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유튜버들이 몸싸움을 한 이유

조회수 2019. 2. 11. 11: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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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몸싸움이 난무했다.

지난 2월 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앞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주최하고 극우 논객 지만원씨가 발표하는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때문이었습니다.


방문증을 발급하는 의원회관 입구는 공청회 시작 1시간 전부터(오후 2시 시작)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이날 현장에 방문한 필자 또한 도저히 제시간 내에 방문증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후문을 통해 겨우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아수라장

▲ 정치 성향이 다른 유튜버들이 카메라로 서로를 촬영하며 방송하는 모습

도착해보니, 이미 공청회가 열리는 대회의실 앞에는 정치 성향이 각기 다른 유튜버 십여 명이 휴대폰과 캠코더 등으로 현장을 중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방송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서로를 향해 ‘빨갱이’, ‘친일파’ 등의 막말을 주고받았고 급기야는 주변에 있던 사람과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내가 본 몸싸움만 해도 5번이 넘었습니다. 혼란이 계속되자 경찰까지 출동했습니다. 


처음에는 각자가 주장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며 토론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이내 “너네 친일파지?”, “이 XX들은 모두 빨갱이야”, “김정은 개XX 해봐!”라는 말이 터져 나왔고 결국 욕설과 고성이 오갔습니다. 


현장을 바라보는 내내 머릿속에는 해방 이후 좌우익 투쟁 과정에서 벌어졌던 싸움이 떠올랐습니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거나 카메라가 없었다면 몸싸움이 아니라 더한 일도 벌어졌을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공청회라고 써 놓고 ‘광기의 현장’이라 읽다 

▲ 극우 논객 지만원씨가 발표한 5.18 공청회에 나왔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망언

회의장 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청회는 마치 종교 집단과 같은 광기의 현장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대한민국 입법부라는 국회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망언들도 이어졌습니다.


공청회 공동주최자였던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은 “저희가 방심하며 정권을 놓친 사이 종북좌파들이 지금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를 비하했습니다. 


김 의원은 대한약사회 부회장이던 2015년 4월 28일 소셜미디어 모임에 ‘시체장사’, ‘거지근성’ 등 세월호 유가족을 비하하는 표현이 담긴 글을 공유했다가 대한약사회에서 직무 정지 3개월 징계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발표를 맡은 지만원씨를 향해 “제가 제일 존경하는 지만원 박사님, 5·18 문제에서만큼은 우리 우파가 결코 물러서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는 인사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공청회(公聽會):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어떠한 행정 작용에 대해 당사자 등,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자 또는 기타 일반인으로부터 의견을 널리 수렴하는 절차를 말한다.

이날 열린 행사의 공식 명칭은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였습니다. 그러나 참가자들 발언의 요지는 ‘5·18은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한 폭동’이었고 이에 반하는 의견은 깡그리 무시됐습니다.


공청회장에 들어선 5·18 단체들은 “폭동이 아니라며 광주를 모욕하지 말라”고 항의했지만,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습니다. 사실상 이번 행사를 공청회로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허접한 논리, 진실이 돼버린 가짜뉴스

▲ 공청회 자료집에 나온 사진. 지만원씨는 광주인들 대부분이 북한 특수부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 배포된 자료집에는 속칭 ‘제00광수’ (5·18 당시 시민들을 가리켜 광주 북한 특수군이라며 부르는 줄임말)의 근거라는 사진들이 수십 장 포함돼 있었습니다.


지만원씨는 5·18 당시 사진에 나타난 인구들 대부분이 북한 사람들이며 고정간첩이거나 내국인 스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광주에 왔던 북한군들이 인민군 원수나 인민군 대장, 북한 노동당 비서라는 황당한 논리도 펼쳤습니다.


이날 공동주최자였던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은 육군 대령 출신입니다. 군 장교 출신이라면 현실적으로 북한군 600명이 국내에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첨단 과학화된 장비로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것을 하나하나 밝혀 나가는 그런 역할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만원씨는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가설은 오로지 본인만 제기했다’며 ‘대법원이 무슨 수로 북한군이 (광주에) 오지 않았다는 판결을 할 수 있었는가’라고 지극히 주관적인 주장을 자료집에 당당히 실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지만원씨의 주장을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들이 옹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극우 성향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일부 노령층은 가짜뉴스를 진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앞서 2013년 11월 대법원은 5·18 당시 북한 특수부대원 600여명이 내려와 폭동을 일으켰다는 지만원씨의 주장에 대해 허위라 판단한 바 있습니다. 당시 지만원씨는 사자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 공청회에서 ‘광주를 모욕하지 말라’라는 현수막을 펼쳐 든 5·18 관련 단체 활동가

난장판이 돼버린 5.18 공청회를 보면서 아직도 대한민국은 최소한의 상식조차 무시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회임을 깨달았습니다.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써야 저들이 믿고 있는 진실이 가짜뉴스인지 깨달을까라는 고민을 해봤지만, 결국 해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분에 겨워 말조차 하지 못하는 5·18 유가족의 모습을 보니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 외부 필진 아이엠피터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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