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카풀 논란에 냉수 한 잔하며 생각해봐야 할 것들

조회수 2018. 12. 24. 16: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그럼 뭘 어떻게 하는 게 맞느냐?'
출처: ⓒ연합뉴스
12월 20일 ‘택시 파업’에 멈춰 선 택시들

택시와 우버, 카풀 관련 글을 몇 개 썼더니 페이스북 메시지로 질문을 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럼 뭘 어떻게 하는 게 맞냐’는 게 질문의 요지다. 경험상 이런 복잡한 문제를 풀기 전에는 일단 침착한 마음을 가지고 냉수를 한 잔 마시면 좋다. 아울러 뭘 좀 당장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도 공익의 증진에 도움이 된다.


지금 이 상황이 풀리지 않는 배경에는 하나의 거대한 핵고구마 같은 문제가 있다. 한국 택시의 이용 요금이 너무 싸다는 것이다. 3km 이동하는데 드는 택시비가 고작 $2.76. 여행정보 사이트인 Price of Travel이 만든 세계 택시요금 비교 자료에 따르면 서울 택시비는 LA의 1/5, 도쿄의 1/4, 비엔나의 1/3 수준이다.  


택시기사들과 택시 회사들이 이 기본료 체계 아래서 연간 벌어들이는 돈이 8조 5,000억 원 정도다. 이중 5조 원 정도가 출퇴근 시장 규모로 추산된다. 그런데 이게 나눠먹기에 충분한 금액이 아니다. 현재 서울 법인택시 기사들은 하루 평균 12시간 일하고 월평균 215만원 정도를 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카카오나 타다 같은 카풀 업체들이 새롭게 치고 들어오면 경쟁 심화로 기존 택시기사들의 수익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택시 회사와 기사들은 온갖 악다구니를 쓰며 카풀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 달리 답이 없는 것이다.

미국의 택시들

그럼 택시 요금을 올리면 되지 않는가. 시장 참여자들이 나눠먹을 파이가 커진다. 카풀이나 우버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사실 근본적인 해답에 가깝지만, 문제는 택시를 돈 주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거다. 현재 대중교통으로 분류되는 택시 요금은 지자체장이 정하도록 되어 있다. 서울시는 서울시장이 칼자루를 쥔다. 그러나 택시 요금을 올리면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이 싫어하니까 올리지 않는다. 막고 또 막아서, 더이상 안 올려줄 수 없겠다 싶을때 비로소 택시요금이 인상된다. 서울시의 경우 2013년부터 5년간 기본요금 3,000원을 유지하다가 내년부터는 3,800원으로 올려주기로 했다.


시장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게 뭔 경우냐 싶겠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삶은 꽤 오랫동안 그래왔다. 그러니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경쟁을 통해 택시 서비스의 질을 올리네 마네 하는 얘기는 앞으로 자제하도록 하자.  

출처: ⓒ연합뉴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런 와중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얼마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현행법 상 카풀을 막을 방법이 없고 카풀이 아니라 사납금 때문에 택시 기사들이 어려운 것”이라고 발언했다. “사납금제는 불법이니 완전 월급제로 가야 한다”는 말도 했다. 사실 이 글은 이 발언 때문에 쓰는 거다.


김 장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려면 먼저 지금 택시 시장 상황을 좀 이해해야 한다. 우선 사납금이란 일종의 상납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울의 경우 택시 회사가 소속 기사에게 차량 및 기타 등등을 대여해주고 기사가 하루 얼마를 벌건 약 13만 5,000원(더 떼가는 곳도 있다)을 떼어간다. 이렇다 보니 법인택시 기사는 2만 원, 3만 원 버는 날도 있고 운수 나쁜 날에는 아예 자기 돈을 사납금에 태워 보내기도 한다. 술 먹고 택시 탔다가 차 안에 토해본 사람은 기사님이 형형한 안광을 뿜으며 ‘깽값’ 14만 원 내놓으라고 위압적인 화룡의 브레스를 내쉬는 걸 경험해 봤을 텐데 그 깽값의 기원이 바로 이거다. 남의 토사물 때문에 하루 영업을 공치면 사라지는 돈. 이렇게 매일매일 버는 돈에 월 고정급 150여만 원을 더하면 법인택시 기사의 최종 월 수입이 된다.

출처: ⓒ연합뉴스

이렇게 기사들을 착즙하는 택시 회사들은 엄청난 갑부가 되겠네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일단 문제는 가동률이다. 서울 지역의 250개 택시 회사의 차량 가동률은 평균 60%를 밑도는 수준이다. 보유 차량의 60%만 일을 나간다는 것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나머지 40% 차량들은 아무 수입 없는 순수한 비용으로 남는다. 업계에서는 서울 시내버스가 준공영제로 바뀌면서 버스기사 근무조건이 주 5일 근무에 월 급여가 300만 원~320만 원으로 상향돼 택시 기사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2월 11일 카풀 서비스를 반대하며 분신한 택시기사 최 아무개씨의 유서에도 이런 내용들이 담겨있다. (택시 업체들은 한술 더 떠서 대당 3만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상황인데도 전체 택시 대수는 수요에 비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최근 10년 사이에 택시 상황이 좀 급격히 나빠진 탓도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서울시 택시는 약 7만 2,000여대 정도인데 시에서는 이중 16.4%(1만 8,000여대) 정도를 공급 과잉으로 판단한 바 있다. 그리고 오는 2034년까지 이걸 감차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감차는 세금으로 하는 거다. 대당 감차보상액을 지급하고 부가세 경감액을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자, 정부가 운을 띄운 대로 지금 사납금제를 폐지하고 완전 월급제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월급제의 월 평균 지급액을 250만 원 이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임금 인상 차액과 보험료 등을 감안하면 택시 회사는 기사 1인당 최소 기존의 20% 넘게 월급을 더 줘야 하는데 당연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직원 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대규모 해고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택시 감차 프로그램에 참여하든지 하겠지. 시장 개입의 명분을 유지할 수 없으니 지자체장이 택시 요금을 설정하는 지금의 제도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출처: ⓒ연합뉴스

문제는 이렇게 되었을 때 어떤 사람들의 실업 가능성이 올라가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법인 택시 기사는 월평균 25.6일 일한다. 주 5일 시대에 주 6일보다 조금 더 일하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입을 감수한다. 택시 기사를 그만두면 다른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취업 취약계층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한 내용들은 2016년 서울노동권익센터가 발간한 ‘택시기사의 노동실태와 지원방안’에 잘 정리돼 있다.)


그리고 이들이 쓰러진 잔해 위로 IT 대기업들의 카풀 서비스들이 들어올 것이다. 물론, 그때는 택시가 많이 줄어든 상태다. 시민들이 잡고 싶다고 잡히지 않을 테니 경쟁 원리에 따라 당연히 요금은 지금보다 올라갈 것이다. 올해 3월 카카오가 카카오택시 즉시배차 서비스 론칭을 발표하면서 내걸었던 요금이 택시요금(기본료 3,000원) 더하기 5,000원 이었다. 이게 당신이 내야 할 택시 요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면 종국적으로 당신이 내야 할 택시 요금이 2배 정도 오를 수 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출처: ⓒ뉴스1

물론, 위의 시나리오는 법적으로 사납금제 관뚜껑이 덮여야 가능한 일이다. 국회에서 여객자동차법을 개정해서 관련 조항에 ‘세부 시행은 시행령이나 택시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 시행요령에 따른다’는 내용을 넣으면 된다. 법을 바꾸는 일이 항상 쉽지 않지만, 이 법은 이해관계자가 많아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그냥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는 게 낫다’는 얘기를 한 거다.  


사실 정부가 이걸 계산하고 치는 건지 그냥 막연하게 간지나 보이니까 그렇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사납금제가 불법인 걸 몰라서 그냥 냅둬온 게 아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무리 없이 풀 수 있는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 속도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게 며칠 전인데 내가 보기엔 비슷한 문제인 것 같다. 삶의 한계선에 내몰릴 수 있는 택시 기사들에게 어떤 완충장치를 계획하고 있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글 쓰면서 검색하다 보니까 잘못 알려진 팩트들이 너무 많다. 특히, 나무위키 ‘택시기사’ 항목이 그렇다.

- 법인 택시기사의 수입 분배체계는 크게 사납금제와 전액관리제 2가지다. 사납금제는 벌어온 돈에서 사납금을 낸 뒤 이에 상응하는 기본급과 초과금을 기사가 갖는 방식, 전액관리제는 벌어온 돈을 일단 다 회사를 주고 회사가 고정급과 일부 성과급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 사납금제 불법 맞다. 근데 강행 규정이 따로 없어서 지금은 법을 어겨도 처벌이 안 된다.

- 사납금제로 뺏긴 돈 소송한다고 무조건 받는 거 아니다. 대법원은 2006년에 ‘일정 금액의 운송수입금 기준액을 정해서 수납하는 행위가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직썰 추천기사>

'비정규직 제로 시대? 자회사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