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원 구두 한 켤레 만들면 7천 원 버는 노동자

조회수 2018. 5. 9. 14: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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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디 제화 정기수 회장님께 보내는 편지

며칠 전이었습니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인터넷으로 신문을 뒤적이던 제 눈에 한 장의 사진이 들어왔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손을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손가락 관절이 굽어 있었고, 손끝의 피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상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을 가진 사람들이 며칠째 당신의 회사 건물 안, 좁고 차가운 복도에 앉아 당신과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출처: 노동과세계
수십 년 수작업으로 모양이 변한 제화 노동자들의 손.
출처: 노동과세계
수십 년 수작업으로 모양이 변한 제화 노동자들의 손.

당신도 혹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구두 산업에 관한 한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꽤 유명한 한 제화 회사의 회장을 외작은할아버지로 둔, 요즘 말로 '금수저'라고 할 만한 젊은 사업가를 인터뷰한 글이었습니다. 그는 제화업계의 문제점들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구두 장인들이 받는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구두 한 켤레를 만들면 그분들이 6100원을 받습니다. 30년씩 일하신 분들인데 월 200만 원을 못 벌기도 하죠.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구두를 만들고 싶겠어요...” 


2017년 조선일보에 난 기사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구두를 만들고 싶겠냐는 그의 말이 생각난 건 며칠 전 탠디 제화 구두 장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난 뒤였습니다. 구두 한 켤레를 직접 손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제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힘들고, 복잡한 일이었습니다. 


EBS 다큐멘터리 <극한 직업>에서 수제구두를 만드는 구두 장인들의 이야기가 나온 적 있습니다. 오랜 시간 쪼그리고 앉아 등을 구부린 채 쉴새 없이 망치질하고, 거친 가죽을 다루는 일은 육체적으로도 힘든 일이지만, 모든 공정을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만큼 정교한 솜씨와 뛰어난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출처: W몰
한 켤레의 구두가 만들어지기까지.

한 켤레의 구두가 만들어지기까지 거쳐야 하는 72, 73가지 과정. 앉은 자리 빼고는 여분의 공간도 없는 비좁은 자리에서 그들은 한 땀, 한 땀 온 정신을 쏟아 구두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탠디제화의 구두 장인들의 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종일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구부리고 앉아 일하느라 등이 굽어지고, 쉴새 없이 해야 하는 망치질과 거친 가죽을 만지느라 손가락 관절이 굽어지고, 독한 접착제 냄새로 인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까지 하면서 그들은 멋진 구두를 만들어 냈습니다. 한 켤레의 구두를 만드는 일이 몸에 온갖 장애를 입을 수 있는 극한 직업에 속한다는 걸 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저는 알았습니다. 


이 극한직업에 속하는 힘든 일을 이들은 하루 16시간씩 합니다. 한 켤레를 만들면 그들에게 주어지는 돈이 고작 7천 원 정도인 데다 아무런 사회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 '개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탠디의 소속으로 구두를 만들던 이들이 갑자기 '사장님'이 되어서 4대 보험의 혜택도, 퇴직금도 받지 못하게 된 건 2000년도 이후부터입니다. 


당신이 더 잘 아시겠지만, 18년 전 “명의만 빌려주면 퇴직금과 공임비 1천 원을 인상해 주겠다”며 회사가 이들에게 제안했지요, 신분만 '개인 사업자'로 전환되는 것일 뿐 퇴직금 제도 등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고 설득하면서요. 하지만 회사는 그 약속을 문서화 하지 않았고,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 개인 사업자 등록증마저도 장인들이 아니라 회사가 가지고 있지요. 


회사 경영진들을 자기 식구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말을 믿은 것. 구두 만드는 일에 일생을 바친 이들이 살아오면서 저지른 유일한 잘못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알렉스의 엄마 크리스티나는 발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구두를 만드는 장인이었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지금은 일을 그만두었지만, 크리스티나는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손으로 하는 일, 몸으로 하는 일이 존중 받고, 그 존중에 걸맞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 말입니다. 


지금 제가 10여년 째 사는 독일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늘 만납니다. 이곳에서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 기술자가 우대받기 때문이지요. 집을 짓고, 빵을 만들고, 구두를 만드는,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존중받고 대접받는 사회. 사람의 손을 거치는 순간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격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비싸집니다. 비싼 가격에는 유통마진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만들어 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그 존중에 걸맞게 그들에게 지급되는 합당한 대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받는 존중과 정당한 대우는 나 자신이 받을 존중과 대우로 바로 직결된다는 이곳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구두를 만들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고객뿐 아니라 직원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구두회사 가버 회장의 이야기는 당신이 한 번 귀 기울여 들어 보실 필요가 있을 겁니다. 


탠디 본사 왼쪽 건물이 당신의 자택이고, 그 꼭대기 층에 당신이 불상을 모셔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본사 아래쪽에는 당신만의 사찰도 있다더군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초기 불교에서는 부처의 형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부터 부처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똑같이 만들어진 불상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잊어버린 채 말입니다, 당신처럼요.

출처: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지난달 26일 탠디 제화노동자들이 본사에서 점거농성하는 모습.

구두 한 켤레당 7천 원을 받는 이들이 당신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요구한 인상액은 겨우 2천 원이었습니다. 2만 원을 요구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데, 구두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그것 말고는 아는 게 없는, 한 길만 걸어온,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이들이 겨우 2천 원 더 달라고 하고 있는데, 거기에 당신이 제시한 협상안은 5백 원이지요.


“남에게 억울하게 해서 얻은 재물은 지옥 차비만 장만하는 것이다” 


당신이 섬기시는 부처의 말씀입니다. 당신이 자꾸 지옥의 차비만 버시는 것 같아 옆에서 보는 저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귓등으로만 듣고, 자신의 모습을 본 따 만든 껍데기 앞에서 절을 하는 당신을 본다면, 아마도 그는 그 옛날 박깔리에게 해줬던 말을 당신에게도 해 주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박깔리야, 그만두어라. 나의 부서져 가는 몸을 보아서 무엇하느냐?...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마음으로 진리를 보면 나를 보고, 나를 보면 진리를 본다 (박깔리의 경, 상윳따니까 522,87 전재성님 역)

 

출처: 한겨레

아, 마지막으로 탠디 본사 건물에서 농성하고 있는 남편에게 그의 아내가 쓴 편지 한 구절을 당신에게 들려 드리고 싶군요.


“자, 이젠 구두업계의 전설이 되어서 나오십시오” 


저는 진심으로 그녀의 남편이 그리고 그 동료들이 구두업계의 전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설이 당신에게 그리고 또 다른 제화업계 경영진들에게 진리가 되어서 돌아가길 바랍니다.

* 외부 필진 '김지혜'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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