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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씨, 법륜스님? 형들이 왜 거기서 나와..?

아니 이게 언제적 멘토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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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형은 또 왜 거기서 나와...?

출처2017청춘콘서트

당신이 SNS를 즐겨 한다면 근래 <청춘콘서트>를 홍보하고 다니는 배우 조인성을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영상 속 조인성의 훈훈한 미소를 보며 잠시 가슴이 따뜻해졌을지도 모르겠다만 이 <청춘콘서트>엔 사실 우리가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스님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청콘’의 게스트 법륜스님과 그의 벗 김제동씨다. 지난 6년간 전국 총 20만 명의 청년들과 함께했다는 이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청년 행사엔 왜 항상 스님(과 김제동)이 나오는가? 왜 스님(과 김제동)이 나올 수밖에 없는가? 대체 왜 스님이 거기서 나오는 것인가? 


20만 청년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청춘박사 법박사 법륜스님과 그의 오랜 벗 김제동씨는 과연 명성에 걸맞은 이 시대 청년들의 베스트프랜드인 것일까? 일단 내 친구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문제의 포스터

출처2017청춘콘서트

법륜스님과 김제동은 시청 광장에, 청년들은 시청 뒷길로?


<청춘콘서트>의 포스터가 페이스북에 공개된 이후 내 타임라인 한 편에선 본의 아니게 법륜스님의 멘티가 돼버린 억울한 청년들이 화를 내고 있다. 청년활동이 핵심인 <청년주간>에 <청춘콘서트>가 메인 이벤트로 들어오면서 생긴 파렴치한 상황 때문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기 위해 잠시 개념들을 정리해 보자. <청년주간>과 <청춘콘서트>는 같은 ‘청년행사’지만 그 본질이 매우 다르다. 


<청년주간>은 여러 분야의 청년단체, 청년활동가 혹은 연구자들이 주체다. 그들이 토론하고 발표하고 정책까지 기획하고 아무튼 여러 가지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행사다. <청춘콘서트>는 우리 법륜스님을 포함한 유명 연사들의 강연과, 포스터에 따르면 기대해도 좋은 가을밤의 공연으로 이루어진 콘서트 형식 행사다.

두 포스터의 온도차가 보이는가.

출처2017청년주간, 2017청춘콘서트

며칠간 열리는 <청년주간> 속에 <청춘콘서트>가 메인 이벤트인 양 들어앉았고 그 결과는 뻔한다. 덕망 높고 인기 많은 법륜스님과 김제동, 조인성의 청춘콘서트는 시청 메인 광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반면, 정작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청년들의 활동은 시청 뒷길의 서브 이벤트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법륜스님과 김제동씨가 대표하는 ‘네임드 멘토’를 꼬집기 위해 스님을 특히 걸고넘어졌는데, 불교를 혐오하거나 스님들을 조롱하고 싶어서는 아니란 걸 말해둔다. 다만 번뇌와 방황을 이겨내고 자기수양을 이룩하는 그 이미지. 그게 <청춘콘서트>와 청년 ‘멘토링’이 가진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는 개인적인 생각 때문이다. 

출처tvN

우리 모두의 흑역사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프면 환자지 X새끼야라는 유명한 격언을 낳고 우리 곁에서 사라진 지가 벌써 몇 년이다. 헌데 2017년에 전국의 수많은 청년을 모아놓고 한다는 말이 ‘방황해도 괜찮아’ ‘너희들의 삶과 꿈을 응원한다’ ‘너희들은 새 시대를 열어가는 청춘이다’ 라니. (해당 대사는 실제 강연 제목을 참고한 결과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란 말인가.

출처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힐링도 공감도 고리타분해요


지난 몇 년간 청년멘토로 대활약하고 계신 법륜스님과 김제동씨. 딱히 사업 비밀은 아니겠지만 ‘멘토’로서 대박을 때린 그 둘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힐링과 공감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나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싫다. 힘내라는 말에 기운이 빠질 때가 있다면 바로 그들이 힘내라고 할 때며 공감이라는 말이 공허해 보일 때가 있다면 바로 그들이 청춘과의 공감을 이야기할 때다.

두 사람의 '힐링'이란...

출처2017청춘콘서트

힐링은 지금의 나쁜 상태를 나아지게 하는 것이 힐링이고 공감은 상대방의 정체성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라도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체불된 알바 임금을 받아내거나 주거복지로 월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힐링이며 여성은 왜 취업이 더 힘든 건지 고등학교를 안 나오면 왜 삶이 더 고달파야 하는 건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게 공감이다.


그리고 그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법륜스님이나 김제동이나 조인성이 아니라 청년들 자신이다. ‘청콘’의 또 다른 게스트 박원순 서울 시장을 비롯해 청춘에 관심이 많은 다른 기성세대들이 할 건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정책적 해결점을 타협하는 것이지 그들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므로 내면의 행복이나 여유나 사랑 따위의 말로 상대를 보듬는 힐링은 자신들끼리 즐기길 바란다.

스님이랑 김제동은 필요 없어요


청년들을 위해 쓰였다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작품이 정작 그 청년들이 딛고 선 현실에 대해 어떤 고찰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상대방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토대로 이루어질 때 일어나는 비슷한 비극을 우리는 법륜스님에게서도 본 적이 있다. 


가령 법륜스님은 자신의 강연에서 남편의 폭력을 토로하는 부인에게 “웃으며 넘겨라” “문화라고 여겨라”는 등 기이한 해법을 전하거나, 여성은 가정에서 ‘엄마와 요부와 유모와 파출부의 역할을 골고루 잘 수행’해야 한다는 식의 성차별적 카드뉴스를 배포한 적이 있다. 만인의 행복을 바란다는 스님의 종교적 선의가 허울 좋은 공감을 만나면 어떻게 폭력이 되는지를 보여준 아주 모범적인 사례다.

문제의 카드뉴스.

출처법륜스님 페이스북

당사자를 뒷전에 밀어놓고 자신만의 선의를 설파한다는 점에서 ‘청년을 위한 <청춘콘서트>’도 ‘여성을 위한 법륜스님의 망언’과 같아 보인다. 아니 사실 이 콘서트뿐 아니라 청년문제를 걱정한다는 기성세대의 시각 자체가 대체로 그러하다.


선의를 가진 여러 멘토들의 좋은 말씀 대잔치. 그 의도는 감사히 받겠다만 1년 2년 방황하면 잃을 게 너무 많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방황해도 괜찮다는 말 같은 건 좀 넣어두셨으면 좋겠다. 


겪을 거 다 겪고 성공을 이룩한 선생님의 입장에서 청년들을 보듬어 보겠다는 구도는 너무나 고리타분하다. 고리타분하다는 고리타분한 표현밖에는 그 고리타분을 얘기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고리타분하다. 그건 공감이 아니고, 청년 자신이 주체가 되는 행사를 줄여가면서까지 시청광장에 올릴 가치 있는 행사는 더더욱 아니다. 


차라리 지나가는 청년들을 붙잡아 광장에 올리고 오늘 하루 어땠냐며 불행배틀을 붙여보는 건 어떨까. “김제동 어록”이나 “법륜스님 명언” 같은 건 못 보겠지만 아무 청년들의 아무말쇼가 지금의 이 환상의 스님(과 김제동)쇼보단 가치 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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