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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연예인은 좀 ‘무식’해도 괜찮은 걸까?

역사의식에 대한 설현과 피오의 온도 차
직썰 작성일자2018.10.04. | 18,252  view

2018년은 이영자부터 송은이, 김숙, 박나래, 장도연까지 여성 예능인들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도드라진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오랜 기간 TV를 점령해 온 ‘남탕 예능’ 속에서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여성 예능인들이 가까스로 돌파구를 만들어 냈다. 조금씩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켜 나가며 자신을 이야기했고 대중들은 이들의 진솔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에 화답했다. 사회 분위기의 변화와 맞닿은 흐름이었다. 


여기까지만 읽었다면 혹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여성 예능이 대세가 됐구나! 이제 여성 예능인들도 많은 기회를 잡게 됐구나! 하고 착각하지 말자. 실상 달라진 건 그리 많지 않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남자들(만)이 예능하기 좋은 세상이다.

지난 9월 새롭게 시작한 KBS2 예능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은 첫 회에 김숙을 섭외해 여성 예능인의 고충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다. 예능 판이 남성 중심이라는 날 선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전체 예능 출연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36.8%에 불과하다는 근거도 제시됐다. 그나마 2018년에 들어 많이 상향된 수치라고.


그런데 공교로운 일인지 현실의 반영인지 이 대화의 패널은 모두 남성(메인 MC인 유희열과 소설가 김중혁,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강원국,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으로만 구성돼 있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통렬한 자기반성일까, 뒷짐 진 자기부정일까, 정체성 잃은 자기모순일까. 


단순히 비율의 문제만은 아니다. 여전히 남자들이 예능하기 좋은 세상이라는 현실 명제는 남성들이 예능 판에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훨씬 더 관대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령 남자들의 무지는 손쉽게 웃음으로 희석되거나 귀엽게(?) 포장된다. 심지어 그것이 한국에서 예민하고 민감한 주제로 다뤄지는 역사와 관련된 내용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tvN <신서유기> 시리즈는 출연자들의 무지를 아예 대놓고 웃음의 도구로 활용한다. 프로그램 내에서 퀴즈쇼는 빠지지 않는 코스인데 출연자들의 기상천외한 대답은 폭소를 자아내곤 했다.

최근 <신서유기5>는 새로 합류한 블락비의 피오에게 민호와 비교해 누가 더 바보냐고 물으며 판을 깔았다. 제작진은 여행을 떠나기 앞서 캐릭터 선정을 위해 퀴즈를 냈는데 그중에는 역사 문제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제작진이 "대동여지도를 만든 지리학자(정답은 김정호다)"가 누군지 묻자 블락비의 피오는 정약용, 위너의 송민호는 김대동이라고 말한다. 박혁거세가 어느 나라의 시조(정답은 신라)라는 문제에 대한 대답은 더 황당했다. 피오는 거침없이 '중국'이라고 외쳤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제작진도 술렁였다. 방송사고라고 해도 무방할 장면이었다. 

그런데도 강호동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괜찮아, 괜찮아, 뭐 어때, 와이?”라고 웃기 바쁘다. 그러면서 “예능은 뱉어야 돼”라는 조언(?)을 건네며 상황을 마무리한다. 좀 더 진중한 모양새로 매듭지어졌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무지는 죄가 아니다. 그것이 역사에 대한 것일 때 씁쓸함이 남는 건 사실이지만, 모른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알아가고자 하는 태도와 의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우리가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여성 예능인에게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똑같이 웃어넘길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로 AOA의 설현은 지난 2016년 '안중근 논란’(퀴즈에서 안중근의 이름을 맞추지 못한)으로 살벌한 비난에 직면했었다. 당시 설현은 함께 논란이 된 동료 지민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공식 사과 자리까지 가져야 했다. 그게 주홍글씨처럼 남아 설현은 지금도 그와 관련된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설현은 신사임당과 김구까지는 알아맞혔는데 말이다.

당시에도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장난식으로 웃어넘기는 태도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예능에 출연하는 다른 남성들에 대해서는 설현에게 적용됐던 냉정한 잣대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서유기5>의 제작진은 박혁거세가 중국의 시조라는 피오의 발언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방송에 내보냈다. 설현 때와 같은 규모의 논란이나 이슈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괜찮다"는 강호동의 말처럼 그동안 남자 예능인의 무지는 (설령 그것이 역사의식의 무지라 할지라도) 비교적 가볍게 받아들여지거나 적극적으로 웃음 소재가 되기도 했다. <신서유기5>의 제작진도 이를 별다른 의문 없이 내면화했던 것이리라. 


예능의 기본은 웃음이라지만, <신서유기5>의 작정한 듯한 무식은 그리 반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여전히 남자들이 예능하기 좋은 세상’을 발견하게 돼 씁쓸함이 커진다.

* 외부 필진 님의 버락킴너의길을가라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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