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범의 '성관계 동영상 협박'이 가능했던 이유

조회수 2018. 10. 5.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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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영상 공유해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연예인 생활 끝나게 해줄게.

두 사람이 관계를 맺었고 한 사람만 무릎을 꿇었다. '개인 간 성적 영상물'*의 존재는 남성에겐 무기가 됐고 여성에겐 두려움이 됐다.


30초 분량의 성관계 동영상으로 가수 구하라 씨를 협박한 헤어디자이너 최종범 씨의 일이다. 이 여성 연예인은 결국 영상을 이용한 협박 때문에 최 씨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난달 13일 구 씨의 자택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최 씨는 직접 경찰에 신고했고 신고 전후에 그는 "실망하게 하지 않는다"라는 두 통의 제보 메일을 디스패치에 보냈다.

출처: ⓒ디스패치
출처: ⓒ디스패치

이후 폭행을 주장하는 양측의 상처 사진과 진단서가 공개되며 진실 공방이 오갔다. 체격 차이, 확연한 힘의 차이, 멍의 위치 등 수상한 점이 많았지만, 구 씨는 소모전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 사안만 보면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그동안 구 씨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셌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최 씨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저장한 성관계 영상으로 구 씨를 협박했음이 밝혀졌다. 최 씨가 메일에 적은 ‘실망하게 하지 않는다’라는 말의 의미와 구 씨가 사건을 덮으려고 했던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여성 연예인에겐 피해 사실 고발보다 빠른 수습이 더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쌍방과실이라며 사건을 덮어야 했고 숨겨야 했다. 폭력 가해자라는 오해보다 동영상 유출 피해자라는 낙인이 더 가혹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협박이 될 수 없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 사실 영상의 존재는 여성의 동의 없이 영상을 몰래 찍고 유포하려 한 가해자의 범죄 행위를 입증할 뿐이다. 피해 여성의 잘못이나 죄가 아니다. 최 씨가 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타격을 입는 것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최 씨여야 한다.


하지만 어떤가. 한국 사회에서는 영상 속 여성이 죄인이 되어 왔다. 최 씨의 협박과 구 씨의 반응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출처: ⓒ여성가족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몰카, 리벤지 포르노 완전 근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근 몇 년간 여성가족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운영을 개시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몰카 유통과 불법 야동 웹하드에 대한 탐사를 방영했고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산업에 대해 특별수사를 요구"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참여 인원 20만 명을 넘긴 상황이다. 


이렇게 사회는 몰카 범죄 심각성에 대해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그 범죄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당연히 소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 씨가 협박에 시달릴 수 있던 이유도 같다. 자신이 어떻게 소비될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촬영자와 유포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용자 역시 공범이다.


최 씨의 행동을 디지털 성범죄로 완성하는 것은 바로 이 사회다. 호기심으로 영상을 찾아보며 클릭하고 친한 친구에게만 몰래 공유하는 이용자 개인이다. 한 번 인터넷에 유포된 디지털 성범죄 영상들은 수많은 사이트로 퍼져나간다.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해도 모든 영상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포기하라는 말을 듣는다. 


영상이 퍼질수록 피해자들은 주위 사람이 자신의 영상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워한다.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많다. 아무도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피해.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 생활을 끝내게 해주겠다"는 최 씨의 발언은 바로 이러한 동조에 힘입어 실질적인 협박이 된다.

출처: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이슈가 터진 이후 각종 남초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들. 피해자 구 씨의 영상을 공유해 달라는 글이 수없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몰래 유포된 영상은 ‘음란물’이 아니다

절대 과한 말이 아니다. 이미 남초 사이트, 포탈 댓글란 등에선 저장된 구 씨의 영상(피해영상)을 공유해달라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음란물 사이트에 ‘닮은꼴’이라면서 다른 피해자의 영상이 올라오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동의 없이 찍은 영상, 유출된 영상은 음란물이 아닌 ‘범죄 영상’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반대하고 최 씨의 행동이 잘못됐음에 동의한다면 공범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범죄자가 아니기를 바란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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