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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낀 여자 아나운서가 화제가 된 이유

조회수 2018. 4. 16. 13: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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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에게 안경은 '금기'였다.

MBC 임현주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방송(12일 <뉴스투데이>)을 진행한 사실이 화제가 됐다. 여자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나온 것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 확인된 바로 공중파에서는 KBS 유애리 아나운서(2017년), JTBC 강지영 아나운서(2016년)의 경우와 함께 겨우 세 번째 사례에 불과했다.

MBC 임현주 아나운서 ⓒMBC
jtbc 강지영 아나운서 ⓒjtbc
KBS 유애리 아나운서 ⓒKBS

안경 쓴 여자 아나운서는 왜 화제가 될 만큼이나 드물었던 걸까?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다. 안경과 여성에 관련한 고함20의 기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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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기간 중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선수는 여자컬링팀의 주장 김은정 선수였다. 김은정 선수의 강렬한 눈빛과 카리스마를 더해주는 안경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안경 선배’라는 별명도 붙었다.


안경을 쓴 젊은 여성과 사람들의 환대는 낯설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은정 선수의 맨 얼굴이 기사화됐고, ‘숨겨진 미모’나 ‘반전 미모’와 같은 제목이 붙여졌다. 이후 시상식과 인터뷰에서 김은정 선수는 맨 얼굴로 등장했다.

ⓒSBS

미디어는 안경 쓴 여성을 제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깐깐하거나 촌스럽거나. 전자는 카리스마와 능력이 있지만 까다롭고 예민한 여성이다. 꼬리가 올라간 뿔테 안경을 끼고, 진한 눈화장을 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오피스룩을 입으며 뛰어난 성취를 이룬다.


후자는 예쁘지만 꾸밀 줄 모르는 촌스럽고 소심한 여성이다.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화장하지 않고, 후줄근한 옷을 입지만 외모에 관심을 가지면 예뻐진다는 설정이 흔하다. 어느 쪽이든 ‘여성은 예뻐야 한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


올림픽 영웅인 김은정 선수마저 경기장을 벗어나는 순간 안경을 벗어야 했다. 카리스마도 없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싫은 나도 그랬다. 안경 쓰는 것이 늘 꺼려졌고 그런 일상이 불편했다.

나는 흐릿한 세상을 살아간다

중학생 때 안경을 빼보라는 말을 들었다. 매일 끼던 안경을 가끔 빼고 다녔고, 그때마다 훨씬 낫다는 칭찬을 들었다. 예쁘다는 칭찬을 듣는 것은 좋았다. 안경을 끼고 밖에 나가는 것이 점점 어색해졌다. 그렇게 나는 흐릿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일상생활이 약간 불편해졌다. 멀리 있는 친구나 선배를 알아보지 못해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정류장에 다가오는 버스의 번호가 잘 보이지 않아서, 차를 놓칠 뻔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다시 안경을 끼고 다닐 순 없었다. 안경을 낀 얼굴은 ‘웃기는’ 얼굴 취급을 받았다. 나의 맨 얼굴에 익숙해진 친구들은 안경 낀 모습을 놀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에 맞춰 안경을 낄 때 내 눈이 얼마나 작아지는지, 안경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를 말하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TV 속 의사는 렌즈의 위험성을 말하며, 하루에 4시간에서 6시간 사이로 착용하라고 권했다. 당연히 지킬 수 없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만 8시간이 넘었다. 눈이 뻑뻑했고, 인공눈물은 필수품이 됐다. 렌즈를 빼고 씻는 귀찮은 일도 추가됐다. 그래도 불편함과 귀찮음을 감수하는 게, 온종일 주위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것보단 덜 피곤했다.

ⓒEBS <까칠남녀>

그러나 이를 온전한 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TV에서 렌즈의 위험성을 충고하던 남자 의사와 그 옆의 남자 연예인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여자 의사와 여자 연예인은 아무도 안경을 끼고 있지 않았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안경을 쓴 남학생이 훨씬 많았다. 남학생의 안경 착용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안경 낀 여학생들은 놀림거리가 됐다. 오랜 렌즈 착용으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여학생이 많았다. 결막염에 걸리는 일도 흔했다. 사람들은 습관처럼 여성의 외모를 평가했고, 여성은 겉모습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는 걸 넌지시 배웠다.

나는 여자가 아닌 수험생일 때만 안경을 낄 수 있었다.

고 3이 되고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성별 구분 없이 안경 착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안경을 쓰고 다니는 여학생이 늘어났다. 나도 그제야 안경을 쓴 채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2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급식실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교실 외의 학교 시설을 또렷하게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어딘가 씁쓸하게 다가왔다.


여학생들은 안경을 끼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서로의 모습을 보고서 인생에서 제일 못생길 때라며 웃었다. 수험생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성은 예뻐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늘 얼른 안경을 벗고,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몸은 편했지만, 어딘가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안경 쓴 여자를 찾기 어렵다. 많은 친구가 졸업과 동시에 시력교정 수술을 받았고, 나 또한 다시 렌즈를 끼고 다닌다. 안경을 끼는 것은 전혀 눈치 볼 일이 아님을 안다. 오히려 안경을 낄 때 내 눈은 더 편해지고, 렌즈보다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렌즈를 착용했을 때 느끼는 물리적인 불편함보다, 안경을 착용했을 때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이 더 크다. 요즘엔 렌즈를 꼈을 때 마음마저 불편해지고 있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고, 그에 맞추는 것이 점점 거북하다. 두 눈이 충혈되면서까지 렌즈를 끼고, 안구건조증에 시달리는 것은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MBC

이런 불편함이 널리 공유되어 안경 낀 여성이 늘어나면 좋겠다. 또렷한 급식실을 봤을 때의 그 허무하고도 기쁜 감정을 또 한 번 느끼고 싶다. 더는 세상을 흐릿하게 보고 싶지 않다.


여성의 안경이 아무런 의미를 담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면, 나도 안경을 착용하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김은정 선수가 지난 <무한도전>에 안경을 끼고 나왔을 때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시력교정 수술이나 렌즈 없이 세상을 또렷하게 보고 싶다. “용기” 내지 않아도 여성이 안경을 낄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임현주 아나운서의 SNS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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