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감귤 따기 알바가 '극한 직업'인 이유

조회수 2019. 2. 2. 13: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다.

제주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생산물이 감귤입니다. 감귤은 보통 11월부터 수확해서 1월 전에 모두 끝이 납니다. 한라봉과 같은 만감류는 설날인 2월에 나오기도 합니다.


겨울철 제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감귤이지만, 감귤 나무를 본 적이 없다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오늘은 감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출처: ⓒ허프포스트코리아 캡처
▲ 제주도에서 감귤 수확 인력을 모집한다는 뉴스 기사

2017년 10월 뉴스입니다. 제주도가 감귤 수확 인력을 모집하고 이들에게 항공권과 숙박까지 제공한다는 내용입니다.


비록 2년 전 뉴스이지만, 매년 감귤 수확철만 되면 나오는 뉴스라 아마 올해 10월쯤에도 등장할 것 같습니다. 


감귤 따는 인력이 없어 제주도가 지원한다는 얘기는 2013년에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뉴스에 소개됐듯 감귤 수확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제주는 얼마나 감귤 농사를 많이 짓길래 항공권과 숙박권까지 주면서 알바를 구할까요?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 감귤 농사를 하면서 밭에 비료를 뿌리는 모습. 비료 포대를 메고 좁은 통로를 헤집고 다녀야 한다.

저는 2013년 제주에서 감귤 농사를 했습니다. 돈을 벌려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제주에서 살면서 1인 미디어 활동을 하지만, 정작 제주를 잘 모른다는 생각에 감귤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감귤 농사는 다른 농사에 비해 손이 덜 갑니다. 봄에 가지고르기(전정)하고, 풀 베고, 비료와 농약을 시기별로 뿌려주면 끝이 납니다. 물론, 이 작업도 저와 같은 초보 농사꾼에게는 엄청 힘든 일이었습니다. 


특히, 감귤밭에는 돌이 많습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풀을 베려면 돌이 튀는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쉽지 않습니다. 일부 농부들이 친환경농법을 왜 포기하는지 그때 깨닫기도 했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으면 그만큼 손이 많이 가서 더 힘듭니다. 


하지만 감귤 농사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감귤 따기입니다.

▲ 눈 맞은 감귤과 폭설·냉해로 밭에 버려진 감귤

감귤은 수확철이 짧습니다. 11월부터 12월 중순, 특히 눈이 오기 전에 귤을 따야 합니다. 귤이 눈을 맞으면 귤껍질과 알맹이 사이가 떠서 맛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감귤 수확 전에 폭설이나 강추위가 오면 제주는 감귤 피해를 봅니다. 어떨 때는 감귤을 대량으로 폐기 처분하기도 합니다.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는 겁니다.


간혹 제주도에서 보상을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금액이 적어 농민들이 손해를 봅니다.

▲ 제주에는 일손이 귀해 벌초방학이나 감귤방학 같은 이색 방학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짧은 수확 시기에 감귤을 따야 하니 수확철만 되면 제주는 난리가 납니다. 직장을 다니는 가족들은 월차 휴가까지 받아 감귤을 따기도 합니다. 


감귤 수확철에는 ‘감귤방학’까지 있었습니다. 남원읍이나 서귀포 등 감귤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일손이 부족해 아이들까지도 감귤을 따야 하니 방학을 해서 일손을 도왔습니다. 


그래도 감귤 따는 인력이 부족하니 육지 사람들에게 비행기표·숙박까지 지원해가며 인력을 모집합니다.

▲ 감귤 따기는 딴 감귤을 들고 다니는 바구니에 넣었다가 나중에 노란색 컨테이너에 싣는 작업 순서로 이어진다.

주제에서 감귤 따기라, 뭔가 꿀 알바 같아 보입니다. 감귤도 따고 제주 여행도 하고 아주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감귤 따기 알바는 귤만 따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감귤 따기는 가위를 이용해서 열매를 따고 바구니에 담은 뒤 노란색 컨테이너로 옮기는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문제는 초보자의 경우 제대로 감귤을 따지 못하니 감귤 따기 외에 컨테이너를 나르는 작업을 한다는 점입니다.

▲ 감귤을 싣기 전인 컨테이너와 트럭에 상차한 감귤 컨테이너

숙련된 감귤 농사꾼들은 혼자서 하루 600kg, 즉 30박스를 채울 만큼 감귤을 땁니다. 5명이 작업하면 150박스(30박스X5명)가 나옵니다. 결국, 하루에 20kg 노란색 컨테이너를 150박스를 날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컨테이너를 나르는 일이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한두 박스가 아니라 수백 박스를 나르다 보면 생각 이상으로 크게 힘이 듭니다. 


감귤밭은 굉장히 좁습니다. 가지가 뻗어서 중간에 서서 걸어가기 힘듭니다. 할망들(할머니의 제주 방언)이 밭 사이에 귤을 따놓고 가면 다른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 컨테이너를 들고 차가 있는 곳까지 와야 합니다. 


감귤을 담은 컨테이너를 1톤 차량에 가득 실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낮아서 괜찮지만, 컨테이너를 쌓을수록 높이가 높아져 싣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제주에서 감귤 수확철이 끝나면 박스를 나르던 사람들은 허리가 아파서 병원을 찾는 일이 많습니다.

▲ 감귤을 따서 택배로 보내기 위해 박스 작업을 마친 모습

그렇다고 감귤 따기가 쉬운 것도 아닙니다. 보통 할망들이 하루에 600kg을 땁니다. 600kg이면 여러분들이 흔히 보는 10kg 감귤 박스 60개입니다. 혼자서 60개 박스를 채우는 겁니다.


그냥 귤만 따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괜찮은 감귤, 즉 팔 수 있는 크기의 상품성 있는 귤을 빠르게 따야 합니다. 


보통 제주에서는 초보자에게 감귤 따기를 시키지 않습니다. 데려다가 일을 시켜봤자 손이 느리니 일당만 나가고 생산성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 제주에서 감귤 수확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공고

뉴스에 나왔던 감귤 따기 알바 공고를 보겠습니다. 근로 시간을 보면 08시에서 17시로 돼 있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일당입니다. 임금은 하루 평균 6만 원입니다.


보통 제주 할망들이 일당 8만 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낮아 보이지만, 또 숙련도를 따지면 그리 적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이런 임금을 가지고 사람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남성들은 공사 현장에 나가 10만 원씩 받으니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외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감귤 따기 알바가 쉽지 않으니 며칠 만에 포기합니다. 


여기에 나온 선과장 알바는 조금 괜찮습니다. 그래서 요새 제주 사람들은 똑같은 돈이면 감귤 따기 알바가 아니라 선과장에서 일을 하는 알바로 대거 몰립니다. 당연히 또 감귤 따기 알바를 할 사람이 없어지는 겁니다.

▲ 내가 운영했던 감귤 농장의 모습

저 같은 경우 감귤 수확철마다 육지에서 부모님과 장인·장모님이 오셔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래도 힘들어서 아예 감귤 체험 농장을 운영했습니다. 먹고 싶은 만큼 공짜로 따서 먹고 사고 싶은 사람은 직접 따서 10kg 한 박스에 만 원씩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감귤 따는 할망 부르면 최소 6만 원씩 3명만 써도 18만 원, 여기에 밥값에 교통비까지 주면 남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인건비로 손해 보느니 아예 싸게 일반 소비자에게 넘긴 겁니다. 


예전에 감귤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습니다. 감귤 농사로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주에는 카페 이름이 대학나무인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감귤 값은 내려갈 대로 내려가고 땅값은 올라갈 대로 올라 감귤 농사보다 땅을 팔아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 1970년대 감귤을 나무 상자로 거래하는 모습과 감귤 따는 장면

과정을 섞자면 감귤 따기 알바는 ‘극한 직업’에 속할 정도로 힘듭니다. 과거에는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힘들어도 참고 버텼습니다.


당시에도 감귤 인력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전라도 지역에서 많은 인력이 대거 제주로 오곤 했습니다. 제주에 전라도 지역 분들이 많이 거주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당시에 제주에 왔다가 계속 정착한 분들 때문입니다. 


제주는 고령화 가속화되면서 감귤 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습니다. 감귤 농사 대신 감귤밭을 펜션이나 카페 등으로 만드는 일도 제주에서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출처: ⓒ제주의소리
▲ 1t 트럭에 감귤을 싣고 선과장에 가다가 전복된 모습

감귤 수확철에 제주 여행자들은 사진 속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을 겁니다. 밭에서 딴 감귤 컨테이너를 1t 트럭에 잔뜩 싣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감귤이 몽땅 쏟아진 모습입니다.


저도 길지는 않지만, 짧게 감귤 농사를 했기에 저런 장면을 목격하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출처: ⓒTV조선 화면 캡처
▲ 악마의 알바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방송이나 뉴스만 보고 혹하는 분도 있겠지만, 감귤 농사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있겠냐만은 감귤 따기도 택배 상하차 등 난이도 높기로 소문난 일들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악마의 알바는 택배 상하차겠죠.) 쌀 20kg 150포대를 나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허리가 나갑니다.


감귤 따기 알바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진짜로 감귤 따러 왔다가 며칠 만에 도망가신 분들도 많습니다. 혹시라도 감귤 따기 알바를 환상처럼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 택배로 받은 감귤이 터진 경우 모두 골라내야 나머지 감귤도 오래 먹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혹시 감귤을 택배로 주문하셔서 드신다면 택배를 받자마자 꼭 박스를 열어서 밑에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귤은 상처 나기 쉬운 과일이라 박스에 하나라도 깨진 귤을 방치하면 전부 못 먹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감귤은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해야 오래 먹을 수 있습니다. 냉장고에 보관했을 경우 먹을 만큼만 실온에 일정 시간 놔뒀다가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혹시라도 겨울철에 제주를 여행하는 분들이 있다면 감귤은 물론이고, 한라봉, 천혜향 등 각종 만감류도 꼭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1월 이후 노지감귤은 모두 수확이 끝나기 때문에 감귤 따기 체험 등은 할 수 없습니다. 


제철 과일이 맛있지만, 감귤은 겨울철이 제주에서 먹는 게 더 맛있답니다.

* 외부 필진 아이엠피터 님의 기고 글입니다.

<직썰 추천기사>

10억 받고 굴뚝 살기 vs 그냥 살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