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를 모르고 산다

조회수 2017. 12. 21.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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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그 사이> 가 희생자를 그려내는 특별한 방식


희생자(犧牲者) : 어떤 일이나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거나 다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


최근 몇 년 동안 너무 쉽게 입에 담았던 단어가 있다. 바로 '희생자'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부르게 됐다. 그 이후에 발생한 수많은 사건사고를 목도하며, 어김없이 희생자를 논했다.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아픔과 슬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잊은 채 살고 있었다. 제3자에 불과한 우리가 희생자들이 겪었을, 또 앞으로 겪어 나갈 상처를 다 헤아릴 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보며 든 생각이다.

ⓒJTBC

"참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다른 것, 그 시선들 사이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또 큰 사고가 일어났던 과거와 현재,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져야 상처를 어떻게 회복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김진원 PD)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희생자'에 관한 드라마다. 이야기는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두에게 제법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이어지던 어느 날, 갑자기 쇼핑몰이 무너졌다. 붕괴 사고였다. 그로 인해 무려 48명의 꽃다운 목숨이 희생됐다. 세월이 흐르자 많은 것이 희석됐다. 사람들은 그 끔찍했던 사고를 점차 잊기 시작했고, 그나마 기억 하고 있는 사람들도 "48명밖에 안 죽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차피 남의 일이니까. 세상은 그 불편한 기억들을 지워갔다.


정현종은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가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일이므로. 그 뿐인가. 가족들의 삶도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그 사이>에서도 그렇다. 그 참혹했던 붕괴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희생자들은 지옥을 살아간다. 쇼핑몰이 붕괴되던 순간부터 삶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기억은 매순간 또렷하게 재생됐다. 악몽 같은 나날이 끊임없이 계속됐다.

ⓒJTBC

"불행 중 다행 같은 건 없다. 불행은 그냥 불행한 거야." (하문수)


"사람들이 위로랍시고 하는 말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맞다. 아무리 엿 같은 상황도 지나는 간다. 단, 언제든 다시 돌아온다는 게 문제지." (이강두)

하문수(원진아)는 사고 현장에서 동생 연수를 잃었다. 그도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그러나 죄책감이 남았다. 동생을 지키기 못했기 때문이다. 문수는 남자친구와 만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곳에 남아있던 동생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문수를 향해 엄마 윤옥은 "왜, 너 혼자야?"라며 오열하고, "엄마가 꼭 같이 있으랬잖아."라고 몰아세운다. 아빠 동철은 "기억 안 나? 사고 날 때 어떻게 된 건지?"라고 캐묻지만, 문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사고의 여파는 단란했던 가정을 파괴했다. 동철은 집을 나와 혼자 지내며 국수 장사로 생계를 이어간다. 윤옥은 목욕탕을 운영하지만,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현실을 도피하려 애쓴다. 그러다 보니 마을 주민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을 벌인다. 한편, 문수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사고의 트라우마 속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간다. 그러면서도 트러블 메이커가 된 엄마를 보살피고, 삶에 무감각해진 아빠를 보듬으며 씩씩하게 살아간다. 슬픔을 억누르고 상처를 숨긴 채 살아가는 문수의 모습이 애잔하다.


촉망 받던 축구선수였던 이강두(이준호)는 그날의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못 쓰게 됐다. 혼수상태로 3개월을 보내고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세상은 더 이상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쇼핑몰 현장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던 아버지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를 쓰지만, 사기를 당하고 끝내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 정신을 차려보니 온통 빚만 남아 있었다. 강두는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뒷골목을 전전한다. 유흥주점 해결사로, 마리(윤세아)의 부탁을 들어주며 돈을 번다.


"아니요, 사고 원인이 설계상 계산 미스로 결론 났어요. 그 탓에 설계사가 자살했으니까 49명이나 죽은 겁니다." (서주원)


한편, 쇼핑몰 붕괴사고로 인한 희생자가 48명이 아니라 49명이라 주장하는 이가 있다. 건축사무소 대표 서주원(이기우)이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쇼핑몰의 설계를 맡았고,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몽땅 뒤집어 썼다. 그리고 자살을 선택했다. 주원은 평소에 '안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던 아버지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잘못을 저질렀을 거라 믿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설계를 거듭해서 확인했고,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사업주인 청유 건설을 향해 칼을 갈며 가만히 때를 기다린다.


<그 사이>는 상처 입은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로 밀폐된 공간이 답답해 견딜 수 없는 문수와 강두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16층 계단에서 마주치게 된다. 그 운명적 만남은 로맨틱하다기보단 마음을 짠하고 아프게 만든다. <그 사이>는 드라마 곳곳에 상처를 담고 있다. 그 상처를 바라보는 시선은 놀라운 정도로 담담하다. 과장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더욱 먹먹하게 다가온다.


문수, 강두, 주원은 청유 건설이 쇼핑몰 붕괴 사고 부지에 세우려는 바이오타운 건설 현장으로 모여든다. 주원은 건축사무소 대표로, 문수는 건물 모형을 만드는 일로, 강두는 건설현장의 인부로 참여하게 된다. 너무도 피하고 싶었던 그곳에서 다시 만난 세 청춘은 과연 어떻게 자신들의 고통과 맞서 싸우게 될까. 또,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 보듬고 위로해 나가게 될까. 희생자라는 단어의 무거움을 되새기게 하는 <그 사이>의 아프지만 따뜻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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