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한때 소녀시대 때문에 치킨 시켜 먹던 시절이 있었다

조회수 2018. 5. 8. 18:29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대한민국 치킨 역사를 정리해봤다.

2015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은 14.2 kg이다. 전 세계 평균이 28.6kg이니,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다. 닭 한 마리에서 먹을 수 있는 부위가 900g 안팎이니 대략 1인당 1년에 16마리, 국가 전체적으로는 하루에 200만 마리 이상의 닭이 잡아 먹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비되는 닭 중 절반은 ‘치킨’이 된다.


한국인의 치킨 사랑은 엄청나다. 치킨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이렇게 인기가 많아진 것일까?

치킨의 조상


치킨 요리법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아보자. 미국은 프라이드치킨의 발생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농장 주인들이 로스트 치킨을 먹고 나면 그 찌꺼기를 흑인 노예들이 모아서 바싹 튀겨(deep fry)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흑인 노예들이 주로 면실유(목화의 씨앗에서 짜낸 기름)를 닭튀김에 이용했다고 하는데, 과거에 기름이 얼마나 귀한 재료였는지를 생각하면 확실하지 않은 정보 같다. 면실유 추출을 위해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목화에서 씨를 걸러낸 후 특별한 장비도 이용해 추출해야 해서, 부자나 농장주인만 사용할 수 있는 재료였다. 


반면 당시 흑인들은 돼지 지방인 라드(Lard)나 소량의 면실유를 이용해서 팬에 닭을 지져 먹었다(Pan-frying). 한편 닭튀김을 흑인들만 먹은 건 아니다.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이 미국 남부에 정착한 후, 명절 때마다 딥프라이(Deep-frying) 형식으로 닭을 튀겨 먹었다. 결국 어떤 것이 기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출처: KFC

치킨을 처음으로 상업화한 회사는 KFC이다. KFC의 창립자 커널 샌더스(Colonel Sanders)는 압력튀김법과 특별한 11가지 소스를 사용한 염지법을 발명했다. 압력튀김법은 한국의 밥솥과 비슷한 솥에서 닭을 튀기는 조리법으로, 이를 이용하면 치킨 내의 수분을 보존할 수 있다. 그리고 염지는 향신료에 고기를 재워두는 것으로, 고기 안에 근육을 파괴해 육질과 풍미를 향상한다. 이 조리법은 미국 전역에 퍼져 미군 부대에서도 사용하게 됐다.

0세대 치킨의 등장 - 통닭구이 


프라이드치킨을 한국에 전파한 건 미국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던 한국인들이 프라이드치킨을 맛보면서 입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실제로 치킨이 대중화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전쟁 이후 식량부족과 산업시설기반이 열악해 치킨을 튀기는 데 가장 중요한 식용유를 생산하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출처: tvN 수요미식회

대신 유행한 것이 전기구이 통닭이다. 1961년 한국 최초 통닭집인 명동영양센터에서는 전기구이 통닭, 삼계탕 등을 판매했다. 인기가 많았으나 지금과 달리 매우 비쌌다. 당시 통닭 한 마리는 500원으로, 짜장면 10그릇 가격과 비슷했다. 과거의 전기구이 통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푸드트럭에서 종종 만날 수 있기도 하다. 명동영양센터는 현재도 영업 중이다.

1세대 치킨의 등장 - 통닭과 치킨


1970년, 경제 성장과 함께 양계업이 발전하면서 시중에 유통되는 닭값이 싸졌다. 1971년 동방유량(지금의 사조해표)이라는 회사에서 식용유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닭을 기름에 튀겨먹을 수 있었다. 1970년대 말부터 치킨을 파는 가게가 프랜차이즈로 진화하면서 시장이 점차 성장했다. 최초의 프랜차이즈는 1977년에 설립된 ‘림스치킨’으로 한약재 염지와 얇은 튀김옷을 사용한 프라이드치킨을 판매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제주 그리고 길'

이런 치킨을 만들기 위해서는 섬세한 기술과 장비가 필요했다. 그렇지 못한 시장 통닭집에서는 염지와 반죽 없이 튀기거나 물 반죽을 이용했다. 물 반죽이란 반죽에 물을 많이 섞어서 크림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런 반죽을 입힌 치킨은 튀김 옷이 두껍고 느끼하고 빨리 눅눅해진다. 그리고 빨리 튀기기 위해 치킨을 20개 정도의 조각으로 잘라 양이 많아 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치킨들은 싼값에 빨리 팔 수 있었고 괜찮은 가격으로 가족들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지금 수원 통닭 거리에 가보면 아직도 이런 치킨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죠리퐁퐁'

그러나 모든 한국 사람들이 이런 치킨들에 마음을 준 건 아니었다. 느끼한 맛과 식으면 변질이 되는 특성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부담감을 느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양념치킨과 치킨 무다. 멕시칸 치킨(멕시카나와는 다른 회사) 양념치킨과 치킨 무를 도입했다. 


양념치킨은 느끼한 맛이 덜했고, 달콤하고 매운 양념이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양념치킨을 앞세운 페리카나(1981년), 멕시칸치킨(1985년), 멕시카나(1989년), 장모님치킨(1989년) 같은 프랜차이즈가 연이어 등장했다.


가격도 많이 내려갔다. 1988년에 짜장면 한 그릇이 700원, 치킨 가격은 한 마리에 4800원 수준이었다. 60년대에 비하면 2/3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한편 KFC는 1984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매장을 열고 세계화라는 이미지로 마케팅을 했으나, 느끼한 치킨과 시장 경쟁에 밀려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KFC(Korean fried chicken)가 KFC(Kentucky Fried chicken)를 이긴 것이다. 

2세대 치킨 - 크리스피와 오븐 치킨

출처: 경향신문
1998년 1월 한 취업박람회에 구직자들이 몰렸다.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직장을 잃은 한국의 수많은 사람은 생계를 위해 치킨집을 열었다. 경쟁은 심해지고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생겨났다. 


BBQ는 튀김 옷의 바삭함을 강조했다. 크리스피 개념은 KFC에서 처음 들고 왔으나, 본격적인 관심을 받은 건 훨씬 뒤였다. 크리스피 치킨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루와 물 반죽을 번갈아 가면서 발라줘야 한다. 그러면 촉촉한 속살과 바삭한 튀김 옷이 만들어진다. 이 튀김옷은 매우 얇아서 속이 비칠 정도다. KFC가 처음 전파했던 울퉁불퉁한 껍질을 가진 미국식 치킨과는 다르다.

위대한 '치맥'의 탄생


당시 맥주 회사들은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식품들과의 ‘협업 마케팅(collaboration marketing)’을 시작했다. 맥주 자체의 풍미가 가득한 유럽지역과는 다르게 한국 맥주는 풍미가 거의 없고 밋밋하다.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탄산이 적고 풍미가 약한 맥주를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안주를 푸짐하게 차려 먹는 한국형 술집(호프)에 집중했다.

출처: 동아닷컴

술 자체가 아닌 안주와 식사의 보조로서 자리를 잡자는 계획이었다. ‘목 넘김이 좋은 맥주’라는 걸 눈에 띄게 강조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술을 목으로 넘기기 위해 마시는 사람은 없다. 술에 취하는 걸 좋아하거나, 풍미에 감탄할 뿐이다. 한국 맥주는 안주가 잘 넘어가게 도와주는 윤활제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의 주목이 안주에 쏠리니, 맛없는 맥주는 생존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복날로 이어졌던 2002년 한 해 치킨 소비량이 엄청났다. 전년 대비 30% 증가세였고 맥주회사들은 홍보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인들도 입안에 느끼함을 씻어주는 윤활제에 호감을 느꼈고 그렇게 ‘치맥’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1만여 개에 이르던 치킨점은 2002년을 기점으로 71% 증가하면서 2만 5000여 개로 늘어났다.

3세대 치킨 - 별난 맛의 치킨들


치킨은 이제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됐다. 2017년 기준으로 치킨 브랜드는 375개, 프랜차이즈 치킨집 매장 수는 22,957개다. 교촌치킨의 간장치킨, 훌랄라의 매운치킨, 굽네치킨의 오븐치킨, 네네치킨의 파닭, BHC의 뿌링클 치즈치킨이 등장했다. 


엄청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진화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점점 더 정교해졌다. BBQ는 맥도날드의 ‘햄버거 대학교’에서 영감을 받아 프랜차이즈 교육과 신메뉴 개발을 할 수 있는 치킨대학을 설립했다. 

출처: 굽네치킨
팬들 사이에서는 소녀시대 굿즈를 사면 치킨이 딸려온다는 얘기가 있었다.

마케팅으로 치킨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BBQ의 아이돌 광고(당시 모델은 핑클)를 시초로, 치킨 회사들은 유명 연예인이나 아이돌을 광고에 등장시켰다. 


특히 굽네치킨은 2008년 소녀시대를 모델로 발탁해 치킨을 시키면 소녀시대 관련 굿즈를 껴주면서 엄청난 매출을 올렸다. 현재 BHC는 전지현, 가마로닭강정은 트와이스, 치킨매니아는 AOA, BBQ는 수지, 멕시카나 아이유, 네네치킨은 오마이걸, 굽네치킨의 엑소와 광고를 하고 있다.


또한 치킨은 나들이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다. 과거에는 소풍이면 김밥을 꼭 챙겼지만, 지금은 치킨이 대세다. 야구장, 축구장, 해변, 공원에서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에는 언제나 치킨이 있다. 치킨은 함께 어울려서 먹는, 즐거운 날 즐기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맛뿐만 아니라, 치킨이 가진 이미지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치킨의 미래


2014년 중국에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방영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극중천송이(전지현 역)의 대사 “눈 오는 날에는 치맥이지”는 중국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에 힘입어 한국 치킨회사들은 해외 사업을 시작했다. 


싱가포르에 한국 치킨집 7개가 문을 열었고, 굽네치킨는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홍콩에 진출했다. BHC치킨은 2017년 상하이 1호점을 시작으로 중국 전역에 매장을 낼 계획이다. 네네치킨은 싱가포르, 호주, 홍콩에 이어 말레이시아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현재 BBQ는 미국의 Boston 치킨을 인수하려고 한다. 한국의 치킨은 세계 시장을 향해 열심히 뻗어 나가고 있다.튀기면 뭐든 다 맛있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킨은 위대하다. 만세!

* 외부 필진 'Korean Grammar Doctor' 님의 기고 글입니다.

[직썰만화] 한진그룹 경영 승계 대전(對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