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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 아니 한국 문학을 번역하기 어려운 이유

문학을 번역할 때 얼마나 원문에 충실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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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작성일자2018.01.30. | 192,135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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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문학을 번역할 때 원문에 얼마나 충실해야 할까요? 세 가지 언어에 능통했고 그중 두 언어로는 문학을 쓸 만큼 글솜씨가 뛰어났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는 “유려하게 다시 쓴 문장보다 어딘가 서툴더라도 원문을 그대로 살려낸 번역이 천 배는 더 낫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번역가란 무릇 원문을 그대로 복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변용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번역이란 고차원의 문명 활동이자 상당히 수준 높은 글쓰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보르헤스는 모국어인 스페인어 외에도 여러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앞선 주장을 펼칠 땐 프랑스어를 사용했습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2016년 한국 소설 사상 처음으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작가인 한강뿐 아니라 작품을 영어로 옮긴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도 함께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당시 28살 박사 과정 학생이었던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어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지 불과 6년 만에 이렇게 뛰어난 번역을 해냈다며 영어권 국가의 문단에서 칭송을 받았습니다. 한국 언론도 <채식주의자>의 수상을 앞다투어 보도했습니다. 소설은 2007년 초판이 나왔을 때보다 스무 배나 많이,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적 자부심은 이내 알고 보니 번역본이 심각한 오역투성이라는 비판에 한풀 꺾였습니다. 원작자인 한강 본인이 영문판을 직접 읽고 검수했다고 하지만, 허핑턴포스트 코리아는 “엉뚱한 오역이 너무 많다”는 학계의 지적을 소개했습니다. 데보라 스미스는 지난 여름 서울 국제도서전을 찾아 “원작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만, 전체적인 작품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때로 부분적으로 충분하지 않게 번역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역 논란에 대한 자기변호로 풀이할 수 있는 발언이었습니다.


논란은 지난해 9월 한국계 미국인이자 이화여대에서 번역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차스 윤(Charse Yun) 교수가 LA타임스에 실은 칼럼을 통해 미국에도 소개됐습니다. 칼럼이 주목을 받으면서 그보다 두 달 앞서 한국 온라인 매체인 코리아 익스포제에 윤 교수가 썼던 글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습니다. 윤 교수의 지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데보라 스미스는 한강 작가의 담담하고 여운을 남기는 필체를 너무 화려한 문장에 담으려 했다. 그 결과 원작에선 찾을 수 없는 온갖 부사와 최상급 표현, 강한 수사가 난무하는 글이 되었다. 작품에서 이런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자꾸 눈에 띄었다. 마치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작품을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가 쓴 것처럼 고친 느낌이 들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과 한강

차스 윤 교수는 해당 번역이 적확하지 않을뿐더러 문화적인 차이에 따른 가독성을 고려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진단했습니다. 한국 문학의 유구한 전통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어져 왔지만, 최근 들어 서구, 특히 미국 문화에 포섭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한국 문학이 미국 언론에 꾸준히 소개되기는 하지만,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 문학에 쏠리는 관심과 인기에 비교하면 초라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강은 이런 갈증을 한 번에 해결해줄 스타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한강의 작품이 거둔 성공이 명백한 오역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작품이 훌륭해서 성공을 거뒀다고 말하기도 멋쩍은 상황이 되는 셈입니다.


<채식주의자>는 우화에 가깝습니다. 작품은 한 사람의 신체가 스스로 파괴되고 허물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남편 정 씨의 묘사를 빌려 주인공 영혜를 소개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 “평범한 아내”였습니다. 언제나 과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정 씨에게 평범하고 무난한 영혜의 성격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

(The passive personality of this woman in whom I could detect neither freshness nor charm, or anything especially refined, suited me down to the ground.)

그렇게 평범하고 무난한 그녀에게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혜는 브래지어가 가슴을 조여서 견딜 수 없다며 길거리를 걸을 때는 물론이고 남편의 직장 상사와의 부부 동반 모임에서조차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볼품없는 가슴에 노브라란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영혜의 과민함에 남편은 체면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아 불편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깬 남편 정 씨는 아내가 냉장고에 있는 고기란 고기를 모조리 버리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꿈을 꿨어.”


이 한마디와 함께 영혜는 앞으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맛있는 요리도 곧잘 하며 늘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정돈하던 아내가 듬직했던 남편은 갑자기 어떤 의미에서 파출부 같은 존재로 변해버린 아내에게 당혹감과 함께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남편은 꿈을 꿨다며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은 뒤로 한없이 야위어가는 동시에 섹스마저 이유 없이 거부하는 아내를 강제로 덮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아내는 마치 끌려온 사람처럼 축 늘어진 채 멍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볼 뿐이었습니다.


뜬금없이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영혜의 선언은 남편뿐 아니라 온 가족을 충격이 빠트렸습니다. 영혜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해 무공훈장까지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반복해서 참전 무용담은 늘어놓곤 했습니다. 전장의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가부장적인 그에게 고기를 먹지 않겠다 고집부리는 영혜를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족 모임에서 온 가족이 나서 영혜에게 고기를 먹으라 설득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는 영혜의 입에 탕수육 한 점을 강제로 쑤셔 넣으려 했습니다. 참지 못한 영혜는 가족 앞에서 과도로 자신의 손목을 그이 버렸습니다. 그 길로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책 후반부에선 세상의 강요에 맞춰 사는 언니 인혜가 등장합니다. 인혜는 병원에 입원한 영혜를 찾아갑니다. 영혜가 손목을 그은 지 3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인혜는 그제야 맏딸로서 자기 자신을 희생해가며 악착같이 일해 온 자신의 삶이 성숙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삶이었음을, 단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몸무게가 30kg까지 줄어든 영혜는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으며 물구나무를 선 채 햇빛을 좇으며 자신을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한강은 영혜라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데 20세기 초 모더니즘 시인이었던 이상의 작품에서 얻은 영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의 작품은 일본강점기 엄격한 검열을 받았지만,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불안함이 행간에 서려 있었습니다. 이상은 긴장 증세의 하나로 나타나는 금단현상 혹은 자기 안으로의 침잠을 강박이나 우울증에서 비롯되는 증상이라고 묘사하며 “사람은 누구나 다 식물이 되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이상이 식민지 국가의 일원으로서 집단적인 트라우마에 사로잡혔다면 한강은 훨씬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고통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한강의 글쓰기도 물론 한국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차스 윤 교수는 그래서 한강의 글을 옮길 때 오역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많은 서구 독자가 대체로 한국의 현대 소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화자의 소극적인 태도를 꼽았습니다. 하지만 데보라 스미스는 소설의 갈등과 긴장을 증폭시켰고 한강의 원작에 충실하지 못한 대신 서구 독자들이 무리 없이 읽어 내려가기에 좋은 번역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소설 속 “뭐 하는 거냐”고 묻는 남편의 질문을 무시한 채 영혜가 냉장고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원작(한강): 아무 말도 듣지 못한 듯 우뚝 서 있었다.

공식 영역본(데보라 스미스): (She is) perfectly oblivious to my repeated interrogation.

정확한 번역(차스 윤 교수 주장): as if she hadn’t heard me.

원작은 분명 영혜가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서 있지만, 이어지는 문단을 보면 실은 영혜가 남편의 질문은 물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도 다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미스의 번역을 우리말로 다시 옮기면 ‘계속되는 내 질문도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의식이 없는 상태’인 것으로 읽힙니다. 미묘하지만 둘의 의미는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영혜라는 인물은 과장될 만큼 공격적인 요소나 분명한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돋보이는 인물이 아닙니다. <채식주의자>는 조용한 저항과 그로 인한 결과를 담담히 그려내는 작품이자 가족과 사회라는 규범에 개인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는지를 조명해 한국 문화를 찬찬히 짚어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런 질문들은 한강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작가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지방 도시였던 광주의 인구는 약 60만 명. 한강의 아버지였던 한승원 씨도 유명한 소설가로서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강은 지난 10년간 아버지가 받았던 많은 상을 대를 이어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죠. 또한, 한강의 오빠와 남동생도 모두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며 학교 교사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한강의 가족은 수도 없이 사는 곳을 옮겨 다녔습니다. 한강은 초등학교만 다섯 군데를 다녔고 그러면서 책에 더욱 탐닉하는 어린이가 됐습니다.


한강의 가족은 1980년 1월 광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당시 한강은 10살 때이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지 얼마 안 된 때였습니다. 군부는 광주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평화 시위를 총칼로 짓밟고 무고한 시민들을 폭행했습니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모여 조직한 시민군이 경찰서에서 확보한 무기로 무장하자 계엄군은 일시적으로 광주 밖으로 물러납니다.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에 비견되곤 하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가장 극적으로 전개된 시간은 아흐레. 5월 18일부터 계엄군이 도청을 공격해 시민군을 사살하는 작전을 벌인 27일까지 사망자만 최소한 200명으로 집계됩니다. 당시 군부의 공식 집계가 워낙 사건을 축소하고 왜곡했던 탓에 사상자 통계는 워낙 들쭉날쭉해 2천 명도 더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입니다. 쿠데타 이후 스스로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에게는 학살자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있었던 일로 작가 한강이 가족을 잃지는 않았지만, 이후 그녀의 고향 광주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한강의 작품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Human Acts”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판된 한강의 또 다른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이 소설을 번역한 것도 데보라 스미스입니다. 소설은 15살 소년 동호가 폭풍우와 함께 떠난 이들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계엄군은 동호가 나고 자란 광주를 찢어놓았고 수많은 시민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가장 친한 친구 정대도 빼앗아갔습니다. 동호는 친구를 찾으러 나갔다가 합동분향소이자 임시 시신 안치소가 돼버린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분류하고 수습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주검들의 혼을 위로하는 일도 함께하던 동호는 죽음이 시신을 어떻게 엄습하는지를 똑똑히 지켜봅니다. 상처 난 부위의 살들이 먼저 썩고 발가락은 마치 생강 덩어리들처럼 굵고 거무스레해졌습니다.


이따금 애국가가 들려 옵니다. 밖에서 숨진 시민들의 장례를 약식으로 치러주고 있는 겁니다. 동호는 슬픔에 잠겨 결국 시민들을 살해한 것이 나라인데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건지 의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은숙 누나는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동호는 자신이 궁금했던 것,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은 훨씬 더 크고 추상적이며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질문 다발임을 깨닫습니다. 아마도 그 내용은 사라지지 않는 잔혹함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에 관한 것일 겁니다. <채식주의자>에서 인혜가 얻은 깨달음도 동호가 느꼈던 것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지금껏 그가 살아오고 버텨온 인생이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존엄성을 갉아먹으며 연명해왔을 뿐이라는 쓰라린 깨달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소년이 온다> 4장에서 동호는 다시 광주를 점령한 계엄군의 총에 사살됩니다. 두 손을 들고 항복의 표시를 했지만, 총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소설의 각 장은 짧은 삶이지만, 동호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은 인물 개인이 겪은 아픔과 상처를 그려냈습니다. 80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다가 뒤에 출판사에 취직해 학살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을 맡게 된 이, 대학생이었다가 정치범으로 붙잡히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 미싱사로 일하다가 노동운동에 몸을 바치는 이, 그리고 아들의 죽음에 일생을 아파하는 동호의 어머니까지. 소설은 시종일관 소년을 너라고 부르는 2인칭 화법을 유지하며 독자를 1980년 5월의 넋이 된 소년과 이어주고 그렇게 우리를 광주의 아픔과 상처 속에 붙들어 놓습니다.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아마도 동호의 친구 정대의 혼이 동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2장 “검은 숨”(영문판 제목은 The Boy’s Friend, 1980)일 겁니다. 정대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를 보러 광장에 갔다가 군인이 쏜 총에 맞습니다. 피 흘리며 쓰러진 정대를 향해 달려오던 다른 시민도 총에 맞아 쓰러지고 겁에 질린 동호는 건물 담벼락에 숨죽인 채 쭈그리고 앉아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가는 친구 정대의 발을 바라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군인들이 주검이 된 정대의 시신을 쓰레기 치우듯 싣고 가버렸습니다. 동호에게 이 모든 장면을 넋두리하듯 털어놓는 정대의 혼은 산더미처럼 쌓인 시신들 사이로 흘러내린 피를 타고 몸에서 빠져나왔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 빠진 풍선처럼 구천을 떠돌며 동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정대는 혼이 돼 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절한 과정을 담담히 설명하고 동호는 그 이야기를 다시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가냘프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서로 닿듯 혼들은 온 힘을 기울여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정작 혼끼리 말을 걸고 이야기하는 법은 몰랐습니다.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저세상에서 만나자는 말 따윈 의미 없는 거였어.”


데보라 스미스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부연했습니다.

“… sad flames licking up against a smooth wall of glass only to wordlessly slide away, outdone by whatever barrier was there.”


(*옮긴이: 이를 다시 우리말로 옮기면 “혼들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투명한 유리 벽 같은 것이 있어서 슬픈 영혼들은 그 유리 벽을 한없이 더듬고 핥지만 서로 끝내 닿지 못하고 스러지고 말아” 정도가 됩니다.)

수치스러운 기억을 잊어버리고 지우려 노력하는 동호와 달리 정대는 오히려 흉하게 짓이겨진 자신의 주검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살았을 때를 기억해내고 복구해내려 애를 씁니다. 한강의 작품에서 자신의 과거를 외면하고 거기서 멀어지려는 인물은 대개 살아도 죽은 거나 다름없는 끔찍한 삶을 삽니다. 반대로 자신을 향한 존재적 위협을 성찰하고 끌어안는 이는 최소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습니다. 무서운 기억, 끔찍한 과거를 돌아보는 건 분명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상처를 받았는지 정확히 알고 나면 일말의 안도감이 찾아오기 마련이죠.


데보라 스미스는 온라인 매거진 아심토트(Asymptote)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번역한 과정에 관해 글을 기고했습니다. 스미스는 한강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텍스트에 직접 언급되지 않은 어떤 이미지들이 행간 곳곳에서 아주 강렬하게 떠올라 온몸을 사로잡는 느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드물게 의미를 부연했던 표현을 몇 가지 인용했는데 그 가운데 앞서 <소년이 온다>에서 함께 있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혼들을 묘사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차스 윤 교수는 <채식주의자>의 번역에 관한 글에서 자신은 스미스의 번역을 아주 좋아하지만, <The Vegetarian>은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수준을 한참 넘어 사실상 새로 창작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스미스는 자신이 아무런 표현이나 억지로 보탠 것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맞섰습니다. 즉, 한국어로 쓴 원작을 읽었을 때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원문 어딘가에 그런 표현이 있어 잔상이 남았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기에 영어로 옮길 때 그 표현을 덧붙여도 어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실 이는 원작자와 번역가가 으레 겪는 과정과 좀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원저자와 번역가의 관계를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한강 작가는 실제로 자신은 스미스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거웠다며 번역 과정에서도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인 로버트 로웰(Robert Lowell)이 번안시 ‘모방(Imitations)’을 통해 언급한 번역에 관한 주장이 떠오릅니다. 윤 교수는 앞서 LA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의 시 ‘캐세이(Cathay)’와 번역에 얽힌 일화를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데보라 스미스가 언급한 효과는 사실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을 읽는 모든 독자가 느꼈으면 하는 바람일 겁니다. 활자로 된 작품에서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받아야 그 이미지를 오롯이 자신의 경험으로 투영해낼 수 있을까요? 그야말로 작품에 온전히 빠져 이를 소화해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죠. 또한, 이런 방식은 작가로서 한강이 지향하는 바와도 근본적으로 맥이 닿아있습니다. 지난 2015년 한강은 영국 노리치에서 열린 한 번역 워크숍에 참석한 경험에 관해 기고했는데 당시 이 워크숍에는 데보라 스미스를 비롯해 한강의 작품을 영어로 옮기는 쉽지 않은 작업을 수행하던 여러 번역가가 참석했습니다. 한강 작가는 기고문에 워크숍에 참석차 영국에 갔을 때 자신이 꿨던 꿈을 언급합니다.

“하얀 침대 속에 누군가 누워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얼굴이 흰 천에 덮여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그/그녀가 생각하는 말들을 내가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일어나야 해…. 아니야, 이건 너무 평이하다’, ‘나는 지금 꼭 일어나야겠어…. 아니, 이건 너무 밋밋하다’, ‘나는 이 침대를 떠나야 해…. 아니, 이건 어색하다’”


(Someone was lying in a white bed, and I was quietly watching them. Though the sleeping figure’s face was covered by a white sheet, she could hear what the person was saying. “I have to get up now . . . no, that’s too flat.” Then “I really will have to get up now . . . no, that’s too bland.” And: “I have to leave this bed . . . no, that’s awkward.)


(이 기고문을 영어로 번역한 것도 데보라 스미스입니다.)

좋은 번역이란 살아 숨 쉬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한강 작가의 무의식이 꿈에 반영됐는지도 모릅니다. 커다란 흰 천에 덮여 있더라도 그 자체로 어떻게든 뜻이 통하고 이해가 되는 그런 번역이 좋은 번역이겠죠. 한강 작가는 이어 “오전 섹션에서 꿈 이야기를 들려주자 모두가 즐거워했으며 누군가의 악몽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소년이 온다> 영문판은 원작의 “에필로그 ♦ 눈 덮인 램프”를 “The Writer, 2013″이란 제목으로 마지막 장에 배치했습니다. 소설은 에필로그를 쓴 이듬해인 2014년 한국에서 출간됐습니다. 작가 한강은 이장에서 소설의 주인공 동호가 자신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고 털어놓습니다. 2016년 한 인터뷰에서 한강은 정대와 동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일이 비할 데 없는 극심한 고통이었다며 하루에 길어야 서너 문장을 쓰는 게 다인 날이 부지기수였다고 말했습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에 관해 제대로 된 글을 쓰려고 한강은 관련 역사 자료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계속 꾸게 되는 꿈 때문에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취재를 계속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느 날에는 어딘가에서 집단 학살이 벌어지리라는 소식을 미리 들었는데 자신에게 이를 막을 힘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꿈을 꿨고 또 다른 날은 타임머신을 발견해 1980년 5월 18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다 꿈에서 깨기도 했습니다. 사실 작품에 완전히 몰두한 나머지 꿈을 꿔도 온통 작품에 관한 꿈만 꿀 만큼 무의식까지 작품으로 도배되는 것을 마다할 작가는 없을 겁니다. 그만큼 품을 들여야 좋은 작품이 나올 테니까요. 하지만 매번 등장인물이 이글거리는 화염 한가운데서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꿈이라면 그래서 몸서리치다가 땀에 흠뻑 젖은 채 깨어나는 꿈이라면 자신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해서 스스로 심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인 꿈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한강 작가 본인과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느낀 공포와 악몽은 똑같은 것이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잔혹한 폭력의 기억을 도저히 떨쳐내지 못하고 평생 그 기억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그 공포의 뿌리는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한강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한강이 한국어로 쓴 글을 다시 한번 데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옮겼습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가시 돋친 설전이 오가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종종 언급되는 상황을 한국에서 지켜보며 쓴 글입니다.


“외국 언론들은 종종 세계가 두려워하거나 골칫거리로 여기는 북한에 대해 한국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는 점을 신기하다는 듯이 보도한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고요는 한국인들이 실제로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전쟁의 공포를 극복했다는 방증이 아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긴장과 공포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며, 아주 일상적인 대화 중에도 순간적으로 그런 해묵은 공포가 내보이기도 한다.”


작가 한강에게 글쓰기도, 번역도 마찬가지 작업입니다. 한국인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한 근원적인 두려움과 같은 단단히 쌓인 감정을 들춰내고 관찰한 뒤 그 감정을 심어놓은 인물을 소설 속에 재현해내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려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난해 11월 영국에서는 한강의 신작 소설 <흰>이 <The White Book>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습니다. 이번에도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을 맡았습니다. 책에서 작가 한강은 어린 딸아이를 잃는 어미의 고통과 그로 인해 애도하는 행위 자체를 고찰합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흰색은 생과 사, 비탄과 예술적 창조를 모두 아우르는 순수한 상징입니다. 한강은 일부러 소설책의 몇 쪽을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빈 종이로 남겨뒀습니다. (한강이 영국에서 열린 번역 워크숍에서 언급한 악몽 속에 등장한 하얀 천에서 비슷한 모티프가 보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강은 자신의 글이 상처가 난 곳에 바르는 하얀 연고나 상처를 덮는 하얀 천처럼 깨끗한 무언가로 바뀌어 독자들에게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 한강에게는 실제로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죽은 언니가 있었는데 어차피 이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숨을 수 없다면 언니가 느꼈을 고통을 어떻게든 글로 써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강은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3월, 한국 국민은 국정농단의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군사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을 대거 파병했고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에 일어나기 몇 달 전 측근에게 살해당한 인물입니다. 한강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전 열린 촛불집회 가운데 자신도 참가했던 몇 차례 집회를 언급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시민들이 참여한 가장 큰 집회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지난 촛불집회 중에는 시민들이 모두 함께 손에 들고 있던 촛불을 끄고 어둠은 반드시 가라앉게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거리에서 아로새긴 장면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한강은 이를 가리켜 “우리는 그저 촛불이라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라고 썼습니다. 어쩌면 한강의 작품에 묘사된 행위, 혹은 한강의 꿈에 나타난 이미지와도 방법이 닮았습니다. 촛불은, 그 불꽃은 바람 앞에 나약하고 쉬이 꺼지기도 하지만, 죽은 이를 추모하는 데도, 또한 산 자의 앞길을 비추는 데도 그 무엇보다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 외부 필진 '뉴스페퍼민트'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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