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냉소 섞인) 유머로 받아치는 방법
인종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오해를 낳는 일이 종종 발생하죠. 차별을 지적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이 논의를 진전시키기도 하지만, 고착 상태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런 단어의 예로 ‘하얀 눈물(white tears)’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하얀 눈물’은 백인으로서 자신의 특권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화를 내는 백인들을 놀릴 때 쓰는 표현입니다.
자신이 인종 문제를 논하면 곧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힌다고 생각하는 (그러니까 오히려 피해의식에 빠져있는) 백인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미국의 종말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백인들을 조롱하기 위해 쓰이기도 합니다.
문화 콘텐츠 내에서 원래는 백인이었던 캐릭터가 유색 인종으로 그려질 거라는 뉴스 또는 루머에 세상이 끝난 것처럼 절망하는 백인들을 놀릴 때도 쓸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픽션 속 캐릭터가 백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설득하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어휴, 저 하얀 눈물 좀 봐”하고 가볍게 조롱한 후 넘어가는 것이 훨씬 쉽죠.
블로그 ‘Very Smart Brothers’의 편집장이자 GQ 매거진의 칼럼니스트이며 신간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Blacker> 출간을 앞두고 있는 데이먼 영(Damon Young)은 “사실 인종주의나 인종차별주의자를 놀리는 게 재미있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백인들이 비백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을 무기로 쓰려한다면 이런 식의 유머가 그런 백인우월주의에 맞서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얀 눈물과 비슷한 용례로 남자의 눈물(Male tears)이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 자신의 남성 특권에 위협을 느끼거나 실제로 차별을 실천하면서도 자신이 부당하게 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힌다며 화내는 남성들을 위한 단어다. 물론 ‘White Male Tears’도 있다.
영은 자신이 세리나 윌리엄스*가 테니스 경기에서 우승하면 덮어놓고 화를 내는 사람들, “자격 없는 유색인종 학생들이 대학에 쉽게 들어가 백인들의 자리를 뺏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농담을 하면 반드시 돌아오는 반응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하얀 눈물이죠.
*흑인 여성 테니스 선수
나는 이 표현을 대학 시절에 처음 들었습니다. 영어와 아프리카학을 가르치던 발로리 토머스(Valorie Thomas) 교수는 수년간 수업에서 이 문제를 다뤄 왔죠.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인종 문제를 주제로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그녀의 수업 목표입니다. 토머스 교수도 유머가 아주 효과적인 도구라고 말합니다.
토머스 교수는 ‘하얀 눈물’ 같은 표현을 쓰는 행위에 어떠한 맥락과 배경이 있는지를 배운다면 대화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표현은 상대에게 방어적인 자세를 잠시 거두고 대화에 참여하라는, 날카롭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 제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토머스 교수는 수업 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임금 불평등이나 흑인 학생들이 학교에서 받는 차별적 징계와 같은 인종차별 관련 주제가 제시됐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은 이를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입니다. 무력감, 혼란, 죄책감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면서 방어적으로 대화에 임하게 되는 것이죠.
토머스 교수는 학생들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런 감정들 때문에 수업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할 때죠. 누군가가 눈물이라도 터뜨리는 순간 강의실에서의 토론은 중단되고 맙니다.
그런 사람들은 잠깐 멈춰서 숨을 돌리고 그 말이 정말로 내게 그렇게나 큰 타격을 주는지 나를 그렇게나 아프게 하는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표현이 좀 아프기는 해도 비평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인간성을 존중해달라는 제안임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원문: NPR
* 외부 필진 뉴스페퍼민트 님의 번역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