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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후 특강이라며 '몸매 만들기', '메이크업' 강의 짠 여고

조회수 2018. 11. 26.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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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재단 산하의 남고는 박물관, 기념관 견학

수능이 끝난 지도 벌써 일주일. 각 고등학교에서는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서울 소재 ㅁ여고에서는 12월 첫째, 둘째 주에 걸쳐 아홉 개의 특강을 준비했다. ‘사회초년생을 위한 금융교육’, ‘심폐소생술’ 등의 일정표에는 ‘새내기 메이크업’, ‘새내기 패션 스타일링’, ‘건강한 몸매 만들기’가 포함됐다.

출처: ⓒ고함20
12월부터 진행되는 ㅁ여고의 수능 후 특강 프로그램

여고는 메이크업 특강, 남고는 박물관·기념관

이에 ㅁ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학교 측에 메이크업 강의를 취소해달라며 익명으로 긴 편지를 보냈다.

“화장이 여학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 중 가장 큰 것은 본래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여고생들 중 많은 아이들이 민낯이 부끄러워 마스크를 끼고 다니거나 고개를 숙이고 다닙니다. 화장은 틴트를 바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을 양산합니다. (…) 수능을 보기 전, 선생님들께 수능 끝나고 다이어트도 하고, 화장도 하고 성형도 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 여학생들은 남학생들과 달리 외모가 예뻐질 것을 지나치게 요구받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고 나서 꾸미지 않으면 위축되기까지 합니다.”

이에 학교 측은 오히려 CCTV를 통해 누가 이 편지를 보냈는지 잡겠다며 학생들에게 일정을 강요하고 나섰다. 담임교사들은 왜 절차를 무시하고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느냐며 학생들을 다그쳤다.

출처: ⓒ고함20
ㅁ여고가 ‘건강한 몸매만들기’ 특강을 듣는 동안 ㅁ고는 경복궁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다녀온다.

그렇다면 ㅁ여고와 같은 재단 산하의 남고 ㅁ고의 수능 이후 일정도 비슷할까. <고함20>이 ㅁ고의 일정표를 확인한 결과 ㅁ고의 수능 후 활동은 기념관, 박물관 등 역사, 문화 체험활동 위주였다. 여학생들에게 강요된 ‘새내기 메이크업’, ‘새내기 패션’, ‘몸매’ 등 외모와 관련된 부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들은 분명 수능 전까지 똑같은 과목을 배웠고 똑같은 시험을 봤다. 하지만 그 이후는 사뭇 다르다. 남학생들이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동안, 여학생들은 무엇을 먹으면 식욕이 조금 더 억제되는지 어떻게 하면 아이라인을 잘 그릴 수 있는지를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꼴이다.

수능 후부터 3월까지, 왜 예뻐져야만 하나

여학생들에게 ‘외모 가꾸기’를 부추기는 건 학교 밖 역시 마찬가지다. 여학생들에게 ‘수험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수많은 영역 중 성형외과의 인기는 단연 압도적이다. 이 성형외과들은 ‘수능 끝났으니 이제 예뻐지자’는 문구를 내세워 적극적으로 성형을 홍보한다. 한 반에 열 명 이상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오는 일도 아주 드문 일이 아니다.

출처: ⓒ고함20
여학생을 주 타깃으로 하는 성형외과 광고

작년에 대학에 입학한 이가영(21, 가명)씨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쌍꺼풀 수술을 했다. 이씨의 어머니가 예고도 없이 병원에 예약을 잡아둔 것이다. 실밥을 풀러 들른 병원에서 이씨는 같은 학교 친구들을 두 명이나 만났다. 여고를 나온 이씨의 동창 중 쌍꺼풀이 없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씨처럼 수술을 했다. 이씨는 “성형을 하고 나서 기억에 남았던 반응은 제 아빠예요. 항상 저한테 예쁘다 하고, 엄마가 다이어트를 시킬 때 몰래 간식을 갖다 주기도 해서 성형을 하면 싫어할 줄 알았는데 예뻐졌다며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와 비슷한 오빠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성형에 대해 강요를 하지 않았어요”라며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예뻐져야 할 의무’를 비판했다. 

어른들의 ‘우디르급 태세전환’

이때 문제는 성형, 다이어트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사회에 나가려면, ‘여자 어른’이 되려면 꾸며야 하고 예뻐져야 한다는 요구다.


수능 전까지 여학생들에겐 항상 제재가 가해졌다. 틴트, 염색, 매니큐어, BB크림 등의 ‘치장’, ‘꾸밈’은 들켜서는 안 되는, 하면 벌점을 받고 혼이 나는 영역이었다. 학생들이 화장을 하려 할 때마다 학생들을 설득하고 다그치는 어른들의 말은 언제나 비슷했다. “너희는 안 꾸며도 예뻐.”, “공부에 방해돼.” 


하지만 수능이 끝나자마자 사회는 돌연 말을 바꾼다. “이제 화장도 좀 하고 살도 좀 빼자.”, “예뻐져야지.” 이는 단순히 ‘그동안 공부하느라 하고 싶은 것 제대로 못 했으니 마음껏 해’라는 정도의 응원이 아니다. 화장을 해야만 한다는, 모두가 다이어트를 하니 너도 해야 하고 모두가 쌍꺼풀 수술을 하니 너도 해야 한다는, 그럼으로써 사회가 말하는 미의 기준에 맞춰야만 한다는 어른들의 강요다. 


뿐만 아니라 이 요구를 수행하지 않는 학생은 비정상적인 학생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너는 렌즈 안 껴?’라는 주위 또래들의 말부터 ‘00이 그러면 대학 가서 남자친구 안 생겨’라는 어른들의 말들이 그 낙인이다. 수능이 끝났음에도 꾸미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곧 일탈이 되는 상황이다. 수능 전까지만 해도 꾸미려고 노력하는 것을 일탈로 규정하고 통제한 사회와 어른들의 손쉬운 태세 전환이다.

수능 후, 학교가 정말 바꿔야 할 것은

‘아름다워라! 그리고 성실 근면하자’

(Be a lady of beauty! Be sincere and diligent) 

ㅁ여고의 교훈이다. 학교는 이 교훈의 ‘아름다움’을 두고 “외면적, 신체적 아름다움에 앞서 내면적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정서적 순수성과 어질고 기품 있는 심성을 기르자는 이념”이라 설명하고 있다. 한편, 현재 ㅁ여고에서는 메이크업 특강을 취소해달란 학생의 요구에도 강의취소, 수강선택권 부여 등의 대안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편지를 쓴 학생을 색출하겠다며 나선 학교가 과연 이 교훈을 잘 지키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출처: ⓒ고함20

수능이 끝나고 고3 학생들에게 짧지 않은 시간이 주어진 이 시점, 학생들이 어떤 변화를 선택할지는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학교가 바꿔야 할 것, 기성세대와 사회가 바꿔야 할 것은 수능이 끝난 학생들의 외면이 아니다. 사회가 바꿔야 할 것은 일단 예뻐져야만, 화장을 해야만 ‘여자어른’, ‘여대생’으로 인정하는 사회의 분위기다. 화장해야 한다는 말을 화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보다 훨씬 많이 들어야만 하는 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은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더 큰 사회에서 보다 주체적인 성원이 되길 진정으로 응원하는 학교가 되길 바란다.

* 외부 필진 님의 고함20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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