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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부동산 정책을 알아보자! ① 박정희부터 전두환까지

김인만의 '트루 내 집 마련 스토리' 과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알면 앞으로의 흐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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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와 함께
‘부동산, 어떻게 살 것인가?’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그 세 번째 시리즈로
부동산 컨설턴트이자
부동산 칼럼니스트,
김인만 부동산 연구소의
김인만 소장과 함께
‘김인만의 트루 내 집 마련 스토리’를
매주 금요일에 연재합니다.

김인만 소장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 내 집 마련을 하는 모든 분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알기 쉽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영국의 유명 정치인인 윈스턴처칠경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과거의 잘못이 또 다시 되풀이 되기 때문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 부동산은 주거 문제뿐만 아니라 희소성에 따라 투자가치가 형성되며 상승과 하락의 패턴이 반복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그런 상황을 따르게 된다. 때문에 앞으로 부동산 시장 흐름과 정책을 알고 싶다면 과거의 부동산 정책을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역대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오늘은 박정희 정부부터 전두환 정부까지 부동산 정책에 관해 알아보자.

1962~1979년
국토개발의 시작, 박정희 정부

박정희 정부는 한강의 기적이라 할 정도의 ‘폭풍성장기’였다.


‘잘 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구호에서 알 수 있듯 박정희 정부는 절대 빈곤을 탈출하기 위해 경제 개발 계획에 따라 불도저식 국토개발을 추진했다. 1962년 산업화에 필요한 공업지구 조성을 위한 토지수용법과 1963년 국토종합계획법에 의한 국토개발계획, 1971년 1차 국토종합계획, 1972년 국토이용관리법, 1973년 산업기지개발촉진법, 1975년 공공용지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특례법 등이 제정되면서 울산, 포항, 구미 등 대규모 산업단지가 개발되었고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시설(SOC) 개발도 본격화되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당시의 모습

출처오픈아카이브

도시계획에 따라 시가지 주택개발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1962년 건축법, 도시계획법 등이 제정되었고, 대한주택공사가 설립되어 본격적인 주택공급이 시작됐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인 마포아파트를 비롯해 한강맨션, 반포1단지, 여의도,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대규모 주거단지가 차례로 건설되었다.

직방에서 본 압구정 현대1,2차 거주민리뷰.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유서깊은 내력을 알 수 있다.

출처직방

특히, 1966년 기존의 도시계획법에서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이 분리제정되면서 강남 등의 대규모 택지와 공공용지가 개발되었다.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이 없었다면 아마 현재의 강남이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택지조성을 하면서 원래 토지면적의 일부를 공공용지로 활용하고 일부 땅을 체비지로 바꾼 후 매각해서 사업비를 충당하는 방식으로 재정부담이 적은 반면, 땅값 급등으로 인한 사업기간이 길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강남신화의 시발점인 한남대교(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9,000만 평의 영동 토지구획정리사업에 따라 영동1지구, 영동2지구, 잠실지구 등 대규모 택지개발이 시작되면서 한국 부동산 역사에 강남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강남 신화의 시발점인 ‘한남대교’

출처직방
강남 신화의 시작,
사회 문제가 된 부동산 투기

부동산 투기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조금씩 나타나다가 국토개발과 함께 본격화 되었다. 당시에는 개인보다는 주로 기업(법인)이 적극 개입했다. 아무래도 자금력과 정보력이 되는 기업이 먼저 투기를 한 것인데,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지정도 그래서 만들어졌다.


1970년 중반 이후 아파트 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일반인들의 투기가 시작되었다. 부동산 투기의 대명사인 ‘복부인’이라는 말도 이때 등장한다. 석유파동 등 외적인 요인에 의해 일시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기도 했지만, 전국적으로 추진된 대규모 사업으로 유동성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자 당시 특권층 위주로 부동산 투기로 큰 돈을 벌었다.


이에 다수 일반인까지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시장은 과열되고 자연히 부동산 가격은 상승했다. 당시 3.3㎡당 30만 원이었던 서울 아파트 가격이 100만 원이 넘으면서 ‘개도 포기한 동네’라며 비하당하던 개포동이 ‘개도 포니를 타는 동네’가 되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당시 강남 일대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직방에서 본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의 현재 아파트 평당 매매가. 4,000만 원에 달한다.

출처직방

박정희 정부는 부동산 투기 열풍을 잡기 위해 양도세 강화, 재산세 개편 등 강력한 투기 억제 정책을 시행했다. 그렇지만 대규모 개발사업과 경제성장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슬이 퍼런 독재정권 시절에도 부동산투기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1967년), 부동산투기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1978년) 등 투기억제정책조차 당시 열기를 꺾지 못한 것을 보면, 단순 투기억제정책만으로 투자심리를 완전히 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반포 주공아파트 입주 당시 풍경

출처서울 역사박물관 디지털 아카이브
1980~1987년
부동산 급상승기, 전두환 정부

1978년 2차 석유파동과 정치불안으로 1980년 경제성장률이 -1.5%로 떨어지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는 흉흉해진 민심을 잡고자 주택경기활성화에 집중했다. 특히, 인구의 도시 집중이 심화되면서 대도시의 주택부족문제가 심각해지자, 주택 500만 가구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실제로는 1987년까지 176만 가구가 공급 되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로드맵에서 제시한 목표가 100만 호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물량이라 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을 택지 개발 예정 지구로 지정해 도시계획법 등 19개 법률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킨 뒤, 정부가 일괄 매수해 택지로 개발하는 방식인 택지개발촉진법이 1980년에 제정되었다. 택지개발촉진법은 도시개발 방법을 공영개발 방식으로 바꿨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개포, 고덕, 목동, 상계, 중계 택지지구가 조성되었고 노태우 정부에서 1기 신도시를 개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재건축 연한 도래로 매매가가 치솟고 있는 ‘목동 신시가지 1단지’의 실거래가 그래프

출처직방

집권 초기 광주민주항쟁으로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잠깐 시행하기도 했지만 주택 경기가 침체되자 1981년 양도세율 인하, 국민주택 전매기간 단축 등의 규제완화 내용이 담긴 5.18 주택 경기 활성화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자 1982년 분양가상한제와 전매제한 등이 포함된 12.22 주택 투기 억제 대책을 발표했으며, 1983년에는 채권입찰제, 1984년 토지거래신고제, 1985년 비 업무용 토지 누진과세와 대형주택 중과세 등 규제 대책을 연달아 내놓는다. 


그 결과, 1985년 주택경기가 다시 침체되었고 전두환 정부는 공공과 민간 합동 토지개발과 건축규제를 완화하는 9.5 주택건설 활성화 대책과 1986년 1가구2주택자 양도세 면제기간 연장 등이 포함된 2.12 주택건설 활성화 대책 등 경제 및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을 시행했다. 그 후 다시 과열양상을 보이자 1987년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일관성 없는 정책,
치솟는 부동산 가격

전두환 정부 주요 부동산 정책

출처직방

이렇게 일관성 없이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정부는 신뢰를 잃고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랐다. 1981~1983년 주택 가격이 40.6% 급등하고 1981년 26.5%였던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1987년 122.2%가 될 정도로 부동산 매매 및 전세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1985년부터 시작된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의 ‘3저 현상’에 베이비붐 세대의 취직과 결혼으로 인한 주택수요 증가, 1988년 올림픽 특수와 증시호황으로 유동자금까지 넘쳐나면서 부동산 시장이 들끓기 시작했다. 1987년 2.25 부동산 투기억제 대책이 발표되긴 했지만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87년 이후 5년도 안되어 강남 아파트 가격이 5배 정도 뛰었으니, 이때에 비하면 요즘 주택 가격 상승은 상승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상황이 심각했다.


1970년대 복부인이 있었다면 1980년대는 ‘빨간 빽바지’가 등장했다. 빨간 빽바지는 전두환 정부시절 군장교 부인들이 빨간 바지를 즐겨 입고 다니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 관련 고급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뒤 싹쓸이 투자를 하면서 생겨난 별명이었다. 정부의 고급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잘못된 고위직의 일탈은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전두환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투기억제 정책과 시장활성화를 위한 경기부양 정책을 반복하는 임기 대응적 성격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전반적으로는 규제완화 비중이 더 컸고, 개발정책은 주택공급 확대 위주였다. 부동산 개발정책으로는 상계지구 등 주택115만호 건설, 한강정비사업, 1982년 임대주택 육성방안, 1985년 중부고속도로 착공, 서울 개포, 고덕, 목동, 상계, 중계지구 개발계획 등을 꼽을 수 있다.

글. 김인만 /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

'문재인 시대 부동산 가치투자' 저자

네이버 카페 김인만 부동산 연구소

http://cafe.naver.com/atou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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