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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안전 검침하다가 성추행 당했습니다"

조회수 2017. 12. 11. 09: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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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당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도시가스 검침원입니다. 맞아요 매달 여러분의 집을 방문해 가스 검침을 하는 사람입니다.

결혼 전에는 회사에서 행정 업무를 봤는데, 애들 키우다 보니 더 이상 저 같은 경력단절자는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어느 날 동네에 가스검침원 자리가 났다는 얘길 듣고 ‘여기다!’ 싶은 마음에 바로 지원했어요. 출퇴근이 자유롭고 동네를 돌면서 일하는 거니깐, 틈틈이 애 돌보고 집안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현실은 달랐어요. 검침원들은 고지서를 돌리고, 도시가스 계량, 안전점검 등을 해요. 검침은 매달, 점검은 6개월에 한 번씩이요. 저는 총 3400세대를 맡았는데, 매달 100% 검침을 하려면 밤 11시까지 일해도 도저히 끝낼 수 없는 거예요. 주말도 쉴 수 없어요. 어찌나 주말에 와달라는 사람이 많은지.




“출근해야 하니까 아침 7시에 오세요”


“낮엔 사람 없고 밤 10시에 오세요”


“일요일에 오면 안 돼요?”

요즘엔 1인 가구가 많아서 한 번에 검침을 성공하기도 어려워요. 어떤 집은 10번 이상 찾아간 적도 있어요. 자유로운 출퇴근이라고 해서 시작한 일인데 실상은 ‘종일 출근’ 상태와 다름없어요.


제가 8년 차인데 이렇게 한 달을 일해서 받는 돈이 고작 120만 원이에요. 최저임금이 될까 말까 한 돈이죠. 어째 월급이 이렇게 짜나 했더니, 회사에서는 우리가 언제 일을 시작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다면서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한 것으로 일괄 처리하더라고요.



회사에 항의도 해봤죠. 적어도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달라고요.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가장도 아니고 주부인데, 월급 그 정도만 받아도 되지 않아?”

주부니, 가장이니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요. 제가 주부라서 월급을 덜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그저 일한 만큼 돈을 달라는 요구한 건데요.




─────




요즘에는 목숨 내놓고 다니는 기분이에요. 여성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다짜고짜 욕부터 하는 건 다반사고요. 특히 성추행하는 남자들 때문에 무서워 죽겠어요. 행여 남자만 여러 명 있는 집을 방문하거나, 집에 술에 잔뜩 취한 남자가 있으면 소름부터 쫙 돋아요. 괜히 집적거리면서 음담패설을 늘어놓거나 ‘애인하자’며 희롱하는 인간들이 많거든요.


“가스 밸브 누출 점검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갑자기 뒤에서 껴안으며 몸을 비벼대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도망치려고 하니까 현관문을 막아서면서 ‘한 번만 안아달라’고 끌어당기는데... 신발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남자를 마구 밀친 후에야 나올 수 있었어요.”


울산 A 도시가스 검침원 박OO씨

”밤에 검침하러 갔더니 “너 밤에 다니다 성폭행당하면 어쩔 거냐”고 말하는 거예요.”


서울 B 도시가스 검침원 김XX씨

”현관 벨을 누르니까 남자가 다 벗은 상태로 앞치마만 두른 채 나왔어요.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황급히 자리를 피했어요.”


서울 C 도시가스 검침원 전△△씨




하도 이런 일이 잦으니깐, 2년 전에 가스검침원들이 들고 다니는 검침용 PDA에 ‘위급상황용 버튼’을 달았어요. 버튼을 누르면 회사에 바로 연락이 간대요. 하지만 오작동이 잦아서 실제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안 돼요. 어떤 회사에서는 ‘성희롱 대처 내부 매뉴얼’을 만들었다는데… 읽어보니 ‘어쩔 수 없으니까 니가 참아라’는 소리던 데요.

A 도시가스 내부 매뉴얼


2. 고객이 신체적 접촉을 시도할 경우?


-신속히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함을 알리며 자리를 피한다.



3. 고객이 음담패설을 할 경우?


-당황하지 않고 못 들은 척 담담하게 업무적으로 말을 돌린다.


-고객님 안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도시가스 검침원의 공식 이름은 ‘안전매니저’입니다. 글쎄요. 제 안전에는 항상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데 누군가의 안전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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