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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사건'이 아니다

조회수 2018. 10. 5.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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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중요하다. 아주 중요하다.

일전에 오랜 논의 끝에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을 조현병으로 개정했다. 이름으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였다. 실제로 schizophrenia라는 병은 정신이 분열되는 병이 아니니까.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비슷한 이유에서 간질은 뇌전증으로, 문둥병은 나병을 거쳐 한센병으로 개정됐다. 조현병의 영어 이름인 schizophrenia 자체가 비슷한 이유로 이전의 이름인 madness나 insanity가 가진 부정적인 뉘앙스를 극복하고자 나중에 만들어진 용어다. 


우리나라에서 찾아낸 조현이란 말은 현을 조율한다는 뜻이다. 현악기는 그 현이 제대로 조율됐을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어떠한 이유로 정신의 현이 조율되지 않아 불협화음을 내게 되는 병이란 뜻을 조현병이란 이름에 담았다. 용어가 개정됐을 때 학회의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새 이름이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다만 한가지. 


전국에 계신 모든 조현병 씨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건실한 사회인 조현병 씨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요,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으신 셈이지만, 좋은 취지이니 부디 이해해주시겠지. 미안해요. 趙賢秉(조현병) 씨, 曺顯炳(조현병) 씨.

출처: ⓒ조선일보 캡처

아들의 이름을 짓고 나서 생긴 걱정 중 하나는 이들과 이름이 같은 유명인이 생기면 어쩌나 그래서 이름을 갖고 놀림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유명한 동명이인이 없는 나도 어려서는 이효춘, 나이 들어선 이효리와 무슨 관계냐는 농담을 들었으니까. 잘생긴 연예인이거나 훌륭한 인격자와 동명이인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신창원, 유영철 같은 이름이면 어쩌냔 말이다.


다행히 아직 아들과 동명이인인 전국의 이00 씨들은 별로 출세도 못 하고 그렇다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짓지도 않아서 아들은 이름으로 곤란해지는 일은 없었다. 앞으로도 쭈욱 이00 씨들이 평범하게 살아주길 아비로서 바란다.  


이름은 중요하다. 아주 중요하다. 옛적에는 이름을 부르는 행위 자체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멀쩡한 이름을 지어두고도 아이들을 개똥이니 말뚝이니 하고 불렀다. 천하게 부르고 제 이름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야 귀신이 해코지 않는다고 믿었다. 양반들은 족보에 오르는 이름을 두고 ‘자’나 ‘호’를 지어 이름에 대신했다. 새 왕이 등극하면 왕의 이름자와 같은 글자를 쓰는 전국의 모든 이가 이름의 글자를 바꿨다. ‘기휘’의 전통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출처: ⓒJTBC 캡처

개인은 아름다운 이름을 백세에 전할 재주가 없다면 적어도 더러운 오명을 후대에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회는 선한 일을 한 이의 이름을 역사에 적어 남겨서 오래 그를 숭상해야 하고 악한 일을 한 자의 이름 또한 오래 기억해야 한다. 이름으로 오래 기억하는 것처럼 큰 상도, 또 큰 벌도 없다.


걸그룹의 멤버였던 여성 연예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이전엔 이런 일이 있으면 사건에 그 피해자의 이름을 붙였다. 자신이 피해자가 돼 겪은 끔찍한 일이 자신의 이름으로 회자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2차 가해란 점이 널리 동의를 얻으며 이제는 그 악습도 개선되는 모습이 보여 불행 중 다행이다. 이런 사건을 조두순 사건처럼 가해자의 이름으로 불러 기억하는 것은 피해자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 외부 필진 이효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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