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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혐오 게시물’을 폭로하는 페이지

"○○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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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작성일자2018.03.12. | 374,389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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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으로 여성 대상 성폭력이 사회 최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최근 소셜 미디어에선 흥미로운 일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이란 이름을 단 페이스북 페이지들이 개설되고 있는 일. 이 페이지들은 마치 ‘○○대 대나무숲’ 페이지처럼 제보를 받고,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남성들의 글을 게시한다.


다만 여기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은 대부분 여성혐오, 혹은 성차별적 내용, 안티 페미니즘, 디지털 성범죄 소비, 미투 운동에 대한 비난 등 성평등 이슈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거친 발언들이다.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 캡처

게시물을 소개하는 멘트로는 “우리 대학의 자랑이다” “여성들을 걱정하는 모습이 감동이다” 등 풍자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즉 익명 커뮤니티나 SNS 댓글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젠더 이슈에 대한 (남성들의) 그릇된 발언을 박제하고 풍자하겠다는 의미에서 “00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이란 이름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시작은 연세대 커뮤니티 <세연넷>의 한 게시물이었다. 불법촬영물(몰카) 포르노를 시청하는 남자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한 남성의 게시물을 본 페이지 관리자가 이를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에 올리며 “몰카를 죄책감 없이 보는 연세의 자랑”이라고 풍자하여 소개했다.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에 올라온 해당 게시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교내 익명 커뮤니티 속 여성혐오 게시물에 반발심을 느끼고 있던 각 대학교 학생들이 “00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를 뒤이어 제작했다. 현재까지 서울대, 한양대, 충북대, 서울시립대, 고려대, 전남대, 한국외대, 아주대, 경희대, 카이스트, 중앙대, 명지대, 부산대 등 전국의 20개가 넘는 대학에서 이 페이지가 개설됐다.

 

대학교뿐만이 아니다. 최초의 페이지 개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인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이라는 페이지가 등장했다. 이 페이지는 직장인 커뮤니티나 직장 내의 성폭력 등을 고발하고 박제한다.

'직장인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 캡처

이 페이지에선 직장 동료들에게 “동기 여직원들을 따먹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가 황급히 “잘못 보냈네요” “해킹이었습니다”라고 수습하려 한 익명의 남자 직원 이야기가 폭로되어 화제가 됐다.


정치계에도 비슷한 페이지가 생겼다. ‘일부 정의당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는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 올라오는 남성들의 여성혐오 게시물을 박제한다. (닉네임 등 신상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익명 처리된다)

'일부 정의당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 캡처

‘일부 정의당 남자들’ 페이지에서 볼 수 있듯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들 중 어떤 페이지는 ‘일부’라는 표현을 붙이고 있는데, 한 대학 페이지에 “왜 남성들을 모두 일반화하느냐”라는 항의 메시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몇몇 페이지 관리자들이 “그렇다면 일부를 붙이겠다”고 태연히 대응했다. (그러나 다수의 페이지 팔로워들은 ‘문제 제기에 동감하기보단 모든 남자가 그런 게 아니라고 화를 내’는 행위가 적절치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페이지들에 제보되는 게시물들은 대부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여성을 비하하거나 여성혐오적인 내용을 포함한 글들, 성폭력적인 농담, 미투 운동 등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비난, 디지털 성범죄 등 여성들에게 비난받는 행위에 대한 옹호 등이 많다. 주목할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인근 여대 여학생들에 대한 혐오 발언들이다. (특히 이화여대의 경우가 심하다)


고려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엔 고려대 커뮤니티 <Koreapas>에 올라온 여대 발언이 화제가 됐다. 동덕여대와 성신여대가 고려대 남학생들의 X집(성관계를 쉽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여성을 남성의 성 노리개처럼 표현하는 은어)이라 표현하는 내용의 게시물이었다.

'고려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에 올라온 커뮤니티 게시물

이 게시물을 두고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 관리자는 “연고전 승리를 위한 학우분들의 적극적 제보가 필요”하다고 풍자했는데, 사실 연세대 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들도 만만치가 않았다. 연세대 인근 여대인 이화여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세대 커뮤니티 속 혐오 발언들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와 관련하여 이 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들은 “믿고 거르는 이대”라는 발언을 전제하고 있다. 이화여대가 수준(입결) 낮은 대학이라거나, 이대생들은 대부분 “싸가지가 없다”거나 하는 내용들이다.

페이지에 제보된 게시물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세연넷>의 한 익명 이용자는 “이대를 노예로 부리는 게 낫지 않냐”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어떤 이용자는 이대생과 ‘세순이’(연세대 여학생을 부르는 은어)의 외모와 성격 등을 비교해가며 이화여대 학생을 까내 리기까지 했다. (물론 이에 대해 ‘연세대 남자들’ 페이지의 여학생 팔로워들은 질색을 표했다)


이화여대 여학생들을 비롯해 대학 내 여성 구성원에 대한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의 혐오 발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년 전 2016년에도 신촌지역 대학교(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종합 시간표 사이트인 <타임테이블>의 익명 게시판에서 이화여대 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한 익명 이용자들의 여성혐오 발언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반발을 느낀 여학생들이 사이트 측에 항의를 넣었지만 문제가 잘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어떤 이용자들이 같은 혐오 게시물에서 여성만 남성으로 바꿔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문제가 공론화되며 결국 사이트가 문을 닫는 결말을 맞기도 했다.


2017년엔 고려대 여성주의 소모임 ‘철페’의 회원들이 고려대 커뮤니티인 <Koreapas>(일명 고파스)에 올라오는 익명의 여성혐오 게시물 등을 문제 삼으며 ‘강간문화 비판 세미나’를 기획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관련 기사 : 고려대에 ‘강간문화’가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이외에도 각 대학 대나무숲 페이지들에도 종종 익명 커뮤니티의 여성혐오 발언이 제보되기도 해왔다.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의 최초 개설자인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관리자도 이러한 익명 커뮤니티 속의 혐오 발언을 페이지 개설 이유로 꼽았다.


해당 관리자는 지난 7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익명 커뮤니티에서) 교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신상털이, 여학생 외모 품평, 여대에 대한 조롱 등”이 심각하다며 “자기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이게 비판받을 만한 거란 걸 느끼면 좀 절제하지 않을까 싶어서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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