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갑질기업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회수 2018. 2. 10. 14: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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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쯤 사이다를 마실 수 있을까..

갑질의 왕국이다. 알바에 대한 손님의 갑질부터 학생에 대한 교수의 갑질, 직원에 대한 상사의 갑질, 가맹점에 대한 기업의 갑질까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터져나오는 풍부한 갑질들은 지금이 21세기 민주사회인지 기원전 21세기 노예제사회인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다.


운나쁘게 갑질을 들킨 기업들은 자극적인 언론 보도와 함께 수위 높은 쌍욕 댓글, 불매운동 인증 퍼레이드, 검찰 압수수색의 표적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반대여론은 사그라들었고 언론의 관심도 자극적인 사건으로 몰려갔다. 재판에 넘겨진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당연히 폭삭 망할 것 같았던 그때 그 갑질기업들은 어떻게 됐을까?

1. 남양유업

초코에몽 만드는 좋은 기업인 줄 알았는데 유제품업계 일진 깡패였던 남양유업. 대리점 알기를 빵셔틀로 생각하는 경영 마인드로 갑질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우선 2013년, 본사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쌍욕을 내뱉는다.


‘죽여버린다, 개새끼, 씨발놈아, 맞짱뜨자, 븅신 같은 새끼야…’


어디 학교 뒷골목이 아니라 대리점주와 영업사원의 비즈니스 통화 내용이다. 아버지뻘 대리점주한테 찰진 쌍욕을 내뱉는 30대 영업사원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영업사원 부모님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대리점에 명절 떡값을 요구하는 녹취록이 추가로 공개되고, 불법 리베이트 요구, 물량 밀어내기 등 그간 남양이 해온 일진짓의 증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

물량 밀어내기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창조경제’였다. 간단히 말해 안 팔리거나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어쨌든 남는 물건을 대리점에 떠넘기면서 상품값은 다 받아가는 행위로, 더 간단히 말하자면 쓰레기 주고 돈 가져가는 신개념 물물교환이다. 참고로 남양유업의 기업이념은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인류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기업’임. 아무래도 대리점주는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때까지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발뺌과 고소를 남발하던 남양은 공정위 조사와 압수수색이 들어가고 나서야 눈물과 참회의 대국민 사과 쑈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미 민심은 악화될 대로 악화됐고, ‘믿고 거르는 남양’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불매운동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마침내 2년 뒤, 모든 이들의 소망을 담아 남양의 뚝배기를 깨어 줄 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이 발표되는데...

두근두근

과징금 5억에 대표 집행유예 2년.

500억도 아니고 50억도 아니고 5억…? 원래 남양에게 부과된 과징금은 124억원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관련 매출액을 산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중 119억을 무효화했다. 그러니까 거의 95% 이상을 깎아준 셈인데 이정도 할인율은 우리동네 아울렛 겨울할인 대잔치에서도 보기 힘든 수치다.

95%? 나가요.

참고로 남양유업은 연간 매출액 1조 3천억원에, 13년 기준으로 시가총액 6800억이 넘는 기업이다. 아니 이런 기업에 벌금을 5억이나 때리다니 너무 무거운 벌을 준거 아닙니까? 이거 기업하기 힘들어서 먹고 살겠나~

2. 생탁


한끼 식대 1인당 450원, 일요일엔 식대 대신 삶은 고구마나 계란, 출근은 새벽 네시, 교통비는 1200원. 아오지탄광이 아니다. 부산 경남 지역의 대표적인 막걸리 브랜드이자 매출 업계 2위 생탁이다.

2014년, 노동자들이 밝힌 ‘좋은친구’ 생탁 공장의 자세한 근무여건은 다음과 같다.


-연차 없음


-쉬는 날 한달에 하루


-휴일근로수당, 야근수당, 연장수당 없음


-평일에 쓸 수 있는 휴가 1년에 하루


-장례식, 결혼식 등 경조사에 휴가 불가


-다쳐도 산재 처리 되지 않음


-출근 4시


-교통비 1200원


-식대 450원


무슨 강제노역장인가...? 반면 41명이나 되는 사장님들은 노동자의 피땀으로 만든수익금을 고스란히 나눠먹었다. 그것도 대부분 이름만 올려놓은 바지사장들이라서 아무 일도 안하고 월 2300만원씩 꿀꺽해왔음. 북조선도 아니고 2010년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생탁식 노예계약은 직원 대부분이 근로기준법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 악용한 결과였다. 전근대적인 노동환경에서 수년간 일해온 노동자들은 회사 사규에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연차 관련 규정이 쓰여있는 걸 발견하고 분노를 터뜨렸고, 결국 노조를 결성해 파업을 시작했다.

여기서 사측이 모든걸 반성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렀다면 이건 기사가 아니라 판타지소설이겠지? 부산합동양조는 노조가 결성되자마자 직원들을 해고하고 신인력으로 갈아치운 뒤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물론 뒤로는 어용 노조를 만들어 직원들의 결집을 방해했다. 훌륭한 갑질기업의 표본다운 행동이었다.

사상 초유의 근로자 갑질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불매운동이 시작되고, 노동청의 압수수색, 특별근로감독과 함께 사장 25명에 대한 대대적인 고소가 들어갔다.

드디어 악질기업 생탁을 정의구현할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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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줄만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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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식약청 과징금 5천만원 

부산고용노동청 과태료 2300만원 

고소 결과 사장 25명 중 2명 기소의견으로 검찰 송치 

게다가 중장년, 노년층이 주요 타겟이었기 때문에 불매운동의 효과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 후, 3년간 이어졌던 노조의 파업은 노조원들의 생계 부담이 커지면서 2017년에 마무리됐다. 지금 생탁은 뭐하고 있냐고? 세계로 미래로 쭉쭉 뻗어나가는 중~

관련기사 : 노동자지옥 생탁

3. 미스터피자


회삿돈 횡령, 광고비 90% 이상 점주 부담, 회장 친인척 업체의 재료 강매, 회장 자서전 강매, 탈퇴한 가맹점주에게 보복 영업까지. 마피아냐고? 피자가게다. 2017년, 프랜차이즈 갑질 원탑 미스터피자는 맛있는 피자의 탈을 쓰고 범죄도시에 나올법한 깡패짓으로 가맹점들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것은 보복영업이었다. 갑질을 견디지 못한 점주가 가맹점을 탈퇴해 새 피자가게를 열자, 미스터피자는 근처에 직영점을 열고 보복 영업을 시작한다. 단순한 보복영업 수준이 아니라 위성지도를 활용해 직영점을 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위치를 분석하고 탈퇴 업체에 줄 예상 피해액까지 계산해냈다. 흡사 군사작전에 가까운 설계였다.


치밀한 계산 끝에 낸 지점에서는 1만4000원자리 치킨을 5000원에 팔고, 피자를 시키면 돈가스를 서비스로 줬다. 손해를 보건 말건 상대방을 말려죽이려고 작정한 영업방식이었다. 결국 탈퇴한 점주의 새 피자가게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고, 점주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끔찍한 미스터피자의 보복영업과 그 외 비리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언론 보도가 집중되고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결국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이 사퇴했지만 곧 공정위와 검찰의 조사가 들이닥쳤다. 그렇게 갑질왕 정우현 회장은 구속이 되고 마는데...

지금까지는 고구마였으니 이번에는 사이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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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니다.




미스터피자 회장님이 받은 무거운 처벌은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200시간. MP그룹에 부과된 벌금 1억.

전통시장을 능가하는 후한 인심의 사법부가 토종 피자기업을 살린다며 대부분의 혐의를 무죄로 판결한 덕분이었다. 판사님 눈에는 기울어지다 못해 부러지고 터져나가는 가맹점들은 안보이시나봄. 참고로 MP그룹의 시가총액은 1,063억원이다. 대충 비교하자면 천만원 가진 사람한테 벌금으로 만원을 부과한 셈. 한국 법원의 따뜻한 정과 넓은 아량에 어이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관련기사: 프랜차이즈 개노답 삼형제

갑질은 있었지만 처벌은 없었다


수많은 갑질들이 있었지만 결국 무죄, 집행유예, 기업 규모 대비 별 되지도 않는 과징금 같은 솜방망이 처벌 뿐이었다. 기업들이 자꾸 갑질을 하고 범법을 저지르는 이유는 하나다.

법률상 매출 대비 과징금 부과 기준율은 담합의 경우 10%, 시장지배적 남용은 3%, 불공정거래행위는 2%다. 아무리 봐도 갑질 해서 생기는 이익이 손해보다 큰 상황. 기업들은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서 갑질을 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잘 정착되어 있는 영미의 경우,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한다. 때문에 기업이 피해액의 수십~수백 배에 이르는 배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어설프게 갑질하다간 뚝배기가 깨지는 수준이 아니라 요단강을 건널 수도 있는 것.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없을 줄 알았겠지만 놀랍게도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부분적으로 적용되어 있다. 가령 하도급법에서는 이미 2011년부터 도입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유는 실제로 승소한 사례가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소송 비용도 부담이거니와 애초에 계약을 유지해야 먹고 살 수 있는 하도급업체가 본사에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게다가 배상액도 고작 3배 뿐이라 갑질 억제 효과도 없음.


쉽게 말해 갑질 규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문제점을 깨달은 정부는 유통업체 관련 과징금 부과 기준율을 2배 인상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피해액의 최대 10배까지 확대한다고 나섰지만, 의도대로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어느새 2018년이다. 정의의 철퇴를 맞은줄만 알았던 그 갑질기업들은 반성문 수준의 처벌만 받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 사이다를 마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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