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싸움에 입학식 날 유치원에서 쫓겨난 아이들

조회수 2019. 3. 6.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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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총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었다.

[취재수첩] 미세먼지 때문에 야외 취재가 꺼려지는 날이었다. 그래도 유치원 개학 연기 사태 이후가 궁금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한유총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니 영상에 담을 필요가 있었다.


혹시 몰라 택시 타고 기자회견 시간보다 한 시간 빨리 한유총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리 많은 기자는 없었다. 얼른 삼각대로 자리를 잡았다. 역시나 미리 자리를 잡지 않았으면 영상을 담지 못할 정도로 나중에는 취재 경쟁이 치열해졌다.

▲ 한유총 앞에서 열렸던 ‘정치하는 엄마들’ 기자회견 모습. 좁은 도로에 기자들이 몰려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고참 기자들이 현장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 꼭 반말한다. 1인 미디어라 기성 언론사 기자들과는 그리 친분이 별로 없다. 나를 잘 아는 기자가 없으니 ‘듣보잡’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백의 나이에 반말을 듣는 것은 감정이 상한다.


한유총의 불법 집단행동에 대한 검찰 고발 기자회견이었으니 딱딱한 이야기만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는 첫 발언부터 이번 사태를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치원이 문을 걸어 잠그고 ‘너 오지 마라.’ 왜냐하면 우리 사유재산권 지켜야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유치원으로부터 아이들이 들었습니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세상 처음 학교에 가서 입학식을 하는 유치원 첫 입학일이었습니다.”

깜짝 놀랐다. 나를 비롯한 미디어들의 유치원 개학 연기나 한유총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한유총이 가진 문제에만 집중했었다. 그들이 어떤 권력을 누리고 비리를 저지르고, 정치권과 어떻게 야합을 하는지만 관심 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말을 들어보니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아이들이었다.

▲ 기자회견 도중 진행된 아이들이 보호받을 권리의 침해를 지적한 퍼포먼스

1989년 11월 전 세계 196개국이 가입한 아동 권리협약에는 ‘공공 또는 민간 사회복지기관, 법원, 행정당국, 또는 입법기관 등에 의하여 실시되는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라고 돼 있다.


그렇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한유총의 비리가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의 권리가 침해됐다는 것이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한유총의 개학 연기 사태로 최소 23,900명의 아이가 교육권을 침해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기성 언론이 그들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본다고 지적했던 글이 있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꼈다. 왜 이 사건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지 못했지라는 자책감도 들었다.

▲ 기자회견 내내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닌 아이

나의 경우 초등학교 입학식이 고모의 결혼식과 겹쳐 혼자서 학교에 갔다. 어린 마음에 왜 그리 서러웠는지, 50이 된 나이에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린이집과 달리 유치원은 정규 과정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중요한 순간 중의 하나다. 아마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아이들은 기대감에 부풀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개학 연기가 하루 만에 끝났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처받았을 아이들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유총이 굴복했다는 기사뿐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카메라를 챙기면서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던 아이가 엄마와 꼭 안는 모습을 봤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부모이니까.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더 섬세하다. 그런 아이들의 감정을 외면하고 어른들의 눈높이로만 사건을 바라봤던 나태함이 깨진 듯하다. 


미세먼지로 하늘은 뿌옇지만, 스스로는 조금 시야가 더 넓어진 기분이 들었다.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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