤 늦도록 회사 일에 집중하고 승진을 한 건 그가 ‘애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육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며, 내가 집에서 남편 몫까지 아이를 돌봐서라고 정신승리 해왔지만 ‘돈 버는 유세’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돈 버는 일은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쓸고 닦는 것보다도 ‘위대하고 대단한 일’이어서 나는 남편이 집에 오면 손 하나 까닥하지 않도록 쉬게 해 주어야 한다는 소리를 사방에서 들었다.

“어떻게 주부 주제에 일하고 온 남편을 부려먹어?”

그러나 나는 이 말이 돈 버는 자에게 생기는 권력이 아니란 걸 안다. 밖에서 일하고 온 엄마들은 쉬지도 못하고 집에서도 일을 하니까. 이건 그가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에겐 아무도 일하고 왔으니 쉬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돈 버는 남자로서 그가 누리는 가부장의 지위를 무력화시키고 싶었다. 남편이 가져다 주는 돈에 감사하며 조력이나 잘하라는 훈계를 싹둑 끊어내고 싶었다. 남편에게 나만큼 양육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당당히 가사 분담을 요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집에 있는 한 나에게 쏠리는 육아와 집안일의 무게를 덜어내긴 어려웠다. 집에서 나가야만 했다. 남편이 결코 막을 수 없으며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타당한 이유로.

“좋아, 돈 벌면 되잖아?”

나는 닥치는 대로 일을 받았고 주말마다 텅 빈 냉장고와 함께 남편과 아이를 집에 두고 카페로 출근했다. 뒷감당은 오롯이 남편의 몫이 됐다.


돈을 벌고 싶은 이유 두 번째. 돈 때문에 결혼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이유는 남편과 아이를 같이 키우고 싶어서, 서로를 동반자로서 인정해서다.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탁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결혼 생활에서 느끼는 불평등과 불합리를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때문에 참고 싶지는 않다. 남편이 내가 해주는 밥 때문에 나와 살지 않는 것처럼.


지금 남편과 나는 제법 손발 잘 맞는 육아 동료로서 연합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숙제가 끝나면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지는 미지수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과 별개로, 매일 상대의 머리카락과 때 묻는 양말을 집어 올리며 사는 생활을 평생 해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숨이 막힌다.


백세 시대이니 아이를 다 키우고 나서도 40년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 방학’을 꿈꾼다. 죽어도 미워도 같이 살아야만 하는, 통장과 노후 자금을 공유하는 운명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으로 만나고 싶다. 부부가 아니라 뜻을 공유하는 동지로서, 의지처가 되는 친구로서 관계를 설정하고 싶다. 이를 위한 1인분의 자립을 이루고 싶다. 지금부터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

source : ⓒ tvN <아는 와이프>

전업맘, 프리랜서를 거쳐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됐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근무시간을 조정한 탓에 급여가 많지 않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돈을 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정 밖에 나의 영역을 만들고 유지한다는 점이다.


내가 매달 일정한 금액을 벌자 식구들의 생계를 홀로 짊어지며 세상 비통해 하곤 했던 남편은 더 이상 나에게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네가 돈 벌어와!”라는 무엄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가 힘들어할 때면 나는 쿨하게 대꾸한다. “그만둬. 내가 책임질 테니까.” 농담인 듯 보여도 진심인 이 말에 남편은 꼬리를 내린다. 그는 실토했다. “나도 오로지 가족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건 아냐.”


나는 남편과 짐을 나누고 싶다. 혼자 전속력으로 달리기보다 다소 박자가 안 맞고 엇갈려도 같이 달리는 편이 체력 소모가 덜할 거라 믿는다. 한쪽이 잠시 쉬어도, 한쪽이 실수해도 침몰하지 않는 배를 만들어가고 싶다.


이 사회에서는 한 명이 돈을 벌고 다른 한 명이 그 사람을 돕고 보조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남편과 나도 오래도록 그렇게 생각했다. 근무시간을 조정하기 어려운 데다 육아와 가사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 부부에겐 답이 아니었다. 한 명은 소진되고 한 명은 자립 능력을 잃어 갔다.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죽도록 일하잖아.”
“당신이랑 애 잘 보겠다고 내가 집에 있는 거잖아.”

힘들게 사는 이유를 서로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우린 누구의 삶도 억울해지지 않기 위해 복잡하고 어렵고 피곤한 길을 택했다. 같이 벌고 같이 아이를 돌본다.


어떤 선택이든 대가가 따른다. 설거지는 다음 날까지 구정물에 담겨 있고, 방구석마다 머리카락 뭉치가 굴러다닌다. 남편은 아이를 보기 위해 나만큼이나 휴가를 몽땅 털어냈고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희생하지 않기 위해, 한숨 돌릴 여유 없이 집안일과 직장 일을 꾸역꾸역 해내 간다. 


우린 어디에 가닿게 될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했던 질문, 스스로 답한 과정을 누군가에게 다시 건네고 싶다. 지금도 일을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는 직장인 친구에게. 면접을 보려 했다가 포기한 전업주부 친구에게. 일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어 갈팡질팡하는 어떤 엄마에게. 나의 고민이 작은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 외부 필진 부너미 님의 기고 글입니다. (글 신나리)


**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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