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무원? 편한 직장? 공무원의 이상과 현실

조회수 2017. 11. 3.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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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도 직업이야. 여기 노는 곳 아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공무원이 생겼다. 


그럴 만도 하다. 선배들 중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선배들이 꽤나 있었고 그 선배들 중 한 명이 결국은 합격한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 선배를 부러워했다. 일이야 민원 처리가 전부일 것이고,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도 잘 나온다. 이것은 그야말로 '철밥통'이 아니던가.


그러다 우연히 공무원이 된 그 선배를 만날 일이 생겼다. 부럽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선배는 나를 보고 웃더니, 커피나 한 잔 하자고 말했다.

갓갓무원님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공무원?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시험이지"


▷형, 이제 반년 쯤 되신거죠. 

▶11월부터 해서 지금이 8월(인터뷰 당시 8월 말) 이니까 7개월 일했는데. 이제 시보는 뗐어. 


▷시보? 

▶원래 시보 기간이라고 6개월 동안 있거든. 이 기간 동안에는 어떻게 보면 나의 신분이 완벽히 보장되지는 않아. 만일 6개월 안에 징계를 먹거나 사고를 치면 시보가 안 되고 잘리는 거지.


▷그럼 대기업으로 치면 인턴이네요. 

▶인턴보다는 그래도 확실하지. 벌금 이상의 형을 받지만 않으면
.


▷벌금형 이상의 죄를 지으면 일단 나쁜 놈 아닌가요... 

▶그건 그렇긴 하다...


▷네... 형은 원래 꿈이 공무원이었어요? 

▶응. 아버지가 대기업에 있다가 IMF 때 짤렸거든. 그 여파가 너무 컸어. 부모님도 무조건 공무원 하라고 하시고. 


▷그럼 행정학과나 그런게 유리하지 않을까요 

▶사기업도 아니고 공무원 되는데 학과 보는 거 아니니까. 이 과는 나에게 배움이 많을 것 같아서 선택했어. 다만 2학년 끝나고부터 바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 일부러 전공도 땡겨 들었어. 졸업학기에는 최대한 학교에 안나오려고.


▷공무원이 '유행'하기 전 부터 준비를 하신거네요

▶응. 시험 자체도 매력도 있었어.


▷매력?

▶나는 공무원 시험이 대한민국에 남은 가장 평등한 시험이라고 생각하거든. 학력, 학점, 스펙. 그런거 필요없어. 그냥 그 점수 커트라인에 들어 가냐 아니냐의 문제야. 순수하게 공부를 더 많이 했냐 아니냐의 차이잖아. 얼마나 평등해.

출처: KBS
채용 내정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된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

▷맞아요. 채용 비리도 너무 많고. 

▶만약에 사기업을 준비해서 떨어졌다고 치자. 그러면 솔직히 말해서 부모 탓을 할 수도 있고, 출신 학교 탓을 할 수도 있어. 요즘 스펙이 워낙 중요하니까. 그런데 공무원 시험은 딱 하나야. 그냥 내가 공부를 덜 한거야.


"2개월 주기로 자꾸 옆사람이 바뀌더라고"


▷공무원하면 노량진인데, 형도 그럼 노량진 출신?

▶응. 노량진 고시원에서 살았어. 고시원인데도 월세가 너무 비쌌어. 


▷얼마 정도에요? 

▶한 40~ 50.


▷고시원이요? 

▶좀 비싸지. 그래도 학원이 가까우니까 많이 살아.

놀라워라...

▷학원도 1타 강사, 뭐 이런 식으로 인기 강좌들이 있던데

▶좋은 수업들이지. 그런데 거기 의존하면 또 안돼. 합격생들이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면 저 얘기가 내 얘기가 될 것만 같고, 저 학원에 가는 순간 나를 책임질 것 같지? 하지만 절대 안 그래. 학원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빨리 관두는 사람? 

▶응. 정확히 말하면 딱 2개월만 하고 그만두는 사람이야. 수강료도 내면서 권 당 5만원씩 하는 책도 몇 권씩 사주고. 그러면서 빨리 포기하니까 가뜩이나 좁은 학원 강의실 공간도 줄여주고. 얼마나 좋아. 


▷아... 

▶그래서 무턱대고 고시원부터 들어오면 안돼. 가뜩이나 외로운데 혼자 지치기 쉬워. 거기다가, 요즘은 등 떠 밀려 노량진에 온 사람이 많더라고. 요즘 공무원 많이 뽑는다더라. 나이 제한이 없다더라. 이런 식으로. 그런 사람들이 공부가 눈에 들어오겠어?


▷아무래도 어렵죠. 

▶고시원 자리가 2개월마다 바뀌어. 눈에 좀 익을만 하면 또 다른 사람이고. 


▷무턱대고 도전할 일이 아니네요 

▶응. 사기업들은 불합격해도 토익점수나 스펙 같은 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잖아? 채용시즌에 맞춰 그것을 다시 활용할 수도 있고. 그런데 공무원 시험은 남는 게 없어. 몇 년을 공부해도 사회에 나가면 가치가 0이야. 그러니까 노량진에 있는 사람들이 힘들지. 그러다가 잘못 습관 들이면 진짜 한량 되는거야. 노량진이 얼마나 놀기 좋은데.

저렴하기로 소문난 노량진의 저렴한 물가.

▷코인노래방 5곡에 1000원...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노량진에 오는 것에 반대하는 편이야.


▷그럼 노량진에 오지 않더라도 준비가 가능한가요? 

▶응.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 고시원 간 사람 없고. 또 요즘은 인터넷 강의도 잘 되어 있어서 잘만 이용하면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고. 전국에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결국 다 의지의 문제야.

아닙니다...

"편하거나 즐겁지는 않아. 여기는 직장이잖아"


▷사람들이 형 엄청 부러워 하죠? 

▶응. 근데 사실 나는 그냥 그래. 


▷기만자... 

▶아냐 진짜로 (....)


▷다 가졌으면서, 뭐가 그렇게 불만족스럽죠...? 

▶이건 내가 기회만 있으면 하는 말인데,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까 좀 더 말해볼게. 진짜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너, 공무원 월급이 얼마일 것 같아? 


▷음...최소 180? 

▶1호봉 기준으로, 세금 다 내고 딱 150 받는다. 


▷어, 생각보다는 적은... 

▶물론 안정성이나 미래를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어. 한 10년뒤면 보상받겠지. 무슨 말이냐면, 그 전 까지는 한달 꽉 채워서 일하는 알바랑 비슷한 수준이라는거야. 


▷그래도..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좋잖아요. 무조건 칼퇴근이고. 

▶응. 10년 뒤에는 그럴 수 있겠다(웃음) 나 이번 달 내내 9시 퇴근했어.


▷하긴, 요즘 저녁약속에도 잘 안 나오시고.. 

▶할 일이 많아. 배울 일도 많고. 물론, 징징거리는 말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안정된 미래가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걸 상상조차 하지 않고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참고로, 내 동기 중 5명이 벌써 그만뒀다? 


▷공무원 합격을 하고서? 

▶응. 합격하고 30% 정도가 첫 해에 그만둬. 공무원도 일하는 '직업'이잖아. 그런데 무슨 시험만 합격하면 평생 놀 것 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 

▶고용이 불안정하니까 안정적인 직업을 갖자. 뭐 이런 게 많으니까 실망도 큰 거야. 근데 젊은 공무원들은 그런 위협이 닥쳤을 때 “내가 그 때 못 해본 걸 해봤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꿈을 바꿀까?" 막 그런 고민을 많이 해. 


▷그럼 다시 사기업을 준비하는 건가요? 

▶아니, 직렬을 바꾸는 사람이 무지 많아.또 공무원은 포기를 못하는 거야. 


▷다시 공무원.. 

▶그래서 내가 자꾸 말하는거야. 철밥통, 칼퇴... 뭐 이런 것들만 대해 기대고 시험 준비한다면 다시 생각해야 해. 진짜로.

이것이 다가 아니라고!

나에게 있어서 '공무원'이란 것은 그래도 뭐랄까,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지도 모를 맘 편한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맘 편한 직업 따위는 없었고, 공무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무원이나 준비하겠다고 외쳤던 술자리에서의 외침들이 생각났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형은 술도 마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형의 지친 표정을 보니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다만, 힘을 내라고 조용히 응원하는 수 밖에. 

이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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