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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유서 깊은 '명당', 서울시 금천구

조회수 2018. 8. 22. 11: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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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숑의 입지 분석 레시피 #48. 서울에서 가장 시세가 낮은 행정구 중 하나
No.1 부동산 앱 직방이
집 구하는 모든 분에게
유용한 정보를 드리기 위해,
국내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와 함께
‘부동산, 어떻게 살 것인가?’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그 두 번째 시리즈로,
‘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 저자,
16년간 대형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부동산 컨설팅을 해온 컨설턴트,
‘빠숑의 세상 답사기’ 블로그를
운영 중인 파워블로거,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
김학렬 소장과 함께
‘빠숑의 입지 분석 레시피’를
연재합니다.

논리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부동산 입지를 보는 시야를
넓혀드릴 칼럼과 함께
매주 수요일에 찾아가겠습니다.
(편집자 주)
출처: 직방
8월 4주 서울 지역별 직방 시세(평당가) 현황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낮은 지역은 어디일까요? 지난주 칼럼을 통해 소개한 도봉구, 그리고 오늘 말씀드릴 금천구입니다.


아시다시피 금천구 아파트 시세는 인근의 구로구와 관악구에 비해서도 낮고, 심지어 경기도인 광명시, 안양시와 비교해도 낮습니다. 그래서인지 종종 금천구 주민을 만나게 되면 유독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금천구 시흥동의 ‘남서울 힐스테이트’라는 아파트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2010년까지 금천구의 랜드마크 단지는 관악산(삼성산) 호압사 아래에 있는 ‘벽산타운’이었습니다. 벽산타운은 5,000세대가 훨씬 넘는, 서울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단지입니다. 관악산 경사지에 지어져, 평지인 시흥사거리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중세 유럽의 거대한 성벽을 보는 듯 착각할 정도로 멋진 단지입니다.

출처: 직방
남서울 힐스테이트의 직방 거주민 리뷰 평점. 그런데 왜 ‘남서울’일까?

그러나 2011년, 시흥동 한양아파트를 재건축한 ‘남서울 힐스테이트’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금천구의 랜드마크 자리를 물려주게 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아파트 이름을 굳이 ‘남서울’ 힐스테이트라 한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시흥동 힐스테이트’ 내지 ‘금천 힐스테이트’라고 지으면, ‘아 시흥동에 있구나.’, 혹은 ‘금천구에 있구나.’하고 바로 와 닿을 텐데요. 반면, 남서울은 너무 광범위해서 그 단어만으로 정확한 위치를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파트 홍보 측면에서는 불리한 이름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아파트가 ‘금천구 시흥동’에 있다는 것이 드러나길 원치 않았던 것이죠.

지명의 인지도와 부가가치

선거철마다 우리는 지자체장과 국회의원이 그 지역의 부가가치를 높일 여러 공약을 내세우는 모습을 쉽게 접하게 됩니다. 지역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매우 구체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우 추상적이기도 한 일입니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명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인데요. 지명 인지도가 높으면, 지명 그 자체가 영향력을 끼치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는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실천해야 구체적인 결과물로 나타납니다.


가장 쉬운 예로 ‘분당’과 ‘일산’을 들 수 있습니다. ‘난 분당구민이지, 성남시민이 아니야.’, ‘난 일산구민이지, 고양시민이 아니야.’라는 자부심이 지금의 분당과 일산의 이미지와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출처: 직방
'목동' 아파트 8~14단지는 '신정동'에 있다.

목동 아파트 사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4단지까지 있는 목동 아파트 중 8단지~14단지가 사실 행정구역상 목동이 아닌 신정동 지역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그래서 양천구가 신정동의 목동 아파트들을 신정 아파트로 이름을 교체하려 했는데요. 오히려 해당 주민 대다수의 반대와 항의로 엄청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답니다.


양천구 역시 이에 굴하지 않고(?) ‘신목동’이라는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목동이라는 지명 그 자체에 대한 인지도와 부가가치가 강해 채택되지 못했고, 결국 현재도 양천구 신정동이라는 행정구역에 있지만, 명칭은 여전히 ‘목동’으로 남아있습니다.


또 몇 년 전, 번지 주소를 도로명 주소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서초구 반포동 주민 간에 ‘반포로’라는 지명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지명에 대한 인지도와 부가가치가 부동산 자체의 가치와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알고 보면 유서 깊은 명당, ‘금천구’

이런 차원에서 보면 금천구 지역민은 금천이라는 지명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평가를 해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지역주민의 무관심보다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구심점을 찾지 못했던 데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자랑거리가 있어야 자랑을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금천구, 특히 시흥에 자부심을 불어넣어 드리고자 관련된 역사적 사건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행궁’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행궁은 쉽게 풀이하자면 왕의 임시 숙박지입니다. 조선시대의 왕은 그야말로 절대권력자였기 때문에, 왕이 다른 지역으로 외출을 하게 되면 그가 머물 곳은 절대 적당히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숙박이든 잠시 쉬었다 가는 거처이든지 간에 말입니다. 어떤 경우든 사전답사를 통해 왕이 머물 자리를 택했습니다.


왕이 머물 자리를 택하는 작업은 조선시대 6조 기관 중 예조에서 했는데, 왕의 예상 동선을 세밀하게 고려하는 한편, 그중에서도 풍수적으로 좋은 입지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신중하고 까다롭게 선정된 곳이 바로 행궁이란 말씀입니다.

출처: 직방
정조대왕의 화성능행도. 정조는 8일간의 여정 중 이틀을 시흥행궁에 머물렀다고 한다.

행궁으로 가장 유명한 왕은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던 정조대왕이었습니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거의 매년, 능(융능)이 있는 화성으로 행차했습니다. 이런 행차를 그린 행차도를 책이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여러 번 보셨을 텐데요. 정말 굉장히 길었습니다. 그 행차의 길이가 얼마나 긴지, 오전 일찍 출발해도 오후가 다 되어서야 행차의 마지막 인원이 한양을 빠져나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인데요.


실질적으로 조선을 지배하던 사대부 세력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정조대왕은, 일부러 그들이 두려워할 만한 강한 왕권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규모로 행차를 했다고 합니다. 화성까지는 통상 하루를 쉬어서 갔습니다. 지금이야 2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당시 교통수단으로는 반드시 숙박을 해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그때 숙박을 위해 쉬어가던 곳이 바로 시흥 행궁이었습니다. 시흥사거리에서 벽산아파트 방향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은행나무사거리가 나오는데, 현재도 남아있는 800년 된 은행나무 터가 예전 행궁을 했던 그 관헌 자리입니다. 화성 행차 첫해에는 사당동 쪽의 남태령 고개를 통해 넘어갔지만, 그 길이 왕이 지나기에는 좋지 않아서 다음 해부터 현재 시흥동으로 길을 변경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니, 부동산 입지 이야기를 읽으러 왔더니 웬 역사 타령이야?’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 말씀드린 사건은 결코 별 의미 없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는 연결되는 법이니까요. 실제 이 행궁은 우리나라 국도의 첫 번째 타자, 1번 국도가 탄생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가는 길이 이 시대부터 이용이 되었다는 것이죠. 이 정도로도 충분히 입지적으로 의미가 있지 않나요?

출처: 직방
직방에서 본 시흥동 벽산타운 일대 아파트 단지 평당가

게다가 금천구 시흥동에 무려 왕궁이 있었던 것입니다. 왕궁터는 왕릉 터와 함께 나라에서 가장 좋은 풍수 명당입니다. 1년에 딱 하루를 위한 왕궁이었지만, 왕궁은 왕궁이니까요.


서울 내 다른 구의 역사를 찾아봐도 왕궁이 있던 곳은 딱 세 군데입니다. 오직 종로구와 중구, 그리고 금천구에만 왕궁이 있었습니다. 현재 가장 잘 나간다고 평가받는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에도 왕궁은 없었습니다. 시흥은 그 당시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된 지명일 정도로 유서 깊은 명당입니다. 그러니 제발! 당당하게! 금천구를, 시흥동을 자신 있게 내세우시기 바랍니다.

1번 국도의 시발점, ‘금천구’

지금부터는 금천구 이야기를 좀 더 자신 있게 하겠습니다. 금천구 지역은 행궁 이야기에서 언급한 시흥군 지역이었다가, 1945년 광복 후 서울 출범 당시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경기도에서 서울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습니다. 1980년에 다시 영등포구에서 구로구로 분리되었고, 1995년에는 드디어 금천구로 독립하게 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출처: 직방
직방에서 본 금천구 내 동별 최근 1년 아파트 시세 변동률

금천구는 가산동, 독산동, 시흥동의 매우 단순한 행정동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더 단순한데요. 북쪽으로는 남부순환로, 동쪽으로는 관악산, 서쪽으로 안양천, 남쪽으로는 안양시와 맞닿아 있습니다. 금천구의 북에서 남으로는 시흥대로가 지나고 있는데요. 이 시흥대로가 바로 1번 국도의 시작 부분입니다. 경부고속도로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로가 바로 1번 국도(경수산업도로)이니, 남다른 의미가 있지요.


한편 서쪽 끝으로는 안양천이 접해 있고, 그 옆으로는 서부간선도로가 있습니다. 이 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그리고 서울 서부 지역과도 연결이 되기에 활용도가 매우 높은 도로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용하다 보니 상습적으로 정체되어, 현재 지중화 공사 중입니다.

‘금천구’ 가치가 낮은 이유는?

부동산 측면에서 지역의 가치를 평가할 때, 무엇보다 교통과 학군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여 평가합니다. 그런데 금천구는 이 두 가지 모두 좀 애매한 지역입니다. 이 애매함 때문에 지역 가치가 서울에서는 낮은 지역입니다. 도봉구와 같은 이유지요.


먼저 교통 편리성을 보면, 활용도 높은 시흥대로와 서부간선도로가 있습니다. 전철은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독산역, 금천구청역과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이 있고요. 1호선과 7호선은 좋은 노선이지만, 문제는 금천구의 서쪽에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전철 이용을 위해서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앞으로 신안산선의 독산역과 시흥사거리역이 개통되어야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직방
신안산선 예정 노선도. 금천구는 신안산선 개통 수혜지가 될 전망이다.

결국, 금천구의 교통은 금천 그 자체가 편해지는 것보다는 다른 지역의 교통을 나아지게 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보조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흥(始興)이라는 지명이 펼쳐 가기 시작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서울 이남 지역으로 길을 펼쳐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고양시가 개발될 때의 은평구 수색 지역이, 부천시가 개발될 때의 신월동 지역이, 성남시가 개발될 때의 송파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금천구 역시 안양시가 개발될 때 길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인근의 경기도 지역들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서울은 서울입니다. 따라서 언제까지고 보조적인 역할에만 머물러있지는 않을 겁니다. 마치 송파구가 그 틀을 깼던 것처럼 말이죠.


학군은 서울대 진학률과 대형 학원가 유무로 평가합니다. 금천구에서는 아쉽지만, 학군과 관련해 특별히 언급해드릴 이야기가 없습니다.

금천구민 여러분, 자부심을 가지세요!

금천구의 지역 위상이 낮을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학군과 교통문제도 있지만, 금천구민 스스로 서울 평균 이하 지역이라 평가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지 모릅니다. 과거 구로공단, 가리봉동 시절에는 그저 서울 변두리 공단이 있는 동네로, 도심으로 갈 여유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사는 곳 정도로 생각했던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합니다. 그 때문에 지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삶의 터전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금천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를 잡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금천구청의 행보만 봐도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죠. 첨단 미래를 향한 지자체의 기대감과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가산동IT와 패션산업의 메카라는 위상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독산동금천구의 랜드마크로 여러 시설이 개발될 것이고요. 시흥동은 천혜의 자연환경인 관악산을 바탕으로 훌륭한 주거지를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지역민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국토부와 서울시에서도 행정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준다면 분명 크게 발전할 잠재력이 있는 곳입니다. 국토부와 서울시에서는 신안산선이 빨리 착공될 수 있도록, 그 외의 광역 교통 환경이 더 편리해질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해야 하고, 금천구 지자체와 구민들도 정부와 지자체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금천구의 미래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하니까요.



글. 빠숑(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 소장

'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 저자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

http://blog.naver.com/ppas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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