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반려동물들에게 공포스러운 이유

조회수 2019. 1. 31.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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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가장 많이 유기된다.
“검은 눈동자 안에는 주인을 향한 미움이나 원망보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하는 질문과 자책이 담겨 있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중 ‘노찬성과 에반’에서 소년 찬성이 휴게소 근처에 유기된 강아지를 바라보며 독백을 한다. 사랑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찬성은 일단 키우고 싶은 마음에 유기된 ‘에반’을 키운다. 하지만 개인적인 욕심 앞에 에반에게 약속한 안락한 죽음은 이뤄지지 않는다.

출처: ⓒ농림축산검역본부
2017년 유기동물 수는 10만을 넘겼다.

연휴엔 길로 내몰리는 가족

매년 연휴에 유기되는 동물 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7년 약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했다. 이중 휴가철인 7월에서 8월 사이에만 2만 2천 519마리(약 22.5%)가 구조됐다. 지자체 보호소에 입소된 동물들만 추산한 숫자라 실제 유기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최장 10일의 ‘황금연휴’가 끼어있던 5월과 10월의 유기 건수는 각각 9,908건, 9,344건이나 됐다. 사람들이 휴가와 ‘황금연휴’를 즐기러 해외로, 혹은 국내로 휴가를 떠나는 동안 그들의 가족이었던 반려동물은 길바닥에 버려졌다


명절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구정 등의 명절이 끼어있는 주간에는 유기가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작년 추석 연휴가 포함된 일주일(9월 19~26일) 사이 버려진 동물은 총 1,524마리에 달했다. 긴 기간 동안 반려동물과 동행할 여건이 되지 않거나 그들을 맡아줄 사람을 구하기 힘들면 유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병에 걸린 반려동물이라면 치료를 병행하기보다 멀리 떠난 김에 유기로 ‘해치우는’ 식이다. 명절의 특성상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이동하는 인구가 많다. 멀리 이동할수록 반려동물이 집으로 찾아오기 힘들기 때문에 명절에 많은 유기 건수가 발생하는 것이다. 섬에서 유기가 많이 일어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반려동물은 자신을 버린 가족의 차를 죽어라 따라 달려가지만 차는 멈추지 않는다. 

출처: ⓒfnDB
이마트가 운영하는 반려동물 매장 ‘몰리스 펫샵’. 공산품과 나란히 상품처럼 분양되고 있는 반려동물들. 특히 반려견 사랑으로 소문난 정용진 부회장이 ‘몰리스 펫샵’ 사업에 관여해 비판을 받고 있다.

반려동물의 상품화가 초래한 비극

이들이 애정을 받는 존재에서 한순간에 성가시고 해치워야 하는 존재로 내려앉아 버린 것은 어쩌면 예견된 미래인지도 모른다. 근래 한국 내 반려동물의 상품화가 심화되면서 유기 또한 매해 전년 대비 늘어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1,000만에 달한다. 그에 비례해 반려동물의 상품화는 더욱 부채질 되고 있다.


동물들은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 ‘시장’에서 상품으로 전시되고 포장되며 가격이 책정돼 판매된다. 대개 반려동물을 입양 및 동물 보호 센터에서 데려오기보다 펫샵, 온라인 등에서 ‘거래’를 통해 데려오기 때문이다. ‘품종 있는 동물, 어린 동물일수록 귀엽다’는 인식이 만연해서다. 근 3년간 견종 중 웰시코기와 비숑프리제, 포메라니안이 인기를 끌었고 그 전엔 비글, 퍼그, 말티즈, 시츄 등이 유행이었다. 이런 유행에 맞춰 특정 품종들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에 자랑거리 겸 콘텐츠로 흔하게 올라온다. 댓글로 ‘무슨 품종인가요’가 대거 달리는 현상은 반려동물이 상품화됐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동물들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엔 못생겼다며 버려지고 유행이 지났다고 버려진다. 소모품 정도로 여겨 ‘손쉽게’ 좋을 땐 취하고 싫증이 나면 모른 체해버리기도 한다. ‘반려동물은 생명이자 가족’이란 당연한 말은 어느새 먼지 쌓인 말이 됐고 유기라는 예정된 비극으로 이어졌다.

유기 = 범죄

한순간에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반려동물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현재 많은 수의 동물보호소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날로 느는 유기 동물들을 수용하고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미 수용 가능한 숫자를 넘은 지 오래라 안락사 대상으로 분류되는 동물들의 숫자와 분류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상당수가 새 가족을 만나기도 전에 보호소 내 질병으로 자연사하거나 안락사될 확률이 높단 뜻이다. 운이 좋게 구조 후 보호소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도 한 번 버림받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부적응과 트라우마로 남는다.


더욱 비참한 건 이들이 보호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다. 유기 후 길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생명을 겨우 이어가거나 아사, 로드킬의 위험에 놓인다. 그 외 식용으로 팔려 가기도 하고 품종견의 경우 ‘강아지 공장’에서 끊임없이 새끼를 낳게 된다. 반려동물을 유기한다는 것은 이런 비참한 죽음에 그들을 내몬다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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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난데없이 ‘용서’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찬성은 에반의 죽음 앞에서 차마 용서를 바라지도 못하는 마음을 이게 된다. 어쩌면 찬성은 평생을 물에 젖은 솜 같은 무거운 마음을 지고 살지도 모른다. 책 속의 말처럼 분명 생명을 들이는 것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너무나 교과서적인 말인 동시에 자명한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자주 잊어버리고 찬성과 같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른다. 당신은 찬성과 달리 ‘용서’라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도, 바랄 수도 없는 마음을 얻지 않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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