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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가 꿈이었던 남자와 주부밖에 될 수 없던 여자

조회수 2018. 7. 12.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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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누군가에겐 사치였다.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

주변에 사회 초년생과 취업준비생 친구들을 둔 덕에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각자 성향에 맞는 직업을 이야기하고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를 교환하는 와중에 내 신중하고 확고한 '가정주부'라는 대답은 늘 친구들의 웃음만 샀다.


농담이 돼버린 내 장래희망은 다년간의 자취생활과 개인 성찰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청소나 빨래에서 쾌감을 느끼니 배우자만 허락한다면 나는 집안을 가꾸며 가사노동에 전념하고자 했다. 그런데 왜 내 장래희망엔 의구심과 조소가 묻어날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현재 가사를 전담하는 남성 소위 '전업주부'는 17만명에 달한다.

“남자애가 무슨 집안일이야”

“남자애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 이제 예전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구시대적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라, 성별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배우자가 있는 남성의 경우 50분,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경우 4시간 19분*이다.


(*통계청, 2016 일-가정 양립지표)


그렇다면 반대로 여성들은 어떨까? 성차별과 성역할은 옛말이 되어 자유로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까? 남성들이 가사노동에 여전히 소홀한 만큼,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 또한 여전히 더디다. 


능력이 부족해서는 아닐 것이다. 학업만 보더라도, 학창시절 반에서 공부 좀 한다던 친구들은 죄다 여자였다. 대학을 갈 때에도 절반 이상이 여자였고 졸업을 할 때까지 좋은 성적을 휩쓰는 여자애들은 흔했다. 


처음 위화감을 느낀 것은 취업 시즌이었다. 성적이 거의 배는 높았던 한 여자 동기는 연거푸 서류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나의 상투적 위로에도 그의 초조함과 낙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여자는 스물일곱 넘으면 취업하기 정말 힘들다던데...” 어렵사리 면접, 취업 이후 연수를 받으며 난생 처음 보는 성비를 목도한 내 친구는 되려 나를 위로했다. “너는 그래도 취업하기 쉬울 거야...”

취업시장의 성차별 도시괴담, 현실이 되다

이게 비단 일부 개인의 경험에만 그치지 않음은 또 다른 비극이다. 우리나라 성별 고용격차는 단연 두드러진다. 2017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74.1%인 반면, 여성은 52.7%로 OECD 평균에 약 두 배에 달하는 격차를 보인다.


게다가 여성들에게 괜찮은 일자리 문턱은 더욱 높다. 통계청의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정규직 근로자 중 여성의 비율은 38.5%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비정규직 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으며 이는 특히 30대 이후 가속화된다. 임신, 출산, 육아로 이른바 ‘경단녀’가 된 여성들이 재취업 시장에서 비정규직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2017년 한국의 성평등 보고서 내용) 

출처: tvN
어머니,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진행자부터 요리사까지 여자가 1도 없습니다!

임금격차는 더욱 심하다. 우리나라의 남녀 월평균 임금격차는 OECD 평균 15.3%의 두 배가 넘는 36.3%로 단연 1위이다. 같은 시간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64만원을 번다는 얘기다.


근속연수, 직장규모, 재직 업종, 교육의 차이 등을 감안 하더라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손해를 보는 정도가 58.3%였다. ‘유리천장’은 차마 ‘유리’라 부르기 민망하리만큼 두텁고 견고하다. 


그나마 채용 과정이 공정하고 여성들이 일하기 좋다고 손꼽는 공무원의 경우도 1~3급 고위직 여성 공무원은 전체의 4.5%에 불과하다. 이른바 10대 그룹과 공기업에서 여성 비율은 차마 논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193쪽. 10대 그룹에서 여성이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 0.07%, 공기업은 0.002%.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비율은 2.1%, OECD 평균은 16.7%) 


이러한 수치들로 드러나지 않는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남성들의 강한 연대는 접대문화, 과도한 음주회식,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성적 대상화로 여성들을 노동시장 밖으로 내몰고 있다. 아직 여성들에게 성평등한 노동시장은 요원한 이야기이다.

남자 주부가 '꿈'이라던 나의 꿈같은 소리

꿈을 꾸는 것마저도 누군가에게는 사치일 수 있다. 내가 들어온 조소와 의구심에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담겨 있었다.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한 나의 ‘꿈같은 소리’는 그저 배부르고 등 따순 이의 투정에 불과했다.


그래서 요즘은, 꿈같지 않은 현실을 만들기 위해 페미니즘 공부 모임을 하고 있다. 공부할수록 세상의 부조리함과 이를 자각하지 못했던 나의 나태함에 놀라고 반성한다.

현실만 놓고 보면, 천장에 막힌 것이 아니라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라테파파’라는 표현도 필요 없는 세상

* 라테파파 : 스웨덴에서 육아에 전념하는 남성을 일컫는 말


이런 세상에도 한 줌 희망은 페미니즘의 바람, 아니 태풍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서점에는 페미니즘 도서가 연신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는 녹색당의 신지예씨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우리사회의 성폭력과 성차별을 규탄하는 ‘OO내 성폭력 고발’, 'Me Too' 운동은 계속되고 불법촬영근절과 낙태죄 폐지 시위가 신문을 장식했다. 우리사회 모든 영역에서 멈출 수 없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우리의 세상은 다를 것’이라는 목소리가 드높다. 이 세상에서는 ‘라떼파파’8)라는 표현도 진부하고 불필요하다. 성차별, 성역할이 따로 없기에, 가사노동을 하고 육아를 돌보는 남성들에게 따로 별칭이 지어질 필요조차 없다. 그 때서야 내 철없던 꿈도 조금은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세상을 향한 변화의 바람이 당신에게도 닿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바이다.

* 외부 필진 서울청년정책LAB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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