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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십, 열정과 시간을 앗아가는 도둑

조회수 2018. 8. 13. 19: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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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턴십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 달에 2~3번 이메일과 쪽지로 인턴 관련 질문을 받는다. 대학생 시절 ‘아름다운 가게’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이때의 경험을 인턴 활동 일지 형식으로 블로그에 올려뒀는데 이를 보고 문의가 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면접에서 합격할 수 있는지 물어오는 문의가 10번 중 3번 정도라면 나머지는 월급에 대한 문의였다. 짧게는 2달, 많게는 4달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인턴 활동에 금전 문제에 관한 문의는 당연하다. 동시에 그것을 문의해서 알아보고 지원을 할지 말지 고민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인턴 급여 문제가 심각해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필자의 인턴 활동 장면

나는 2012년 1월부터 2월까지 약 2달간 인턴 생활을 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인턴 활동 지원금을 받았다. 재미있었던 건 같은 시간 근무하는 동기 기수인데도 고용노동부 지원금 외로 나오는 학교 지원금에 따라 40만 원부터 70만 원까지 월급이 천차만별이었던 점이다. 월급이 나오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용노동부의 지원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인턴 활동에 참여한 경우 무급으로 일하는 친구도 있었다.  


근무 내용도 중요한 문제였다. 필자가 고용노동부의 지원금만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턴 활동을 한 이유는 ‘아름다운 가게’ 인턴 근무 프로그램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2일간의 단체 소개와 체험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서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책상에 앉아 흔히 말하는 ‘카피+코피+커피’의 과정을 치를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나 매장에 나가는 물건을 정리하는 ‘되살림터’ 체험, 직접 매장에 나가보는 매장 체험, 독거 어르신과 저소득 가구에 생필품을 나눠주는 ‘나눔 보따리’ 포장 작업, 배치된 부서에서 진행하는 사업 관련 외근 체험을 비롯해 인턴이 보는 단체에 대해 의견을 듣는 발표 시간도 2번이나 있었다. 

출처: 연합뉴스
아름다운 가게

더 좋았던 건 정기적으로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강연이었다. 강연 주제가 마음에 들면 근무하다가도 내려가 들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마음껏 빌려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이밖에도 내 전공과 관련된 업무를 받을 수 있었다. 언론학을 배웠던 나는 매일 아침 사회공헌 관련 뉴스를 부서 전체 직원에게 이메일로 정리해 보내주는 일을 했다. 홈페이지에 올라갈 기사 작성도 내 주 업무였다. 국내외 비영리단체의 사회공헌사업 및 홈페이지 구성에 대한 보고서 작성도 추가로 주어졌다. 이렇게 두 달여 동안 알차게 인턴 활동을 한 덕분에 그때 배운 것들을 현재 근무하는 단체에서도 활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알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2015년 1월 28일에는 청년유니온 주최로 ‘청년 과도기 노동 당사자 증언 대회’가 열렸다. 대회 참가자들의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미술관에서 두 달간 일했다는 학생의 이야기였다. 그곳에는 인턴 교육 프로그램도 없었으며 주 업무의 90%가 청소와 설거지와 같은 일이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미술관은 왜 인턴을 채용했는지 의문이 든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나는 두 번의 방학 동안 인턴을 뽑는 단체에서 근무했다. 이 기간 스쳐 간 대학생 인턴은 총 7명이었다. 인턴 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직접 짤 때마다 대학생 때 겪었던 인턴 경험을 참고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출퇴근 시간과 전공 관련성이었다. 

우선, 출퇴근 시간을 이야기해보자. 내가 인턴 활동을 하며 가장 아쉬웠던 건 근무 시간의 유연성이었다. 인턴을 하는 동안 나는 거리상의 이유로 오전이나 저녁 시간 들을 수 있던 학원 수업을 포기해야 했다. 출근 후 한 시간(오전 9시부터 10시), 퇴근 전 두 시간 전(오후 4시부터 6시)에는 집중도가 현격히 떨어져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데 이때 차라리 학원을 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는데 시간이라도 줄여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기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내가 근무하는 단체의 인턴 출퇴근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정했다. 하루 5시간 근무해서 제대로 배우겠냐는 우려도 있지만, 인턴에게 하루 8시간씩 가르칠만한 알찬 교육거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또, 주말에 근무하게 되면 반드시 대체근무를 하게 했는데 이것만 지켜도 인턴은 자신의 시간을 알차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최근엔 오후 1시 출근 5시 퇴근으로 바꿨다.) 


두 번째는 업무의 전공 관련성이었다.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학생에게는 번역 업무와 사업제안서 작성을 해보게 했다. 미술사를 공부하던 친구에게는 동아리 로고 디자인과 명함 디자인을 과제로 내줬다. 친구들 모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맡았기에 결과물에 만족해하며 인턴과정을 수료했다. 이외에도 언론과 인터뷰하거나 법정에서 문화재 관련 재판이 있을 때, 박물관에 볼만한 전시가 있을 때 인턴 친구들과 함께했다. 이들에게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우리 단체에 맡겼기 때문이다. 책임감을 안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약 2년 전부터는 시급을 만 원으로 책정해서 인턴에게 지급하고 있다. 시급 만 원을 지급하니 단체 입장에서도 인턴을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필자가 인턴 재직 시 받은 명찰

인턴 환경이 안 좋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 사람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에 많은 청년이 희생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시민단체 경력 7년 차인 나에게도 일어났다.


현재 나는 국회 연수 프로그램을 듣고 있다. 강의를 듣고 연구논문을 내고 3개월간 인턴 활동을 마치면 이수증이 나온다.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매너리즘 때문에 단체의 허락을 구하고 휴직 후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6월에 면접을 보고 합격한 이후까지 국회 인턴이 무급일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다. 설마 국회가 인턴을 무급으로 부리겠느냐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현실이었다. 거의 99%의 인턴이 무급이기 때문에 월급 챙겨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는 게 연수담당자의 대답이었다. 내가 아니어도 무급으로 인턴을 하려는 사람이 줄을 길게 서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열정과 시간을 앗아가는 도둑들이 ‘입법기관’인 국회에도 있었다. 이들이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 외부 필진 BIG HIP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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