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이 아닌 '방탄법원'단

조회수 2018. 8. 10. 19: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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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관련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 91%..

사법 농단에 의혹에 휩싸인 대법원

출처: 참여연대
대법원의 사법 농단 피해자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공동고발 등 입장 발표 기자회견

8월 10일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청구한 전·현직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또다시 줄줄이 기각됐다. 강제징용 및 위안부 민사소송 재판거래 의혹, 그리고 법관 불법사찰 등 혐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모두 기각한 이는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다.


이른바 양승태 대법원이 저지른 사법 농단이 밝혀지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 예사롭지 않은 사건의 해결이 만만찮으리라는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고 단죄가 이뤄지기는 할까 하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 필수적인 각종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고 법원은 걸핏하면 검찰이 신청한 관련 법관의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예 법원은 ‘방탄국회’에 이은 ‘방탄법원’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할 정도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법대로’를 외치는 게 고작인 일반 시민의 처지에서도 법원은 이른바 최후의 보루다. 돈 없고 빽도 없는 사람들로선 모든 시비가 법대로만 가려진다면 자신들의 억울함이 풀리고 정의가 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을 놓고 뒷거래를 시도한 사실에서 드러난 사법 농단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것은 ‘사법부의 타락’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추악한 내용이다. 원세훈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KTX 해고승무원 사건, 긴급조치 국가배상 청구 소송 등이 거래 의혹을 받는 사건들이다. 


최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양승태 사법부는 최고법원 지위를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헌법재판소를 무력화하는 계획도 대외비 문서로 만드는 등 반헌법적 발상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 기본권 보장은 안중에 없고 자신들의 권한을 키우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제물로 삼으려는 음험한 저의까지 드러낸 것이다. 


사법 농단 사태에 관련해 대법원이 밝힌 입장은 두 가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발표한 대국민담화와 대법관 13명이 재판거래 의혹을 일축한 입장문 발표다. 그나마 대법원장 담화가 검찰수사에 협조하고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대법관의 입장은 ‘재판거래 의혹은 근거 없는 것’이고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변했다.

대법원이 밝힌 입장에는 정작 가장 중요한 ‘재판거래 의혹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원상회복 조치’는 빠졌다. 그들이 잊은 것은 이 국민적 사법 농단 의혹이 다른 누구도 아닌 대법원이 생산한 서류를 통해서 드러났고 그런 거래의 목적이 그들 조직의 이해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의혹이 드러나고 검찰수사가 계속되고 있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법원은 의혹을 해결하기 위한 검찰의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은 들어오는 족족 기각하고 있다. 특히 수사 단초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 영장은 최소한의 소명만을 요건으로 해 발부율이 90% 이상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사법 농단 관련 압수수색 영장은 반대로 기각률이 91%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법부가 아예 작정하고 국민 여론이나 반발 따위를 무시하고 자기 조직을 보위해야 한다는 집단 무의식에 빠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이 나라 최고의 지성이라는 자부에 넘쳐서 자신들은 오류는 자신들만이 단죄할 수 있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선출되지 않은 사법 권력의 최정상, 대법원

사법부는 흔히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불린다. 대법원장은 그 사법 권력의 최정상이다. 그리고 13명의 대법관이 그 정상을 구성하는 요소다. 사법부 가운데서 장관급 예우를 받는 대법관의 정원은 14명.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면 국회의 동의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기는 6년으로 같지만, 대법원장은 중임할 수 없고 대법관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연임할 수 있다. 판사의 정년은 65세지만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정년은 70세다. 어쨌든 이들은 사법부 최고 권력으로 특수한 지위를 갖는 것이다. 


대법관은 대법원이 종심(終審)으로 심판하는 관할 사건(고등법원 또는 항소법원·특허법원의 판결에 대한 상고사건, 항고법원·고등법원 또는 항소법원·특허법원의 결정·명령에 대한 재항고 사건 및 다른 법률에 따라 대법원의 권한에 속하는 사건)을 담당하고 대법관회의의 구성원이 된다. 대법원의 판결서에는 합의에 관여한 모든 대법관의 의견을 표시해야 하는데 이는 하급심 법원의 판결서와 다른 점이다. 


어쨌든 대법관은 형식과 내용에서 대한민국 사법의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을 제외하면 권력 앞에서 제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게 쉽지 않았다. 권력 앞에서 신분이 위협받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1970년 초에 군 복무 중 사고를 당한 군인·군무원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배상법에 대해 대법원 판사 9:7로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1972년 유신헌법에서 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을 위원장과 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헌법위원회라는 신설기관으로 넘겼다. 


1973년에는 유신헌법에 따른 법관 재임명 절차에서 국가배상법 위헌 결정을 했던 9명의 대법원 판사가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1980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 대해 내란 목적을 인정하지 않는 소수의견을 냈던 5명의 대법원 판사가 군부의 압력으로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대법관의 신분이 정치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불행한 시대였다. 


독재정권 시기에 각종 정치적 사건, 특히 정적이나 정치적 반대자들을 용공으로 모는 재판에 대법원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 과정으로 이용됐다. 조봉암과 민족일보의 조용수, 인혁당 사법살인,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이 그랬다. 

출처: 대법원 홈페이지
서초동 대법원 청사. 1995년 완공된 건물이다.

막강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해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판결을 내놓았지만, 거기 관여한 대법관 가운데 그걸 성찰하고 참회한 이가 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오심으로 밝혀진 사건을 맡았던 판사와 검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편'인가, '자신들의 편'인가

국민이 사법부를 신뢰하는 것은 그들이 공정한 심판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자행된 상상을 뛰어넘는 사법 농단을 바라보면서 국민은 그들이 국민의 편이 아니라 오직 ‘자신들의 편’이었을 뿐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지 모른다. 


이 유례없는 사법 농단의 의혹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대법원이 고고한 성역이라는 사실을 분명해 보인다. 관련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하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이 그 책임을 묻는 데 주저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 대법원이 아니고 다른 정부 기관이었다면 이 정도의 사실만 드러나도 기관해체 주장까지 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사법부 최고법원이니만큼 단순히 심증만으로 단죄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도, 문건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난 사건을 담당했던 대법관들은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관련 전 현직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법원의 강고한 방어벽에 막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영장전담판사도 대법원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출처: 오마이뉴스
파기환송심에 출석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그는 이 재판에서 두 번째로 법정 구속됐다.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사건 가운데 2015년 2012 대선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사건이 있다. 이 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항소심이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은 증거의 상당수를 증거능력이 없다며 파기 환송했다. 이 사건의 1심은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기적 국민'이 상식과 진실에 더 가깝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국정원법 위반은 물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원세훈은 법정 구속됐다. 이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13:0 만장일치로 파기환송 됐는데 ‘최고 사법기관에서 나왔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의 판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소부의 반대 의견 등이 있어 전원합의체를 열어놓고 소수의견 하나 없이 13 대 0 만장일치가 나오는 건 모순적이란 지적이 나왔다. 이 판결 소식을 듣고서 대법관의 경륜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파악해서인가, 아니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이심전심으로 눈치챈 대법관들이 연출한 절묘한 합의인가 하고 머리를 갸웃한 이가 한둘이었을까.


결국, 이 판결은 이태 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파기환송심 판결이 이뤄지기까지 법원은 끊임없이 재판을 끌었고, 검찰의 수사팀이 공중분해 되고, 국정원은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등 재판방해가 이루어졌으나 결국 박근혜가 파면되면서 간신히 길을 찾은 것이었다.


이쯤 되면 단순히 의혹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에 가까이 이르고 있다고 말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그 어려운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대법관까지 오른 ‘이성적’인 사법부보다 오히려 상식과 진실은 ‘이기적 국민’이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걸, 그들만이 모를 뿐이다.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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