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커플을 위한 1박 2일 김재규 나들이 코스

조회수 2017. 10. 26. 17: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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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도 좀 대국적으로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직썰 애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커플천국 솔로지옥 2017년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들 연말 데이트 준비 때문에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닌 시기죠. 그런데 올해는 유독 그 시름이 더 깊어진다고 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나라가 이 모양인데 어디 놀러 갈 맘이 들겠습니까. 어디로 갈지는커녕 이 시국에 나가 놀아도 되는지 걱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ㅠㅠ)


그래서 직썰이 준비했습니다. 나라 걱정과 불꽃 같은 데이트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본격 – 애국커플을 위한 1박 2일 김재규 나들이 코스].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 캐롤 대신 ‘박근혜 하야송’이 울려퍼지는 탓에 마음껏 데이트하기도 눈치 보이는 요즘, ‘김재규 나들이 코스’로 나라 걱정과 연애사업을 한 번에 해결하세요! 꺄륵~ 


김재규 장군,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 ㄱㄱㄱ~


(1일차) 1. 김재규 장군의 생가 


첫 장소는 바로 김재규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구미시 선산읍에 위치해 있는데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곳이죠? 맞습니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죠. 둘은 고향 선후배였다고 합니다.

사진만 봐도 데이트를 대국적으로 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지 않습니까?

참고로 근처에 작은 공원도 하나 있는데요,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혹시나 싶어 제가 근처 어르신께 이곳이 김재규 장군의 생가가 맞는지 여쭤봤는데요. 


답은 안 해 주시고 굉장히 안 좋은 표정으로 뒤돌아 가셨습니다. 분위기만 봐선 나라가 이 꼴이라 망정이지 평소 같았으면 한 대 맞았을 것 같더라고요. 애국커플 여러분은 그냥 조용히 감상만 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

2. 김재규 장군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정미소


김재규 장군의 아버님은 과거 선산면 일대에서 정미소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당시 정미소를 운영한다는 건 상당한 부와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뜻이죠. 그 덕에 김재규 장군은 어린 시절을 굉장히 유복하게 보냈다고 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골목대장 노릇도 했더랬죠. 예나 지금이나 돈 많은 놈이 짱 먹는 건 그게 바로 펄펙 그게 바로 인생의 진리인 것 같습니다.

시장의 흔한 풍경.

만약, 타 광역권에서 출발하셨다면 여기에 도착하실 때쯤엔 배가 고프실 거예요. 선산읍 시장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면 35년 전통을 자랑하는 ‘5.16식당’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밥 값은 1인 기준 6,0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니 이곳에서 부담 없이 끼니를 해결하세요. 사장님 음식 솜씨도 뛰어나서 맛도 대박입니다.(레알임)

구국의 밥맛을 느껴 봅시다.


3. 김재규 장군의 출신 초등학교 – 선산초등학교 


시장 근처 약 1분 거리에 선산초등학교(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가 있는데요, 이곳도 꼭 들러보셔야 합니다. 여기가 바로 김재규 장군이 나온 초등학교거든요.

우리 장군님의 꿈은 참 크셨죠. 생각도 깊으셨고요. 행실도 바르...


참, 김재규 장군은 어린 시절 공부를 참 못했다고 합니다. 등수가 한참 뒤에서 놀았다고 하네요. 그런데도 그렇게 고위직까지 올라가서 혁명 업적(?)을 이룩한 걸 보면 역시 인생이란 건 학교 성적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닌 듯합니다. 


지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서 검찰에 협조적인 인물로 급 스타가 된 장시호 씨의 경우만 봐도 그렇죠. 성적이 가가가 페스티발이었어도 한 일가의 브레인이 되어 나라를 말아먹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했나요. 모르긴 몰라도 이번 사건이 우리 자라나는 대한민국 꿈나무들에게 큰 희망을 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여러분, 큰사람이 되는 건 성적순이 아니랍니다.

근처 문방구에서 추억의 쫀드기도 사 먹을 수 있음.

4. 구미, 하면 빠질 수 없는 그곳 :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사실 구미는 김재규 장군보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훨씬 더 유명한 곳입니다. 


오늘의 나들이 주제와는 다르지만, 멀리서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도 돌아보지 않고 가기엔 너무 아쉽겠죠? 그런데 저희가 방문하기 며칠 전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불에 홀라당 타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내부 보수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더라고요. 큽.

곳곳에서 새마을운동 OST가 메들리로 터져 나옵니다.
인생에 고통이 부족하신 분들을 위한 보릿고개체험장도 마련돼 있습니다. 막걸리 하나랑 두부, 고구마 고작 요런 거만 주는데 가격은 10,000원밖에 안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민족중흥관은 정상 운영되고 있었죠. 덕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을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찬란한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면서 사스가 지금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해 주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면 혹시라도 감상 중 김재규 관련해서 언급하는 건 절대 금물입니다. 제가 찾아갔을 당시 화재 소식을 듣고 몰려온 방문객들 다수가 있었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말 한번 잘못하면 뼛속까지 털릴 기세였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참, 떠나기 전에 추모의 한 말씀 올리는 것 잊으면 안 되는 거 아시죠? Feat. 근혜에게 힘을 주소서…(저희가 쓴 거 아닙니다)

5. 김재규 장군, 한때는 교육자였습니다! – 대륜 중학교


이제 구미를 벗어나 대구로 이동해 볼까요? 이곳엔 김재규 장군이 과거 체육교사로 일했던 대륜중학교(대구 수성구)가 있습니다. 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명문인데요, 그에 걸맞게 학교 규모도 엄청납니다. 중∙고등학교가 한 곳에 모여 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첨에 방문했을 때 대학 캠퍼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장군님은 스스로에게 솔직하셨죠. 남을 사랑하기도 하셨구요. (한 분 빼고)
운동장 클라스…

김재규 장군은 3단 멀리뛰기와 장대높이뛰기를 그렇게 잘했다고 하네요. 애국커플 여러분도 여기서 한 번 체험해 보길 추천 드립니다. 바닥이 푹신푹신해서 엄청 잘 뛰어집니다. 장대높이뛰기는 못 해 봤는데, 여러분께도 추천 드리지 않아요. 괜히 장대 구하다가 경비원이 와서 왜 그걸 찾냐고 물었을 때 사실대로 답하면 장대로 먼지 나게 맞을 수 있으니까요.

6. 김재규 장군, 자살특공대가 될 뻔했다? – 안동농림학교


사실 대륜중학교보다 먼저 찾아가려 했던 곳이 있습니다. 안성에 위치한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경북 안동시 옥동)인데요, 당시 안동농림학교로 이곳이 바로 김재규 장군의 출신 중등학교입니다. 


거리가 먼 관계로 일정상 후순위로 밀렸죠. 그래서 도착하고 보니 완전 한밤중이더라고요.(ㅠㅠ) 학교 경관이 장관이라는 소릴 듣고 찾았는데 아쉽게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임…

여하튼, 여기가 바로 김재규 장군이 나온 중등학교입니다. 김 장군은 4학년 때 일본의 요카이치 항공병학교 특별간부후보생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거기가 어디냐고요? 가미카제, 그러니까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의 광기(라 쓰고 똘끼라 읽는)를 전세계에 알린 자살특공대를 양성하던 곳입니다. 물론, 다행히 출동하기 전에 조국이 해방돼 한국으로 돌아왔죠.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새마을깃발.

만약 그때 김재규 장군이 일본군으로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면 어땠을까요? 대한민국의 미래가 한참 달라졌겠죠?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었습니다. ^^


이렇게 김재규 장군이 군인이 되기 이전의 삶을 1일차 일정을 통해 돌아보았습니다. 2일차 일정에선 본격적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김재규 장군의 삶을 살펴볼 예정인데요, 대부분 서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언제든 하루 날 잡아 가볍게 돌아보기 무척 편하실 겁니다. 그럼 ㄱㄱㄱ

(2일차) 1. 김재규 장군의 야망을 좇아서 – 육군사관학교


둘째 날, 날이 밝자마자 육군사관학교(서울시 노원구 공릉동)로 이동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김재규 장군이 애국군인의 꿈을 품고 출사표를 던졌던 곳이죠. 육군사관학교는 뭐 지금도 워낙 유명해서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참고로 김재규 장군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사 2기로 동기입니다. 둘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이죠.

쭉~ 따라가다 보면 육군사관학교 정문이 나옵니다. ㅎㅎ
멈추라는 데서 딱 멈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때는 먹을 게 엄청 부족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한 나라의 장교를 양성하는 이곳에서도 식량 공급이 여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김 장군은 한 끼에 고구마 2개씩만을 먹으며 훈련에 임했다고 하네요. 얼마나 힘들고 배고프셨을까요? 마침 챙겨간 말린 고구마가 있어서 저희도 그 앞에서 시식해 봤습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때 그분의 심정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냠냠 쩝쩝.

2. 김재규 장군, 기업도 운영해 봤어? – 호남비료


김 장군은 육사 졸업 이후 승승장구합니다. 포르쉐 타고 북악스카이웨이 코너링 돌 듯 준장까지 아주 스무스하게 올라갔죠. 그런데, 그런 분께서 5.16 쿠데타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군인이 정권을 잡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네요.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데타는 성공하죠.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자마자 실행에 옮긴 게 있었으니.. 바로 ‘혁명’에 동참하지 않은 장성들을 싸그리 잡아다가 혁명군사령부로 연행시킨 거였습니다. 김재규 장군도 당연히 잡혀 갔죠. 하지만, 김재규가 누굽니까. 사스가 김 장군은 5.16 쿠데타에 참여만 안 했을 뿐 딱히 꼬투리 잡힐 만한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없었어요. 그래서 곧장 풀려난 후 호남비료 사장으로 임명됩니다! 그 뒤 1년 동안 운영하죠.

출처: 동아일보
1961년 12월, 나주 호남비료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과 김재규 당시 호남비료 사장(오른쪽).
출처: LG
호남비료는 굴곡의 세월을 거쳐 지금의 LG화학 나주공장으로 변모했습니다. 거리가 넘나 멀어서 못 감.

하지만, 뼛속까지 군인인 김재규 장군이 기업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적지 않았는데요, 역시나 김 장군은 대쪽 같은 자세로 호남비료 공장 공사기간을 1년이나 단축시키는 클라스를 보여 줍니다. (물론, 작업자들 더 빡세게 갈아 넣어서 그런 거겠지만) 그리고 그 덕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었죠. 아마 이때부터 일단 하기로 마음 먹으면 일 처리는 확실하게 단도리쳐야 한다는 걸 배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

3. 김재규 장군도 사랑을 했다 – 북한산 선운각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이미지지만, 누구나 가슴 속에 삼천만 원쯤은 있듯 김재규 장군도 불꽃 같은 열정으로 연애를 했습니다. 지금의 북한산국립공원 선운각(서울시 강북구 우이동)은 사실 김재규 장군의 내연녀 장 모 씨가 운영하던 한정식(이라 쓰고 고급 요정이라 읽는다) 집이었습니다. 


틈만 나면 방문할 정도로 즐겨 찾았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종교단체가 청소년 선교시설로 쓰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도 원형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터라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당시 1초라도 빨리 애인을 보기 위해 헐레벌떡 발길을 재촉하던 김재규 장군의 설렘을 느껴볼 수 있어요.

김재규 장군만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도 즐겨 찾던 곳이라 하네요.
정부 고위공직자의 내연녀라는 이유만으로 이 정도 규모의 한정식집을 운영할 수 있다니… 정말 할렐루야네요.

참고로 당시 김재규 장군님은 간경변(간이 굳어지는 현상)을 앓고 계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극심한 발기부전에 시달리기도 하셨다는데요, 어쩌면 우리 생각과 달리 이 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살아계셨다면 청와대에서 구입한 고산병 치료제 비아그라라도 한 정 드실 수 있었을 텐데요. 여러모로 씁쓸함이 가시지 않네요.

4. 김재규 장군, 결전의 장소 – 궁정동 안가


드디어 이곳입니다. 김재규 나들이코스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곳! 아마 사진으로 많이 접해 보셨을 겁니다. 김재규 장군이 포박당한 채 맞은편 남자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장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총탄을 날리는 현장검증 사진인데요,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궁정동 안가였습니다.

식탁에 시바스리갈이 놓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날 술자리가 굉장히 대국적으로 이뤄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궁정동 안가는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그 터엔 무궁화동산(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이 자리잡았죠. 어르신들이 운동 삼아 들르기에 딱 좋은 작은 공원입니다. 벤치나 간단한 운동기구가 곳곳에 마련돼 있으니 잠시 쉬어가셔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유의하실 게 있습니다. 저곳에 가려면 삼엄한 경비라인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죠. 아무래도 청와대 근처다 보니 쉽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중국인 관광객은 아무나 다 들어가서 사진 찍고 놀던데 이상하게 한국인은 쉽게 들여보내 주질 않습니다. 참고로 저희는 바리게이트를 지키는 경찰분한테 소지품 검사도 받았는데요, 학생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는 케이스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네요. 조금 불쾌할 순 있겠지만, 그럴 땐 조용히 가방을 꺼내 주시면 되겠습니다.


경찰이 행선지를 묻기도 하는데요, 그냥 무궁화동산에 간다고 하시면 됩니다. 혹시 가는 이유를 묻거든 그냥 산책 삼아 들렀다고 하세요. 괜히 깝친다고 김재규니 뭐니 말 꺼냈다간 무궁화동산이고 나발이고 그날 집에는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해야 될지 모르니까요.

5. 김재규 장군, 권력의 중심에 서다 –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사실 이곳은 마지막까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곳이에요. 이유는 모두 알 거라고 생각해요. 솔까 개무섭... 하지만, 김재규 장군이 거사 직전까지 수장으로 몸 담고 계셨던 곳인 만큼 그냥 지나칠 순 없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 가 봤습니다. 


근데 인증샷은 없습니다. 왜냐면 멀리서 인증샷 찍는데 왠 선글라스 낀 분이 막 달려오시더니 방금 찍은 사진 지우라고 해서요. 군말 않고 지웠습니다. ^^. 그래도 자존심이 좀 상해서 인사할 때 평소보다 조금 덜 수그렸어요. (제가 이김) 솔직히 몰래 한 장 남겨두긴 했는데 차마 못 올리겠네요. 그리고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 되니 가급적 빨리 자리를 뜨는 걸 추천 드립니다. 


참, 마침 옆에 헌인릉이 있는데요 여기는 찍어도 상관 없답니다. 그래서 한 장 찍어 봤습니다. 나무들 사이로 무슨 건물 비스무리한 게 보이는 건 착시입니다.

조선왕릉만 확인하고 갑시다.

6. 김재규 장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다 – 서울구치소


다음 장소는 서울구치소, 지금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입니다. 이동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죠. 여기가 바로 김재규 장군이 거사를 치른 후 사형을 선고 받고, 집행이 된 그 장소였습니다.

김재규 장군은 마지막 순간까지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형집행일 이틀 전, 김재규 장군의 어머니가 찾아와 “국부를 죽인 자가 살기를 원하느냐. 마음을 닦아라.”라고 말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어머니께 큰절 3번을 올렸다고 하네요. 사형집행 당시 사진을 보면 김재규 장군이 염주를 손에 쥐고 죽어서도 놓지 않는 걸 볼 수 있는데요, 당시 어머니가 ‘맘 편히 죽으라’면서 건넨 염주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은 김재규 장군이 사형을 당한 곳 이전에 일제강점기,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치신 애국지사분들의 눈물과 피가 서린 곳입니다. 김재규 나들이도 좋지만, 여기에선 숭고한 희생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룩해 주신 선열들께 감사한 마음을 표하는 시간을 보내 봅시다!


7. 일정이 끝난 뒤


ㅈ ㅏ ~ 이렇게 1박 2일 동안 가볍게(?) 김재규 나들이 코스를 돌아봤는데요, 어떠셨나요? 왠지 마음속에서 혁명의 기운 비스무리한 무엇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지 않나요?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기운이 오실 겁니다. 보람찬 데이트였죠. 


하지만 명색이 애국커플인데, 막상 이렇게 데이트를 끝내면 아쉽죠. 빠듯하게 돌아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을 테니, 간단한 뒤풀이로 여운을 풀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래서 저희는 근처 노래방을 찾았습니다. 김재규 장군이 살아생전 즐겨 부르던 고복수의 <짝사랑>도 함께 불러 봤어요. 듣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이 노래가 18번이었다고 합니다. 둘은 참 닮은 구석이 많죠? 암튼 그 탓에 둘이 같이 노래를 부를 땐 김 장군이 박 전 대통령에게 이 노래를 양보했다고 하네요. 부모님한테도 안 뺏긴다는 18번을 양보하다니, 그분의 충성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웃고 있는 듯한 건 기분 탓입니다.
간단한 뒤풀이도 했습니다. ^^

이제, 각설하고(정색)


김재규, 그는 누구일까요. 권력에 눈이 멀어 국가 원수를 살해한 반역자? 아니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제 한몸을 기꺼이 희생한 열사?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1980년 당시 전두환 군부는 김재규를 '아버지와 같은 상관을 살해한 패륜아'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평가가 지금껏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죠. 하지만 최근 들어선 김재규 장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모든 일정을 마친 다음 날, 저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김재규 장군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산 꼭대기에 자리한 터라 찾아가기가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20여 분 동안 가파른 등산로를 오른 끝에 마주한 김재규 장군의 묘소는 지금의 엇갈리는 평가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습니다.

훼손된 추모비 옆에 노란 리본이 붙어 있다.
추모객이 붙이고 간 포스트잇.

김재규 장군의 사형집행일 하루 전인 1980년 5월 23일, 그는 교도소 관계자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오늘 얘기는 이 세상에서 내가 남기는 마지막 말이 될 것 같군. 잘 녹음했다가 역사에 전해주면 고맙겠소." 


유언을 남긴 겁니다. 당시 사형집행일은 교도소 핵심관계자들이 아니고선 알 수 없었습니다. 고인은 당장 다음 날 자신이 죽을 것을 직감했던 걸까요. 그날 김재규 장군이 교도소 직원에게 남긴 ‘유언’은 오늘날 두고두고 회자되기에 이릅니다. 아주 장황한 내용이었지만, 사실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물론, 김재규 장군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가 한 말이 모두 진의를 담아 한 얘기라고 확신할 수도 없고 말이죠.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치른 ‘거사’ 덕에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로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었다는 사실이죠. 지금 그가 재평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만 봐도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김재규 장군 역시 유언을 통해 자신은 ‘제4심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제1심, 2심, 3심은 사형으로 판결이 나 비록 이렇게 죽어 없어지지만, 제4심인 하늘의 심판은 그렇지 않을 거란 얘기였죠. 시간이 흘러 후세가 그리고 역사가 자신을 다시 심판해 줄 거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에서 당당히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하기까지 했죠.  

“나는 금번 1심, 2심, 3심, 즉 보통군법회의, 고등군법회의, 대법원 재판까지 3심까지를 거칠 예정이었는데 난 또 한 차례의 재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은 뭐냐하면 제4심인데, 제4심은 바로 하늘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호사도 필요 없고 판사도 필요 없어요. 사람이 하는 재판은 오판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늘이 하는 재판은 절대 오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그러한 재판만이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명확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의 심판인 제4심에서 나는 이미 이겼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목격했던 민주혁명은 완전히 성공을 했다, 그렇게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회복이 되고 그것이 보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들 이렇게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김재규 유언 중. 1980. 5. 23. 


산 정상이라 그런지 이른 아침의 칼바람이 매섭게 불었습니다. 고인의 묘소에 꽃 한 송이 올려두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혹시나 싶어 관리사무소에 들러 관계자분께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김재규 장군 묘소를 종종 찾아오느냐고.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김재규가 그토록 바라던 제4심은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4심의 판결은 어떻게 내려질까요. 그리고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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