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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떠돌던 제주 퀴어 축제에서 느낀 것

조회수 2018. 10. 4. 18: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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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퀴어문화축제의 무사 개최를 기원한다.

걱정 속에서 우리는 광장에 모였다

9월 29일 열린 제주퀴어문화축제는 올해 제2회를 맞이한 지역 퀴어문화축제다. 서울퀴어문화축제와는 다른 매력의 지역 퀴어문화축제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으나 축제의 날이 다가올수록 설렘보다 걱정이 커졌다. 


제주퀴어문화축제가 있기 한 달여 전인 9월 8일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있었다.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개최하는 퀴어문화축제였다. 당일 상황은 전혀 좋지 않았다. 인천 동구청에서는 주차 공간을 확보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장소 이용을 불허했고 이를 빌미로 혐오 세력들은 해당 축제를 불법 집회로 규정 짓고 몰려왔다. 


그들은 축제 참가자들을 둘러싸고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장소 이용이 불허 났을 뿐 해당 축제는 적법한 절차로 신고완료된 집회였음을 확실히 밝혀둔다. 결국 준비된 행사는커녕 축제 참가자들은 혐오세력에게 갇혀 오도가도 못한 채 몇 시간동안 혐오발언을 들어야만 했다. 


우리 지역에 성소수자는 없다는 강고한 믿음, 있어도 눈앞에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후안무치. 그 혐오 정서는 어디에나 있고 제주에도 혐오세력이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 인천의 경우를 보며 나는 제주에서 그들과 대치하게 될 일이 두려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 제주퀴어문화축제 공식 SNS에는 축제를 방해하려는 혐오세력의 움직임이 파악되고 있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이에 혐오세력의 공간 점거를 막기 위해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측과 참가자들이 전날 오후 6시부터 모여 밤새 공원 광장을 지켰다.

출처: ⓒ고함20
제주 신산공원에 배치된 경찰들

다행히 축제는 무사히 열렸다

축제 당일엔 온종일 비가 왔다. 개회 시작 시간에 맞춰 축제 장소였던 제주시 신산공원에 도착했다. <탐라는 퀴어>라는 제주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이 담긴 현수막이 보였다. 광장 입구 길 양옆에 선 혐오세력들은 "동성애는 죄악" 등의 발언들로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거북함이 느껴졌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서오세요”하는 스태프의 환대를 받으면서 모든 두려움이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솔직히 정말 뭉클했다. 스태프님 와락 안고 울고 싶을 정도로.) 


제주퀴어문화축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다. 작은 광장 한가운데의 조형물에는 퀴어 플래그 만국기가 알록달록 걸려 있었고 그 주변으로 40여 개의 부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양성애 가시화 주간이라며 바이 플래그가 담긴 스티커나 카드를 배포하는 부스들이 많았다. 

출처: ⓒ 고함20

부스들 사이의 작은 무대는 특별한 장치 없이 음향 설비 정도만 있었다. 단상과 함께 위계도 사라진 그 무대 공간에서는 조직위가 준비한 개회식 및 공연뿐 아니라 참가자들이 직접 나오는 ‘장퀴자랑’도 진행됐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제주퀴어문화축제만의 행사는 ‘서클댄스‘. 말그대로 참가자들이 모여 원을 만들어 돌면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스탭을 밟고 잔잔한 음악에 맞춰 땅을 짚고 일어서 하늘로 손을 뻗기도 했다. 서로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니 비를 맞으면서도 기분은 뽀송해졌다.

출처: ⓒ고함20
퀴어 플래그 만국기가 매달린 제주퀴어문화축제 현장

혐오 세력과의 대치

퀴어문화축제의 꽃인 퍼레이드 시간이 다가오자 비가 그쳤다. 기쁜 일이었지만 이는 혐오 세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퍼레이드 시간에 맞춰 몰려온 그들은 광장 입구를 가득 메워 앉고서는 길을 비키지 않았다. 결국 참가자들은 깃발을 펼쳐 올린 채로 출발하지 못하고 입구에서 혐오 세력과 대치해야 했다.


한 시간 가까이 실랑이가 오간 뒤에야 경찰의 협조로 조금의 샛길을 내어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길로 나오지도 못하고 잔디를 짓밟고 나와야만 했고 함께 걸어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 참가자들은 두어 명씩 빠져나와 혹여라도 길이 다시 막힐세라 뛰어야만 했다. 혐오 세력들은 사진을 찍으며 따라왔다. 


가히 난장판이기는 했지만 우리는 충돌 없이 성공적으로 거리로 나왔고 깃발은 다시 펼쳐졌다.

출처: ⓒ 고함20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행사 차량 두 대 중 한 대는 결국 혐오 세력의 방해로 거리를 누비지 못했다. 반대집회 측 사람 대여섯 명이 차량 앞에 누워 차가 출발하지 못하도록 막은 뒤 다른 남성 한 명이 세워진 트럭 밑에 스스로 들어간 것. 


이 사진은 <제주퀴어축제 차량이 사람을 덮쳤다>는 가짜뉴스로 둔갑해 인터넷을 떠돌았다. 축제 이후 그 가짜뉴스들을 확인하면서, 우리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다시금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기에 있다”

앞서 인천퀴어문화축제의 사례를 언급하며 우려를 표했지만, 혐오세력과의 대치는 지역 퀴어문화축제들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퀴어문화축제가 된 서울퀴어문화축제 역시 앞서 겪어왔고 여전히 겪고 있는 문제다.


퀴어문화축제 옆에 선 혐오 세력은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다"라는 그들의 의견을 단순히 개진하고만 있지 않다. 


일차적으로는 참가자들에게 직접 혐오 발언을 내뱉음으로써 언어폭력을 행사한다. (인천에서는 물리적 폭력도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은 폭력으로써 우리를 억압하기도 한다.) 2차적으로는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막기 위해 광장 이용과 거리 행진을 필사적으로 방해한다. 그 과정에서 신변 위협을 위해 참가자들을 불법 촬영하는 것은 덤이다. 


이 폭력적인 방해 공작들은 지역에 상관없이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곳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따라붙는다. 


그러나 혐오 세력과의 대치에도 불구하고 제주퀴어문화축제는 ‘무사’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광장과 거리에서 안전한 방식으로 축제를 즐겼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에게 힘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퀴어문화축제가 서울뿐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그들의 방해가 있을지라도 ‘우리가 여기에 존재함’을 알리기 위해. 그렇기 때문에 퀴어문화축제는 우리에게 단순히 축제가 아니라 존재 투쟁이다. 


10월 6일에는 해운대 구남로광장에서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혐오세력들은 이미 ‘레알러브 시민축제’라는 이름의 맞불 집회를 예고한 상태다. 부디 부산퀴어문화축제가 무사히 개최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부산에도 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우리는 당신의 옆에, 당신과 함께 존재하며 살아간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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