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낙선 후 차린 식당 이름의 의미
1996년 15대 총선 때 서울 종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노무현은 또 한 번 낙선했다. 14대 총선, 부산 동구에서 떨어지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떨어진 후 연거푸 3연패였다. 다행히 1998년 이명박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이 박탈당하면서 그해 7월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다행히 재선에 성공했다.
15대 총선에서 떨어진 이듬해 노무현은 낙선한 동료들과 서울 역삼동에 고깃집을 열었다. 간판만 단 것이 아니라 앞치마 두르고 직접 서빙도 했다. 그때 함께 했던 사람은 김원기, 김원웅, 박계동, 박석무, 원혜영, 유인태, 이철, 제정구 등이었다. 이들은 2명씩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손님을 맞았다.
(언젠가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인 김원웅 전 의원에게 들은 얘긴데 처음에는 노무현 등 얼굴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장사가 제법 잘 됐는데 오래지 않아 손님이 없어서 근 1년 정도 하다가 문을 닫았다고 했다. 유인태 전 의원은 언젠가 MBN에 출연해 20명이 2천만 원씩 모아 4억 원으로 고깃집을 차렸다고 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고깃집의 간판이다.
‘하로동선(夏爐冬扇)’
풀이하면 여름 화로, 겨울 부채. 더운 여름에 화로가 웬 말이요, 추운 겨울에 부채는 또 뭔가? 이 말은 철이 지나 쓸모가 없는 물건이나 아무 소용이 없는 말이나 재주를 비유하는 일컫는 말이다.
당시 노무현은 왜 이런 간판을 달았을까?
그 신중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유별난 간판을 달았을 리 없다. 모르긴 해도 이 간판에 꿈을 담아서 이렇게 정했지 싶다. 화로가 여름에는 필요 없지만 가을 지나 겨울 오면 꼭 필요한 물건이다. 부채 역시 겨울, 봄 지나 여름 오면 또 쓸모가 있다. 비록 당장은 낙선한 몸이지만 언젠가 당선의 그 날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이런 간판을 달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 전, 그날도 몹시 추운 날이었다. 인사동에 점심 모임이 있어서 나갔다가 우연히 겨울에 부채 파는 광경을 목격했다. 안국역 6번 출구에서 나오면 오른편 도로 쪽으로 행상이 서넛 있다. 중간쯤 군밤 장수 바로 옆에 부채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가게 앞에서 잠시 부채들을 살펴봤다. 얼추 30여 개 됐는데 모두 합죽선(合竹扇, 부챗살에 종이 또는 깁을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이었다. 주인장 말로는 자신이 직접 만들고 그림도 그렸다고 했다. 이 겨울에 웬 부채냐고 했더니 그래도 외국인들이 더러 사간다고 했다. 이로써 겨울부채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깨지고 말았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단지 때를 만나지 못했거나 적재적소를 찾지 못했을 뿐.
* 외부 필진 '정운현'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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