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도서관 난방 중지에 노조 탓만 하는 조선일보
* 고함20은 기성언론을 향한 비판의 날을 세우고자 한다. 한 주간 언론에서 쏟아진, 왜곡된 정보와 편견 등을 담고 있는 유감스러운 기사를 파헤치고 지적한다.
서울대 시설관리 노조의 도서관 난방 공급 중단이 논란이다. 지난 2월 7일 서울대에서 기계·전기 시설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며 중앙도서관을 포함한 20여 개 건물의 중앙난방 장치를 끄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작년 정부의 지침에 따라 정규직이 됐지만, 임금과 처우는 비정규직 수준에서 바뀌지 않아 파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분노를 조장하는 언론이 있다. 조선일보는 두 차례에 걸쳐 ‘”성과급 달라” 도서관 난방 끈 서울대 관리직’(2월 8일 자), ‘패딩에 핫팩… 민노총이 난방 끊자 ‘냉골 서울대’’(2월 9일 자)를 통해 노조의 난방 공급을 (사실상) 규탄하는 기사를 냈다.
노조의 파업을 규탄하는 여느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이 기사들은 파업으로 인해 학생들이 겪는 불편함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난방 공급 중단으로 인해 바뀐 도서관의 풍경을 자세히 묘사하며 “오래 준비한 시험이 일주일 남았는데 당황스럽다”는 등 학생들의 볼멘소리도 담았다. 변리사·공인회계사 시험과 행정고시를 특별히 언급한 부분은 “감히 변리사, 공인회계사, 고위 행정직이 될 사람들의 앞길을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막다니!!”하는 호통 소리가 들리는 듯해 우습기까지 하다. 여기에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노동자들의 파업 이유에 있어선 불편함을 묘사할 때의 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파업 노동자들이 “기존 서울대 행정·사무직 직원들과 같은 대우를 요구”한다며 악의적 왜곡을 더 했다. 그러나 서울대 교직원 행정사무직의 복지포인트는 100만 원, 명절휴가비는 월 기본급의 60%인 반면, 시설관리·청소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복지포인트 40만 원과 명절휴가비 40만 원, 그리고 정액 급식비로 차이가 크다. 만약 조선일보의 보도대로라고 해도, 학생들에게 자칫 큰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는 중요한 업무를 맡은 노동자들이 기존 행정사무직원들 수준의 처우를 요구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일보는 두 차례 보도에도 분노가 덜 풀렸는지 2월 11일 자에는 기고와 사설도 실었다.
서울대 학생들의 학습과 연구가 병원의 응급 환자의 생명 구조와 비교될 만큼 중대한 사항이라면 그들에게 부여한 특권 의식이 너무 과한 거 아닐까 싶다. 만약 이 같은 파업이 서울대가 아닌 어느 ‘지방대’에서 일어났더라도 조선일보는 같은 표현을 썼을까? 노동조합법을 읽었다면 쟁의행위에 대해 노동관계 당사자 모두에게 자주적 해결을 위한 책임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노조가 파업을 선택할 때까지 협상에 응하지 않은 대학 본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서울대생들이 밤낮으로 ‘월화수목금금금’ 공부하고 연구를 한다면 그 시설을 관리하는 노동자들도 ‘월화수목금금금’ 그 시설을 지켜야 한다. 아무리 ‘노오오력’해도 먹고 살기 힘든 냉혹한 현실을 사는 것은 서울대에 다니는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서울대학교를 관리하는 노동자들도 함께 이 냉혹한 현실을 살고 있다. 직접고용은 됐지만, 처우는 전혀 바뀌지 않은 관리직의 현실은 추운 도서관보다 더 냉혹할지도 모른다.
노조는 당연히 서울대생들의 고시 합격을 책임지지는 않는다. 대신 학교 시설들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관리를 책임지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적인 노동권의 신장을 책임진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것은 서울대 나온 ‘지체 높으신 분들’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 해결 당사자를 배제한 채 “조카뻘 되는 학생들”과 “휴가비 챙기겠다는 노조” 식의 불편한 대립 구도만을 양산하는 언론 보도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