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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재산을 주고 싶었던 어머니는 '황혼이혼'을 택했다

조회수 2017. 10. 18.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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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재산 분할을 노렸다

# 1

김점례씨는 70이 넘은 나이에 남편 박춘식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소위 황혼이혼.


황혼이혼은 평생 불만을 느끼고 살아왔지만 자식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어느 일방에 의해서 이혼을 법적으로 청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혼 청구인은 당연히 상대방에 대한 악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김점례씨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출처: JTBC
느닷없는 황혼이혼, 왜?!

# 2

박춘식씨는 경기도 광명 토박이로 예전부터 고물상을 운영했다. 고물(고철) 사업은 큰돈을 벌게 해주지는 못해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게는 해줬다. 춘식씨는 돈이 생길 때마다 인근 땅을 사두었다. 사업이 좀 어려울 때도 있었으나 사 둔 부동산은 절대 팔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광명 지역 개발 붐으로 인해 땅값이 크게 올랐다. 춘식씨는 부동산 컨설팅 회사 도움으로 대출을 받아 주상복합을 건축한 뒤 임대 사업까지 했다. 춘식씨 재산은 어림잡아 30억 원대에 이른다는 소문이다.

# 3

춘식씨 부부는 슬하에 3형제를 뒀다. 큰아들은 중견기업에 다녔고, 둘째는 일찍 서울로 올라가 사업을, 셋째는 부모를 모시며 가업을 이어갔다. 춘식씨는 돈에 대해서 철저했다. 어릴 때부터 아들들을 검소하게 키웠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들들에게 꼭 필요한 지원 외에는 하지 않았다. 부인 점례씨는 둘째가 사업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볼 때마다 목돈을 대 주자고 했다. 하지만 춘식씨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돈이 애들을 버린다고. 그리고 돈을 다 줘봐. 걔들이 우릴 제대로 대접해 줄 것 같아? 뒷방 늙은이 신세 되기 딱 좋지.

춘식씨는 자수성가한 사람이 그러하든 성실이 몸에 뱄고, 운동도 열심히 하며 자신의 건강을 챙겼다.

# 4

사업을 하는 둘째는 항상 사업자금 때문에 돈이 모자랐다. 그동안 둘째는 점례씨를 찾아와서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땅을 일부 정리해서라도 사업자금을 융통해 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하지만 춘식씨 고집을 누가 말리랴.


그런데 중견기업에 다니던 큰아들이 부하 직원의 횡령 사건 때문에 책임을 지고 회사를 사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둘째는 형이 갑자기 회사를 나오게 되자 형을 설득해서 다시 점례씨에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장남에 대한 어머니 점례씨의 마음이 끔찍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새로 어딘가에 취업하는 일은 어려웠기에 안정적인 프랜차이즈 식당을 하나 내려고 하는데 임대료, 시설비, 가맹비, 초도 운영비 등을 고려하면 최소한 2억 원 정도는 필요했다. 


한 달에 몇 번씩 첫째와 둘째는 점례씨를 집 근처 카페로 불러내서 아버지께 자금 융통을 부탁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떤 날은 며느리들도 같이 와서 점례씨에게 매달렸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하고 집안 자랑이었던 장남이 40대 후반에 갑자기 실직자가 되다니.. 점례씨는 마음이 아팠다. 


점례씨는 작심을 하고 남편에게 재산 중 일부를 나눠주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강경했다. 큰아들이 갑자기 어렵게 된 일은 아쉽지만 그동안 충분히 뒷바라지해줬고, 오히려 이런 경험을 통해 더 단단해 질 수 있다나 뭐라나. 점례씨는 한평생 남편에게 큰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속이 상할 대로 상해 남편에게 큰 소리로 대들었다. 그 와중에 남편을 두 손으로 밀쳤다. 화가 난 춘식씨는 점례씨 어깨를 손으로 확 밀쳤는데, 점례씨는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부터 떨어지는 바람에 뇌진탕을 입었다. 급하게 병원에 가서 응급조치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 5

손찌검을 당한 점례씨는 남편이 보기 싫어 큰아들네 집으로 왔다. 같이 살면서 막상 보니 큰아들의 풀 죽은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며느리에게도 눈치가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황혼이혼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됐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70대 사장이 갑자기 어떤 여성에게 빠져버렸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그 여성에게 재산을 모두 뺏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장 부인은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혼소송을 통해 남편 재산의 30% 정도를 재산분할로, 3,000만 원을 위자료로 받게 되었다. 특히 남편 재산 대부분은 회사 주식이었는데, 그 주식 중 재산분할로 받게 된 주식을 장남에게 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남편이 딴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할 수 있었다는 사연이었다.

출처: TV조선

점례씨는 위자료 외에 ‘재산분할’이라는 제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위자료보다는 재산분할 금액이 훨씬 크며, 전업주부라도 남편이 바깥에서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을 준 데 대한 평가를 받아 많으면 남편 재산 50%까지 재산분할로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점례씨는 눈이 번쩍 띄었다. 돈이라는 게 필요할 때 줘야 의미가 있지 때를 놓치면 안 되지 않는가. 그리고 이 나이에 이혼한다고 창피할 것도 마음에 걸릴 것도 없었다. 자식들에게 도움이 된다면야…


점례씨는 며칠을 고민하다 그동안 재산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던 둘째를 불렀다. 이혼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점례씨 말에 둘째의 첫 반응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가 아니라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였다. 둘째는 그 동안 어머니가 너무 힘들게 살아온 건 사실 아닌가. 이제 어머니도 어느 정도 즐기며 살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이 그리 길지도 않은데 라며 점례씨 결정을 지지했다. 둘째는 자기가 형과 동생에게 잘 알아듣게 설명하겠다고도 했다.

# 6

첫째는 처음에는 말리는 듯했지만 어머니를 이해한다면서 이혼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문제는 셋째였다. 지금도 제 아버지와 같이 일을 하는 셋째로서는 난처한 입장이라면서 모른 척하기로 했다. 둘째는 고등학교 선배 중에 이혼 전문 변호사가 있다면서 점례씨를 그 변호사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 후로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점례씨는 둘째 아들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소송을 위해 준비할 사항이 많은데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문제는 이혼 사유였다. 사실 남편이 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 그 외 특별히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지도 않았다. 변호사는 두 아들과 상의한 후 이혼 사유로 ‘남편이 평생 부인을 무시하고 경제권도 독점하며, 인신 모독적인 발언을 하고 최근에 폭행까지 해서 더 이상 혼인을 지속시킬 수 없음’으로 정리했다. 필요한 진술서 등은 아들과 며느리가 준비하기로 했다.

# 7

이혼 소장이 접수되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춘식씨는 둘째 아들 집으로 점례씨를 찾으러 왔다. 점례씨는 여기서 밀리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처구니없어 하는 남편에게 ‘말 함부로 하지 말라. 예전의 내가 아니다’며 공격적으로 나갔다. 이혼소송은 8개월 정도 지속됐다. 춘식씨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응했다. 이 이혼소송은 재산 때문에 자식들 부추김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춘식씨 방어 논리였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점례씨와 두 아들은 일관되게 점례씨 결혼생활이 불행했으며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 것은 점례씨라는 점을 강조했다.


1심 법원은 점례씨 주장을 받아들여 두 사람은 이혼하고, 춘식씨는 점례씨에게 위자료로1,000만 원을, 재산분할로 춘식씨 명의 부동산의 40%를 이전할 것을 명했다. 춘식씨는 항소했지만 항소심도 1심과 같은 결론이었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반 만에 점례씨는 남편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현금과 부동산을 넘겨받았다. 

# 8

점례씨는 자신이 받은 현금과 부동산을 거의 대부분 첫째와 둘째 아들에게 넘겼다. 현금은 바로 넘겼고 부동산은 그 처분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이전했다. 셋째 아들에게도 일부를 주고 싶었으나 셋째는 계속 남편과 일을 하는 상황이라 만약 재산 중 일부를 받은 사실을 남편이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사정이 첫째와 둘째가 급했으므로 일단 그 둘에게 자금지원을 해줬던 것.


첫째 아들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려다 둘째의 권유로 둘째가 이미 봐 두었던 사업에 같이 투자하기로 했다. 점례씨는 두 아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우애가 돈독해지는 것 같아 흐뭇했다.

# 9

둘째가 새롭게 투자하려던 사업은 부동산 시행 쪽이었다. 점례씨로부터 첫째와 둘째가 지원받은 돈은 거의 10억 원에 달했다. 둘은 다른 부동산 시행회사(T사)와 공동투자 방식으로 주상복합 건축 및 분양사업에 지분권자로 참여했다. 사업 규모는 총 50억 원에 달했다. 첫째와 둘째는 5억 원을 추가로 대출까지 받아 사업에 투자했다. 역세권 투자였기에 전망도 괜찮았다.


문제는 해당 부동산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 두 아들은 T사가 책임지고 이 지역 땅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할 거라는 설명을 믿었다. 하지만 워낙 목이 좋은 땅이라 다른 시행사(K사)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해당 지역 지주(地主)들은 시행사 중에 한 푼이라도 더 땅값을 쳐주는 사람에게 소유권을 넘기겠다는 입장이어서 땅값은 처음에 생각했던 수준보다 훨씬 올라갔다.


처음보다 투자 소요금액이 많아지자 T사에 투자하기로 했던 다른 투자자들이 투자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자금이 제대로 수혈되지 못하자 이미 계약을 치른 땅의 중도금, 잔금을 치르지 못하게 되어 T사는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날리는 일이 속출했다. 엉뜽하게도 그 땅은 T사도 K사도 아닌 대기업 산하 개발회사 J사에서 소유권을 확보한 후 계열 시공사와 건축계약을 해버렸다. 점례씨 두 아들이 투자한 T사는 비용만 잔뜩 쓰고 땅 권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오히려 T사는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빚만 지고 말았다. 단 두달 만에 일어난 일이라 시행사업에 경험이 없던 두 아들은 어떻게 할지 몰랐다.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두 아들은 대출금을 갚느라 있던 집을 팔아서 더 좁은 집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두 아들은 점례씨를 서로 상대방 쪽에서 모셔야 한다며 언성이 오갔다. 이를 지켜본 점례씨는 짐을 챙겨 나와 시립요양시설로 들어갔다. 몸도 많이 안 좋아졌다. 


나를 찾아온 셋째 아들 박태원씨는 이런 상황에서 점례씨가 두 아들에게 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문의해왔다. 법적으로야 싸워볼 수는 있겠지만 이미 두 아들이 받은 돈을 다 탕진한 상황에서 어떤 뾰족한 방법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 10

<리어 왕>

‘리어 왕’은 세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로, 1608년에 간행된 총 5막의 희곡이다. 모든 것을 잃고 끔찍한 파국을 맞는 노년의 왕을 통해 진실의 가치를 조명하고 나아가 인간 정체성에 대해 냉혹하게 성찰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령의 리어 왕은 이제 왕권을 이양하고 은퇴하려고 딸들과 사위들을 부른다. 효성이 지극한 딸 순서로 땅과 권력을 나누어 주기로 한 리어 왕은 딸들에게 효성의 말을 듣는다. 


큰딸 거너릴은 형언할 수 있는 모든 말로 아버지 리어 왕을 찬양하여 자신의 몫을 챙긴다. 둘째 딸 리이건도 언니 못지 않은 말로 땅의 일부를 차지한다. 그러나 리어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막내딸 코델리아는 사랑한다는 말만을 하여 리어 왕의 분노를 산다. 정직한 코델리아는 한 푼의 지참금도 받지 못하고 리어 왕으로부터 의절을 당한다. 


코델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프랑스 왕은 코델리아의 나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결혼을 청하여 같이 프랑스로 건너간다. 충신 켄트도 왕에게 직언을 했다가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리어 왕>

거너릴은 리어 왕이 재산을 나눠 준 후에도 계속해서 국정에 간섭하는 것에 대해 심한 불만을 느끼고, 리어 왕이 들어와도 본 척도 하지 않는다. 화가 난 리어 왕은 거너릴을 부르지만 오히려 그녀에게 일격을 당한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리어 왕은 그녀를 저주하고 작은딸을 찾아간다. 둘째 딸 리이건도 거너릴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리어 왕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뒤따라 온 거너릴은 동생과 합세하여 리어 왕을 몰아세우고, 충격을 받은 리어 왕은 폭풍 속으로 말을 내몬다.


폭풍우 속에서 헤매던 리어 왕은 옛 신하 켄트의 인도로 오두막에 들어간다. 광대의 풍자를 듣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리어 왕.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셋째 딸 코델리아는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언니들을 공격하기 위해 쳐들어온다.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코델리아는 리어 왕의 모습에 가슴 아파한다. 


한편 미남 귀족 에드먼드를 두고 거너릴과 리이건, 두 자매가 다툼을 한다. 결국 거너릴의 질투로 리이건은 독살을 당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거너릴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코델리아도 전쟁 와중에 목숨을 잃고 만다. 리어 왕은 딸의 시신을 안고 절규한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리어 왕은 결국 운명하고 만다.

# 11

리어 왕이라는 작품은 딸들의 진심을 제대로 몰라 본 아버지의 어리석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연 말 몇 마디로 효성을 어떻게 측정한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리어 왕의 불행은 자업자득의 측면이 강하다.


그럼 점례씨 경우는 어떤가. 점례씨는 과연 무엇 때문에 이런 불행을 맞아야 했던가.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 원한다. 부모의 가장 약한 고리가 바로 자식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은 다음 행해지는 A/S는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진다는 그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출처: YTN

자녀가 부모에게 잘 할 것을 전제로 부동산을 증여했는데 나중에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 그 증여를 취소하는 소송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국회에서는 소위 이러한 자녀들로부터 손쉽게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불효자방지법’ 입법 논의가 한창이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줘버리고 정작 자신은 바짝 말라가는 점례씨. 결코 딴 세상일이 아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앞으로도 볼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아프다.

* 이 글은 외부 필진 조우성 변호사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조우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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