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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 정글 속에 던져진 신 취약계층

조회수 2017. 12. 20. 16: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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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게 따라붙은 알권리라는 딱지


종현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연예인을 포함한 유명인들에 대해 대중의 공격 양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이들의 사생활에 대한 폭로도 이어진다. 유명인이 관련된 사건에는 꼭 ‘공인’과 ‘알권리’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과연 연예인은 공인인가? 유명인은 그 자체로 권력자인가?

공인인가 아닌가?

2년 전 유명 야구선수의 전 연인이 둘 사이의 카톡 대화를 폭로했다. 대화 속에 저급한 표현으로 언급된 치어리더는 이들을 고소했고 둘은 모두 처벌을 받았다. 한 때 연인관계였다가 폭로를 통해 야구선수에게 타격을 입힌 여성은 약자임을 호소하면서 “구단이라는 기업의 보호 아래 있는 공인과 힘없는 자신”을 대비시켰다.


최근 많은 네티즌들과 SNS에서 설전을 벌인 배우 유아인에게도 공인의 책임론이 따라붙었다.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수만 명의 팔로워를 지닌 ‘공인’이 특정인을 인신공격했으므로 문제라는 것이다. 연예인들이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되면 바로 공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따른다. 운동선수도, 시인도, 이름이 조금 알려진 예술가도 모두 공인이라고 한다. 과연 이들은 공인일까? 공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공인이란 보통 공직자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공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공직자보다는 ‘알려진 사람’에 가깝다.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을 논할 때 ‘공적인 인물’이라는 개념이 쓰이는데, 야구선수나 연예인들은 공인보다는 공적인 인물에 가깝다. 최근 연예인도 공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자기 영역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면 바로 공인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규정은 모호한테 범위는 넓어져서 곧잘 논란이 인다.


요즘은 사법부의 판결에서도 공인의 범위가 넓어지는 경향이 있고, 미국에서는 공적인 인물도 ‘까방권’이 성립되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공인 여부를 따져보는 이유는 어떤 사안에 더 정확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사생활이 폭로되거나 부당한 권리의 침해를 당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공인의 범위가 확장되는 현상이 구성원들의 책임성이 더 높은 사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연히 다중의 관심을 받은 사람이 인격권이나 사생활의 자유를 제약받기가 쉽다.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다수의 호기심’이라는 요소가 동료시민의 기본권을 좌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언론은 유명인 관련한 사안을 보도하면서 ‘알권리’를 명분으로 삼는다. 대중들도 사적인 호기심을 정당화하려 공익과 알권리를 앞세운다. 기본권의 보호가 우선이냐,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우선이냐 하는 논쟁에서 판단의 근거는 ‘공중의 관심인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는가’ 여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이 다중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한 사안인지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명인의 이혼재판이 다중에게 중계될 이유가 무엇인가? 연예인들의 연애관계는? 성정체성은? 개인적인 재판기록은? 재벌의 성생활은?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공인이라는 딱지붙이기와 피해

공인에 대한 기준을 고무줄처럼 늘려놓으니 우연하게 폭로된 어떤 장면, 내밀한 사생활을 마구잡이로 보도하면서 언론은 알권리를 내세운다. 사소한 실수나 검증되지 않은 일방의 주장을 근거로 공인으로서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기도 한다.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힌다. 권리를 막대하게 침해받아도 공인이니까 항변할 자격이 없다고 하고, 유명함으로 얻는 보상이 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예인들에게는 그런 요구가 당연한 듯 따라붙는다. 이건 사회정의를 위한 행위가 아니다.


유명인은 유명인일 뿐, 동등한 권리를 가진 개인이다. 유명함이 다수 대중의 인기 때문에 얻은 이익이므로 대중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그건 부당해도 공포 앞에 굴복하라는 말과 같다.


공인이라 해도 잘못에 대한 책임은 행위만큼만 져야 하고, 그 외의 영역은 보호받아야 한다. 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비리를 저질렀다면 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그(녀)가 사회통념상 부적절한 관계가 있다 해서 괘씸죄나 여론죄에 의해 처벌할 수는 없다.


공적행위와 사적 권리를 엄격하게 구분할수록 권리보장이 잘 되는 사회다. 정치인의 사생활에 무관심한 선진국의 국민성을 선망한다면, 혼외자 ‘논란’ 만으로 공직자의 사퇴를 당연시하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부당한 호기심이 제동 없이 남용되고, 공포에 굴복하는 질서가 자연스러운 사회에서는 권력이 적대자의 사생활을 사찰하고, 충성을 유도하거나 배신을 막는 무기로 활용하고픈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공인과 유명인을 구분하고, 공인이라 해도 공적인 행위와 사적 권리는 엄격하게 구분하는 사회가 권리의 단위를 개인으로 규정한 근대 민주주의 사회의 지향에 더 가깝다.


연예인은 공인도, 강자도, 권력자도 아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우연히 유명해진 사람일 뿐이다. 돈을 많이 벌고, 인기가 많다고 해서 곧 행복하고 걱정 없는 삶이라면 그들이 계속 죽어나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직접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일수록 노출과 비례해 상처가 쌓이게 된다.


연예인에게 공인의 책임감을 요구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인기의 대가라 여기고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은 철회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할 일 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도 이제 정정해야 한다.


그들은 만인이 만인을 사냥하고, 온라인 공격이 공론장의 순기능을 잡아먹어 버린 이 정글 속에 새롭게 던져진 권리의 취약계층이다.

* 외부 필진 '이선옥'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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