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뷰 본문

김혜나 “용서라는 말을 믿지 않아요”

사실 저는 용서라는 말을 잘 안 믿어요.
프로필 사진
채널예스 작성일자2018.11.09. | 5,989 읽음

소설가 지영에게는 친구 미영이 있다. “‘씨발’, ‘좆 같은’이라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그녀는 룸살롱 사장의 아내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지영을 보며 미영은 생각한다. 자신은 예쁘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은 청귤 같고, 미영은 달고 부드러운 “진짜 귤” 같다고.

닮은 점보다 다른 구석이 더 많아 보이는 이들은 또 있다. 필리핀에서 온 여성 로레나와 가족이 된 ‘나’가 있고, 늘 왕따였던 ‘나’와 늘 사람들의 호감을 샀던 ‘리나’가 있다. 그들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호기심을 가지고, 호의를 보이고, 관계를 맺는다. 김혜나 작가는 “서로 다른 사람 속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일에 대해 말했다.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 곧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6편의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그 누구도 자기 안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그시 응시하고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의 방식 그대로, 김혜나는 ‘작가의 말’의 첫 문단을 다음과 같이 썼다.

어린 시절, 나는 못생기고 뚱뚱한 아이였다. 어릴 때 앓은 뇌수막염의 후유증으로 나는 실제 사시이기까지 했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나를 돼지, 사팔뜨기라고 부르며 놀리고 괴롭혔다. 학교에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고, 당연히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 『청귤』 243쪽)

김혜나의 인물들은 그녀를 닮았다. 그들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팠던 순간을 끄집어내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꺼내놓고 보니 내 안에 있던 나쁜 감정들이 사라진 것 같았다고, 작가는 말했다.

전작 『제리』 , 『정크』 ,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청귤』 안에도 개인적 경험을 녹여냈다. 그녀는 인물의 입을 빌려 “거짓말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나는 오로지 진실을 이야기해요”라는 한 마디가 더 깊숙이 박혔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2010년에 등단하셨는데 『청귤』 이 첫 번째 소설집이에요. 늦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해요. 어떠세요?

맞아요. 제가 장편소설로 등단했고 계속 장편 형태로 발표를 하다 보니까 단편을 많이 쓰지도 못했고요. 아무래도 장편으로 등단한 분들은 단편 청탁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장편으로 등단해서 좋은 점도 굉장히 많았죠. 그런데 보통은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단편으로 등단을 해서 첫 번째 책으로 소설집을 내잖아요. 저는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된 것 같은데(웃음), 소설집이 나와서 정말 기뻐요. 첫 소설집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너무 새롭고 설레요. 처음 이 책을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인생 첫 책을 만드는 것처럼 행복했어요. 그동안 작업했던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신 작품도 실려 있잖아요. ‘작가의 말’에서 직접 밝히기도 하셨고요. 잊고 싶은 기억일 것 같은데 피하지 않고 직면하셨어요. 『청귤』 의 인물들처럼요.

사실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좋지는 않아요. 특히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적응도 못했고 항상 겉도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졸업한 이후로는 빨리 잊었던 것 같아요. 한 번도 그때를 떠올린 적도 없고요. 그런데 『제리』 를 쓰고 난 다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더 어렸을 때의 이야기들을 쓰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걸 왜 써야 되지? 왜 자꾸 쓰게 되지?’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한 편 두 편 쓰고 나서 보니까 불편했던 기억들이 더 이상 내 안에 머물지 않고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른 일들이 그렇듯이 지나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닌 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동안은 말하지 않고 감춰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 불편했었을 수도 있고요. 사실 이 책을 쓰기 전에는 잘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시였다거나 왕따였다거나 그런 이야기들이요. 그런데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 사실들에 대한 나쁜 감정들은 사라진 것 같아요.

계기가 있었나요?

스님한테 요가 명상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스님이 ‘자비’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어요. ‘자’는 기쁨을 나누는 것이고 ‘비’는 슬픔을 나누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이 세계가 기쁨으로 가득차고 슬픔은 모두 소멸되는 것이 부처님의 자비 명상법이라고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는 게, 어떻게 보면 단순한 말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말을 잘 안 하잖아요. 기쁨 일이 있어도 말 안 하고, 안 좋은 일 같은 건 더 숨기게 되잖아요. 특히 가까운 가족들이나 친구들한테 말을 잘 못 하고요. 그런 것들을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자, 그러면 슬픔을 가진 사람들한테 위로가 되고 슬픔이 조금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로 쓰게 됐어요.

등단 전부터 요가 강의를 하셨잖아요. 지금도 강사로 일하고 계시죠?

네, 맞아요.

소설가에게 부업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네. 꼭 소설가라서가 아니라, 예술가들은 다 프리랜서잖아요. 수입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데, 적은 돈이라도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급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커요. 그렇다고 하고 있는 일을 아예 놓을 수는 없고요. 제 주변에서도 요즘 요가 지도사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세요. 소설가만이 아니라 그림 그리시는 분, 노래하시는 분, 연기하시는 분들도요. 자신이 하는 일과 같이 할 수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예술가 동료 중에 실제로 시작하신 분들도 있어요.

혹시 정유정 작가님인가요(웃음)?

정유정 작가님은 아니에요(웃음). 작가님이 운동을 오랫동안 꾸준히 해오셨는데, 요가는 올해 들어서 시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운동할 때 안 쓰는 근육을 쓰니까, 여러 가지로 몸을 쓸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두 분이 히말라야에 다녀오신 지도 꽤 됐죠?

거의 4~5년 됐죠.

계속 친분을 유지하고 계신가 봐요.

네, 지금도 제일 친한 작가죠.

정유정 작가님이 먼저 제안하신 거였죠? 어떻게 같이 떠나게 되신 거예요?

그때 유정 선생님이 『28』 이라는 소설을 쓰시고 난 뒤였는데요. 번아웃 되셨던 것 같아요. 에너지가 방전되고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느낌이 처음이셨나 봐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힘을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전의식을 되찾기 위해서 가셨던 것 같고요. 저는 그때 등단하고 장편을 두 권 냈을 때였는데, 꿈이 이뤄진 다음에 오는 실망과 상실감, 회의감 같은 게 있었어요. 간절히 원하던 꿈이었어도 이뤄진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간절히 취직을 원했어도 회사에 들어가면 힘들 때가 있는 것처럼요(웃음). 그리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 작가로서의 일이 다른 점이 있죠. 그냥 글만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관계도 계속 해야 하고. 그래서 두 번째 책을 내고 나서 ‘내가 글을 평생 쓸 수 있을까, 작가를 계속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약간 ‘글을 더 쓰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었어요. ‘작가를 안 하면 뭘 해야 되나’ 하는 정체성 고민도 했고요. 그래서 내가 진짜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게 뭔지 다시 한 번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갔던 것 같아요.

관련 책
청귤
청귤
저자
김혜나
발행일
2018.10.10
출판사
은행나무
가격
정가 12,000원보러가기

놓치지 말아야 할 태그

#커피

    많이 본 TOP3

      당신을 위한 1boon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