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씨, 법륜스님? 형들이 왜 거기서 나와..?

조회수 2017. 11. 1. 14: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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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언제적 멘토질이야..?
출처: 2017청춘콘서트
아니 형은 또 왜 거기서 나와...?

당신이 SNS를 즐겨 한다면 근래 <청춘콘서트>를 홍보하고 다니는 배우 조인성을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영상 속 조인성의 훈훈한 미소를 보며 잠시 가슴이 따뜻해졌을지도 모르겠다만 이 <청춘콘서트>엔 사실 우리가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스님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청콘’의 게스트 법륜스님과 그의 벗 김제동씨다. 지난 6년간 전국 총 20만 명의 청년들과 함께했다는 이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청년 행사엔 왜 항상 스님(과 김제동)이 나오는가? 왜 스님(과 김제동)이 나올 수밖에 없는가? 대체 왜 스님이 거기서 나오는 것인가? 


20만 청년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청춘박사 법박사 법륜스님과 그의 오랜 벗 김제동씨는 과연 명성에 걸맞은 이 시대 청년들의 베스트프랜드인 것일까? 일단 내 친구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출처: 2017청춘콘서트
문제의 포스터

법륜스님과 김제동은 시청 광장에, 청년들은 시청 뒷길로?


<청춘콘서트>의 포스터가 페이스북에 공개된 이후 내 타임라인 한 편에선 본의 아니게 법륜스님의 멘티가 돼버린 억울한 청년들이 화를 내고 있다. 청년활동이 핵심인 <청년주간>에 <청춘콘서트>가 메인 이벤트로 들어오면서 생긴 파렴치한 상황 때문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기 위해 잠시 개념들을 정리해 보자. <청년주간>과 <청춘콘서트>는 같은 ‘청년행사’지만 그 본질이 매우 다르다. 


<청년주간>은 여러 분야의 청년단체, 청년활동가 혹은 연구자들이 주체다. 그들이 토론하고 발표하고 정책까지 기획하고 아무튼 여러 가지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행사다. <청춘콘서트>는 우리 법륜스님을 포함한 유명 연사들의 강연과, 포스터에 따르면 기대해도 좋은 가을밤의 공연으로 이루어진 콘서트 형식 행사다.

출처: 2017청년주간, 2017청춘콘서트
두 포스터의 온도차가 보이는가.

며칠간 열리는 <청년주간> 속에 <청춘콘서트>가 메인 이벤트인 양 들어앉았고 그 결과는 뻔한다. 덕망 높고 인기 많은 법륜스님과 김제동, 조인성의 청춘콘서트는 시청 메인 광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반면, 정작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청년들의 활동은 시청 뒷길의 서브 이벤트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법륜스님과 김제동씨가 대표하는 ‘네임드 멘토’를 꼬집기 위해 스님을 특히 걸고넘어졌는데, 불교를 혐오하거나 스님들을 조롱하고 싶어서는 아니란 걸 말해둔다. 다만 번뇌와 방황을 이겨내고 자기수양을 이룩하는 그 이미지. 그게 <청춘콘서트>와 청년 ‘멘토링’이 가진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는 개인적인 생각 때문이다. 

출처: tvN

우리 모두의 흑역사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프면 환자지 X새끼야라는 유명한 격언을 낳고 우리 곁에서 사라진 지가 벌써 몇 년이다. 헌데 2017년에 전국의 수많은 청년을 모아놓고 한다는 말이 ‘방황해도 괜찮아’ ‘너희들의 삶과 꿈을 응원한다’ ‘너희들은 새 시대를 열어가는 청춘이다’ 라니. (해당 대사는 실제 강연 제목을 참고한 결과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란 말인가.

출처: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힐링도 공감도 고리타분해요


지난 몇 년간 청년멘토로 대활약하고 계신 법륜스님과 김제동씨. 딱히 사업 비밀은 아니겠지만 ‘멘토’로서 대박을 때린 그 둘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힐링과 공감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나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싫다. 힘내라는 말에 기운이 빠질 때가 있다면 바로 그들이 힘내라고 할 때며 공감이라는 말이 공허해 보일 때가 있다면 바로 그들이 청춘과의 공감을 이야기할 때다.

출처: 2017청춘콘서트
두 사람의 '힐링'이란...

힐링은 지금의 나쁜 상태를 나아지게 하는 것이 힐링이고 공감은 상대방의 정체성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라도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체불된 알바 임금을 받아내거나 주거복지로 월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힐링이며 여성은 왜 취업이 더 힘든 건지 고등학교를 안 나오면 왜 삶이 더 고달파야 하는 건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게 공감이다.


그리고 그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법륜스님이나 김제동이나 조인성이 아니라 청년들 자신이다. ‘청콘’의 또 다른 게스트 박원순 서울 시장을 비롯해 청춘에 관심이 많은 다른 기성세대들이 할 건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정책적 해결점을 타협하는 것이지 그들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므로 내면의 행복이나 여유나 사랑 따위의 말로 상대를 보듬는 힐링은 자신들끼리 즐기길 바란다.

스님이랑 김제동은 필요 없어요


청년들을 위해 쓰였다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작품이 정작 그 청년들이 딛고 선 현실에 대해 어떤 고찰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상대방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토대로 이루어질 때 일어나는 비슷한 비극을 우리는 법륜스님에게서도 본 적이 있다. 


가령 법륜스님은 자신의 강연에서 남편의 폭력을 토로하는 부인에게 “웃으며 넘겨라” “문화라고 여겨라”는 등 기이한 해법을 전하거나, 여성은 가정에서 ‘엄마와 요부와 유모와 파출부의 역할을 골고루 잘 수행’해야 한다는 식의 성차별적 카드뉴스를 배포한 적이 있다. 만인의 행복을 바란다는 스님의 종교적 선의가 허울 좋은 공감을 만나면 어떻게 폭력이 되는지를 보여준 아주 모범적인 사례다.

출처: 법륜스님 페이스북
문제의 카드뉴스.

당사자를 뒷전에 밀어놓고 자신만의 선의를 설파한다는 점에서 ‘청년을 위한 <청춘콘서트>’도 ‘여성을 위한 법륜스님의 망언’과 같아 보인다. 아니 사실 이 콘서트뿐 아니라 청년문제를 걱정한다는 기성세대의 시각 자체가 대체로 그러하다.


선의를 가진 여러 멘토들의 좋은 말씀 대잔치. 그 의도는 감사히 받겠다만 1년 2년 방황하면 잃을 게 너무 많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방황해도 괜찮다는 말 같은 건 좀 넣어두셨으면 좋겠다. 


겪을 거 다 겪고 성공을 이룩한 선생님의 입장에서 청년들을 보듬어 보겠다는 구도는 너무나 고리타분하다. 고리타분하다는 고리타분한 표현밖에는 그 고리타분을 얘기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고리타분하다. 그건 공감이 아니고, 청년 자신이 주체가 되는 행사를 줄여가면서까지 시청광장에 올릴 가치 있는 행사는 더더욱 아니다. 


차라리 지나가는 청년들을 붙잡아 광장에 올리고 오늘 하루 어땠냐며 불행배틀을 붙여보는 건 어떨까. “김제동 어록”이나 “법륜스님 명언” 같은 건 못 보겠지만 아무 청년들의 아무말쇼가 지금의 이 환상의 스님(과 김제동)쇼보단 가치 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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