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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저항해서' 유죄를 선고받은 두 여성

조회수 2018. 9. 13. 14: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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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30년 전의 일이 반복됐다.

과거 인천에서 진행됐던 한 재판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이용자들 사이에 지난 2017년 4월 인천지법 형사12부(이영광 부장판사)가 중상해 혐의로 기소됐던 주부 A 씨(당시 56)에게 내린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선고가 알려지면서다.

출처: ⓒ연합뉴스

당시 A 씨는 2016년 2월경 동행자 B 씨(당시 46)의 혀를 깨물어 다치게 한 (전치 7주의 병원 진단) 혐의로 기소됐는데 문제는 A 씨가 혀를 깨물게 된 배경에 있었다. 당시 B씨가 A씨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며 강제로 입맞춤을 한 것. 즉, B 씨가 A 씨를 강제 추행하는 상황이었단 뜻이다. (A씨는 그 과정에서 폭력 행위 또한 동반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A 씨는 "B 씨가 얼굴을 때린 후 멱살을 잡고 강제로 키스하려 했다"며 "혀를 깨문 건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 전원이 A 씨에게 유죄평결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 "피해자가 입은 상해의 정도가 중하고 피해자와 합의하지도 못했다."


결국 재판부와 배심원 모두가 성폭력 상황에서의 여성의 정당방위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뒤늦게 알려진 이 재판 내용에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는 상황. 거기에 분노를 키우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이 사건이 이미 30년 전에 일어났던, 역시나 어이없는 재판으로 여성인권에 경종을 울렸던 한 사건과 지나칠 정도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여성신문

1988년 경북에서 일어난 소위 '안동 주부 사건'은 두 명의 남성이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 하며 일어났다. 가해자들은 성폭행을 목적으로 귀가 중이던 피해자를 잡고 강제로 추행하고 저항하는 피해자를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한 남성은 피해자에게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는데 피해 여성이 그의 혀를 깨물면서 혀가 절단됐다.


이후 피해 여성은 피해 사실을 집에 알리지도 못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성폭력은 신고율이 매우 낮은 범죄다.) 어이없게도 그를 강간하려 한 성폭력 가해자들이 여성을 고소하면서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니까 '성폭행하려 했는데 여자가 날 깨물어서 혀가 잘렸으니' 그 여성을 폭력죄로 고소한 거다. 일반 상식에 비춰볼 때 황당한 일이지만, 더 황당하게도 1심 판결에서 대구지법 안동지원 합의부는 피해 여성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를 적용,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후 사건을 끈질기게 취재, 보도하며 피해 여성의 무죄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 여성신문 측은 당시 재판의 내용, 판결문은 물론 언론 보도, 일반 대중의 반응까지 모두 "성폭력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성과 성폭력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회고한다. (즉, 이 사건은 일반적인 상황의 정당방위 인정 문제가 아니라 여성 문제라는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 보도는 ‘흥밋거리’ ‘엽기사건’ 수준을 넘지 못했다. 여성신문은 곧바로 취재진을 사건 현장인 경북 안동에 급파했다. 갖가지 억측을 바로잡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수사, 재판 과정에서 피해여성에게 가해진 2차 피해를 공론화하기 위해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현장 취재에 나섰다."

"가해자의 변호사는 피해자 피해자가 사건 당일 먹은 술의 양, 동서와의 불화 등을 계속 거론하면서 사건의 중심에서 벗어나 피해자를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세웠다. 검사도 폭행 당시 행위의 순서가 진술 때마다 바뀐다며 피해자를 호통쳤다."


- 출처: "[여성의 삶 바꾼 30대 사건] 성폭력범 혀 자른 피해자, ‘부도덕한 여자’로 내몰리다.", 여성신문

결국, 1심 구형 이후 여성의전화 등 여성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여성단체들의 공동투쟁이 이어지면서 이듬해 항소심에선 대구고법 형사부가 피해 여성의 정당방위를 인정, 피해 여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출처: ⓒ여성신문

이 안동 주부 사건은 여성 대상 성폭력에 관한 사회의 부조리한 시선과 함께 성폭력 상황에서의 저항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그러나 저항 행위가 없다면 성폭행이 성립되지도 않는다) 여성들이 처한 모순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동시에 그에 대한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낸 승리의 기억이기도 하다.


그리고 안동 주부 사건과 그 구도가 놀랍도록 비슷한 2017년 A씨의 사건은 바로 그 승리의 기억을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많은 이들의 분노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특히, 해당 사건이 2016년 '00계_내_성폭력' 운동을 겪고 2018년의 '미투' 운동을 목전에 뒀던 2017년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은 더욱 절망스런 일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는 등 사회적으로 여성 이슈가 활발히 이뤄졌었다는 평가를 받은 2017년에, 30년 전과 같은 부조리한 사건이 (더 안 좋은 결과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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