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더 많은 여성 영웅이 필요한 이유

조회수 2018. 10. 25.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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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복수의 주체가 되는 영화가 반가울 따름이다.

*이 글엔 영화 <미쓰백>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부패한 검사와 정치인의 민낯을 드러내는 상업영화의 유행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사법체계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이런 영화에서 주인공이 감행하는 사적 복수는 관객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한다.


그러나 사이다를 쏟은 뒤 끈적거리는 찝찝함을 더 진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정의의 사도이자 복수의 집행자가 대부분 남성 영웅으로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사적인 여성과 <미쓰백>

영화 속 남성 영웅은 대체로 무대뽀고 다혈질이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그렇지만 내 사람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츤데레적 면모가 매력 포인트로 등장한다. 이는 굉장히 이상화된 형태의, 사회적으로 구성된 남성적 삶의 방식이다. 반면 공사 영역을 막론하고 감정노동을 수행하며 (요구받으며) 살아가는 여성들은 이에 쉽게 이입할 수 있을까.


여성은 특히나 사적 복수의 주체가 아니라 계기로 등장한다. 권력자와 피권력자 사이의 위계를 보여주기 위해 사회적 약자의 무고함과 여린 살갗이 동원된다. 흠씬 두들겨 맞거나 성폭력을 당한 아동과 여성과 장애인의 비참함, 그에 각성해 복수를 결심하는 남자 주인공의 서사는 흔히 보는 서사다. 


영화의 클리셰와는 달리 현실에서 사적 복수는 사실 여성들이 원하는 언어로 보인다. 여성들이 처한 폭력의 양상을 보면 쉽다. 성폭행 신고율은 10% 미만으로 추정되며 그마저도 증거불충분에 의한 무혐의와 무죄로 종결되거나 무고죄로 역고소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공적 언어와 법적 안전망을 갖추지 못한 여성들에게 사적 복수는 상상해봤음 직한, 아니 실제로 종종 벌어지고 있는 삶의 방식이다. 


이런 형국에 여성이 복수의 주체로 등장하는 <미쓰백>은 반가울 따름이다.

출처: ⓒ네이버 무비
영화 <미쓰백>

시궁창에서 싹튼 연대

백상아(한지민 분) 모녀는 왜 여성이 사적 복수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복수의 대가는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상아는 유년 시절 알코올중독 어머니 정명숙(장영남 분)에게 폭행당한 뒤 보육원에 맡겨진다. 이후 그녀는 성폭행 가해자를 찔러 살인미수로 전과자가 되고 이름도 직급도 없이 ‘미쓰백’이라 불리며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인물이다.


상아를 버리고 도망친 명숙의 사정 역시 다르지 않다. 폭력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딸을 성폭행한 남성을 차로 들이받은 그녀가 교도소 복역 후 고독사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상아는 종종 "밑바닥 인생", "나 같은 것" 등의 표현으로 자신의 삶을 비관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정정해주지 않는다. 조력자이자 구혼자인 형사 장섭(이희준 분)은 심지어 명숙의 사망을 알게 된 이후 그녀를 용서하라고 상아를 다그친다. 이에 상아는 “내가 그 여자 때문에 이 시궁창에 산다”고 소리친다. 


사회적 보호 바깥에 있는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는 말은 그가 ‘지금 여기’에서 겪고 있는 고통을 무시하는 언사일 뿐이다. 


용서가 먼 얘기인 것처럼 시궁창 인생과 법은 멀다. 학대당하는 동네 아이 김지은(김시아 분)을 데리고 병원에 가도 상아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지은과 법적 관계도 없으며 전과 기록이 남아있는 자신의 신원을 밝힐 수도 없다. 


폭행 흔적이 선명한 지은은 파출소에 가도 귀가 조처를 당하고 마땅한 보호시설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상아는 지은을 데리고 탈출하는 자력 구제를 감행한다. 


기존 남성 영웅 서사와 <미쓰백>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상아는 기존의 소시민 남성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원과 구제책이 없어 사적 복수와 자력구제를 감행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구제의 이유와 방식이 다르다. 상아는 늘 자신을 동정하며 결혼을 요구하는 장섭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은을 조력한다. 


상아가 지은에게 느끼는 감정은 정의감이나 동정심이 아니라 같은 상처를 지닌 자에 대한 연대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흉터를 드러내며 “너나 나나”라고 말하는 상아는 그저 수직적인 보호자이자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지은 역시 그런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둘은 서로를 시궁창에서 탈출시킨다.

출처: ⓒ네이버 무비
영화 <미쓰백>

피해자의 인생은 시궁창이 아니다

이 꼴 보고 자란 걔(지은) 인생도 별 볼 일 있겠어요?

지은의 친부 김일곤(백수장 분)의 이 대사는 스크린 속 상아가 성장해가면서 정면으로 반박된다.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두 여자, 일곤의 애인인 주미경(권소현 분)과 백상아의 삶이 갈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궁창’이라는 말은 상아의 대척점에 있는 미경의 입에서도 나온다. 그녀는 대외적으로 빈곤해 보이지 않는 차림을 하며 신실한 교인이지만, 알코올·게임 중독에 폭력적이기까지 한 애인 일곤과 지은을 부양하는 유흥업 종사자다. 미경은 수시로 지은을 학대하고 이런 만행이 폭로될 위기에 처하자 지은을 살인할 계획까지 세우며 상아와 대립한다.


이와 달리 처음엔 지은을 방관하던 상아는 연대를 결심한 후 폭력의 고리를 끊어낸다. 영화의 절정에서 지은을 두고 그녀는 미경과 몸싸움을 벌인다. 도중 미경이 돌에 머리를 찧고 정신을 잃자 상아는 절규한다. ‘죽이느냐, 살리느냐’ 또다시 사적 복수의 갈림길에 선 그녀는 손에 돌을 들고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그러나 결국 미경을 살려둠으로써 일곤의 앞선 대사는 스크린 상에서 정면으로 부정당한다. 같은 시궁창에서도 다른 삶을 사는 두 여성 인물을 통해 <미쓰백>은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이 꼴"을 본 건 피해자 탓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꼴"을 봤다고 시궁창 같은 현실과 고통에만 매여있으란 법도 없다. 


다만 '별 볼 일 있는 인생’을 그리는 방식이 평면적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사회적 약자가 가족관계와 공적 기관으로 편입되는 결말은 피해 이후의 삶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대요’ 정도로 뭉뚱그린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별 볼 일 있는 인생이란 가정이 있고 밝고 화목하며 정상적인 사회의 틀 안에 안주하는 것인가? 


미경과 일곤의 학대가 세상에 알려진 뒤 지은은 장섭의 가정에서 이상적인 학교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상아가 자신의 인생을 시궁창이라 했던 이유는 녹록잖은 생계 때문만이 아니라 피해의 고통과 사회적(가정사가 복잡한 전과자 여성) 고립감 때문이다. 갑자기 ‘일반' 초등학생의 삶을 사는 지은의 모습은 영화가 그간 끌고 왔던 주제 의식과 다소 동떨어져 보였다. 


영화 말미에선 상아 역시 "엄마, 나 같은 게 엄마가 되고 싶어도 괜찮은 거야?"라고 회상하며 명숙을 용서한다. 지은과의 연대감이 모성으로 치환되며 갑작스레 자신의 엄마도 용서해버리는 것이다. 


한 사건을 계기로 피해의 고통을 벗어던지고 모성을 입는 상아의 모습은 평면적이다. 애초에 상아와 지은과의 관계를 유사 모녀로 묘사하는 것 역시 지금껏 화면에 담겨온 그들의 연대를 단순화한다. 상아가 엄마가 아니라 미쓰백으로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결말이다.

출처: ⓒ네이버 무비
영화 <미쓰백>

키다리 아저씨, 남성 영웅을 넘어서

종종 <아저씨> 여자판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미쓰백>은 남성 영화의 문법을 일부 답습하고 있다. 학대당하는 아동을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방식이나 상처를 극복하고 가해자를 용서하는 서사가 그러하다.


그런데도 <미쓰백>은 키다리 아저씨나 남성 영웅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시각적으로도 드러나는데 가령 첫 만남에서 결말까지 영화엔 지은과 상아가 대칭을 이루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첫 만남에서 쪼그린 지은을 내려다보던 상아가 지은과 눈높이를 맞추고 때론 무릎을 꿇기도 한다.

출처: ⓒ조이뉴스

이러한 연출은 사회가 규정한 엄마와 딸 혹은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다소 수직적인 구도가 아닌 수평적인 바라봄을 만들어 낸다. 수직적인 구원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치유하고 보듬고 구원하는 것이다.


폭력성과 전형적인 악인의 등장, 전형적인 결말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그러나 입체적인 피해자를 등장시키는 한편 사각지대에서의 삶과 여성의 연대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미쓰백>은 비교적 덜 끈적거리는 ‘사이다’로 남을 영화가 아닐까.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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