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영화 '퍼스트맨'을 디스한 이유

조회수 2018. 10. 23. 13: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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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달 착륙은 미국의 위대한 업적이다. 그 업적이 미국으로부터 나왔다는 게 부끄러운가. 많은 이들이 닐 암스트롱을, 달 착륙을 생각하면 미국 성조기를 떠올린다. (성조기 장면이 빠진) <퍼스트맨>을 보고 싶지 않다.

- 트럼프 대통령

<퍼스트맨>의 개봉 전 (이 영화에 대한) 트럼프의 분노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미국인이 최초로 달에 갔다는 신화를 그가 싫어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데이미언 셔젤(Damien Chazelle)이 음모론을 영화화한 걸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성조기를 꽂는 장면이 없다는 게 이유였음을 알았다.


그게 그렇게 분노할 이유일까 싶었지만, 영화를 보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영화를 상당히 잘 읽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글은 그에 관해 써 내려갈 것이며 당연히 스포일러가 잔뜩 있다.

역사보다는 개인사

앞서 트럼프가 불만을 표했던 장면은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라이언 고슬링)의 개인적인 행동으로 대체된다. 즉 성조기를 꽂으며 우주에 최초로 미국의 영토를 확장했던 사건은 가려지고 먼저 떠난 딸의 물건을 놓아주는 개인적인 의식이 그 앞에 서 있다.


이렇게 <퍼스트맨>이 카메라에 담은 건 (미국이 주도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닐 암스트롱 개인의 얼굴이다. 인류사적 의미가 있던 사건보다 한 인물의 혼란, 혼돈, 그리고 아픔이 한 인간에게 새긴 상처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달 표면 크레이터처럼 움푹 패인 상처를 보게 한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영화가 전개될수록 점점 흐릿해진다. 프로젝트 초기에 있던 명분과 대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고 나중엔 상처들 탓에 포기할 수 없는 이유만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이 불명확함 속에 닐 암스트롱에게 있었을 하나의 이유는 이 대사를 통해 추측해봐야 한다. 


달에서의 수학 공식에 관해 말하던 그는 “달은 지구와 모든 게 반대야”라는 대사를 아내 자넷(클레어 포이)에게 한다. 


이 대사와 함께 그가 지구에서 가져갔던 유일한 물건이 딸의 팔찌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표면적으로 이 장면은 유예했던 딸과의 진짜 이별 그리고 상처를 씻어내는 장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선 대사와 이 장면을 함께 읽으면? 


그는 삶과 죽음이 반대인 공간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는 죽은 딸이 달에 살아있기를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팔찌를 던지지 않았을까. 그가 어떤 식으로든 딸과 만날 걸 기대했을 것만 같다.

영광보다는 그림자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 개인의 시간을 담는 동시에 우주 프로젝트의 그림자를 보게 한다. 퍼스트맨이 될 뻔했던 도전자들의 희생과 죽음. 그 많은 사건을 지나 닐 암스트롱은 달을 밟았다.


이 영화는 그가 ‘다른 이들보다 특별하다’라고 묘사하지도 않는다. 달에 첫발을 내딛는 임무는 정부의 지원, 그러니까 넉넉한 세금과 시간이 있었다면 필연적으로 성공했을 일이다. 닐 암스트롱이 위대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가 아니라도 희생이 더 있었다면 다른 미국인이 언젠가는 해냈을 일이라는 태도를 <퍼스트맨>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마지막 장면은 서글픈 감정과 함께 어떤 기시감을 준다. 역사에 남을 일을 해낸 암스트롱은 귀환 이후 아내와 만나는 장면에서 웃지 않는다. 미디어 앞에서 환하게 웃던 아내도 미소를 보내지 않는다. 


거대한 벽을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 실패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왜 이 영화는 암스트롱의 환희와 승리의 순간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이 장면에서 암스트롱은 공허해 보였고 해탈한 느낌도 든다. 국가의 목표 아래 움직여 왔던 그. 동료들의 죽음을 밟고서 이 임무를 해야 했던 그. 달에도 딸이 없음을 확인하고 온 그에겐 더는 삶을 움직일 동력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우주 어딘가를 부유하며 갈 곳을 잃은 존재. 그래서 두 사람 사이의 벽이 우주와 지구만큼 멀어 보였다. 


이런 공허함과 방황은 ‘9.11 테러’ 이후의 군사 작전을 주제로 다룬 영화의 엔딩과 닮았다. <제로 다크 서티>의 마야,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크리스 카일은 임무를 완료했지만 마지막엔 돌아갈 곳이 없었다. <퍼스트맨>의 엔딩 또한 그 영화들과 겹치는 감이 있어 기시감을 느껴야 했다.

영잘알 트럼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미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을 트럼프에게 이 영화는 반가울 리 없다. <퍼스트맨>이 세계인이 미국의 업적에 감탄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했다면 위대한 미국 역사의 재연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장면 뒤엔 미디어 뒤에서 미소를 잃은 인간이 서 있었다. 그래서 <퍼스트맨>은 조금 다른 뉘앙스의 영화가 된다. 미국은 승리했으나 한 인간은 승리하지 못한 이야기. 국가라는 이름으로 사라진 수많은 퍼스트맨을 소환하는 이야기. 트럼프는 이 영화를 제대로 읽었다.

* 외부 필진 영화 읽어주는 남자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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