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채널예스

공학자 윤태웅 “젊은 친구가 필요한 이유”

우리가 쌓은 경험, 연륜이 언제나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잖아요.

331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과학은 우기지 않는 거다’, ‘부끄러움은 왜 학생의 몫인가’, ‘교수님 제발 수업 좀 제때…’ 얼핏 보면 학생이 쓴 글의 제목 같으나, 윤태웅 고려대학교 전자공학부 교수가 쓴 첫 과학 에세이 『떨리는 게 정상이야』 의 목차 제목 중 일부다. 담박하고 단정한 글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꼭 좋아할 책. 문과 기질이 농후한 사람이라도 과학적 사고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도 쉬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를 추려본다면 공부, 학교, 세상. 세 주제를 한 단어로 묶어본다면 ‘성찰’이라는 표현이 알맞겠다. 나로부터 시작해 세상을 보고, 세상으로부터 시작해 스스로를 성찰하는 글. 윤태웅이 쓴 69개 글의 공통점이다.

제어공학을 전공한 윤태웅은 과학자로 사는 시간, 선생으로 사는 시간, 시민으로 사는 시간의 범주를 뚜렷하게 나누지 않는다. 공학을 생각하다 학생들을 생각하고, 학교 문제를 고민하다 사회를 들여다보는 셈이다. “읽기보다 쓰기를 더 많이 하는 처지가 불편했지만”(9쪽) 책을 쓰고 나니, 성찰과 소통의 즐거움이 한결 배가 됐다. 윤태웅 교수는 학생들에게 줄곧 말한다. “진정한 배움(Learning)의 출발점은 의도적 비움(Unlearning)입니다.” 비판을 즐거이 수용하는 태도를 갖고 싶다면, 적어도 꼰대는 되고 싶지 않다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도 좋을 성싶다.

비판할 수 없는 글은 없다

서문이 특별히 좋았습니다. 쉽게 읽히면서 깊이도 느껴졌어요. 3년이 걸려 나온 책이라니 후련한 마음이 있었겠습니다.

아마 3년도 더 지난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출판사에게 마음의 빚을 갚은 느낌이에요. 약속을 지켰다는 것보다 빚을 갚은 느낌이 더 있어요. (웃음)

원래 계약한 책 제목은 ‘세상이 실험실이다’였다고요.

공학자로서의 제 이야기가 궁금하셨던 것 같아요. 분류하자면, 이 책은 교양 과학 에세이일 텐데요. 공학, 합리적, 민주주의, 자유 등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글이 많아요. ‘공학자 윤태웅의 공부, 그리고 세상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지만 꼭 공학 이야기만은 아니죠.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요?

<한겨레> 지면에 썼던 칼럼 제목을 박래선 에이도스 대표님이 ‘떨리는 게 정상이야’라고 고쳐 주셨어요. 본문에 나온 글귀를 꼭지 제목으로 가져오신 건데, 저는 이 꼭지 제목을 책 제목으로 선택한 거죠.

『떨리는 게 정상이야』 라는 제목만 읽었을 때, 어떤 떨림인지 물음표를 던질 독자도 있을 거예요. 신영복 선생의 서화집에 나오는 지남철(나침반, 指南鐵)의 비유에서 나온 말이죠?

제대로 작동하는 지남철은 바늘 끝이 늘 불안스러워요. 떨고 있기 때문이죠. 반면에 고장 난 지남철의 바늘 끝은 전혀 흔들리지 않아요. 마치 어느 쪽이 남쪽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듯이요. 저도 학생 땐 흔들림 없이 확신에 가득 차 있던 선배들이 부러웠어요. 뭐가 뭔지 몰라 버벅거리는 제 모습이 불만스러웠죠.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서화집을 보고 나니, 떨리는 게 정상이라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무지에 대한 단순한 위로는 아니에요. 온전한 지남철은 마구잡이로 떠는 게 아니라, 남쪽이라는 구체적인 지향점이 있으니까요. 이런 떨림을 유지하라는 건 정체되지 말라는 요구죠.

공부, 학교, 세상으로 나눠진 목차를 쭉 읽는데, 흥미롭더군요. 짧은 제목의 묘미도 느껴졌고요.

지면에 썼던 글의 제목들을 거의 살렸는데요. 지금의 시점에 맞게 내용을 조금씩 고치긴 했지만 논거와 논지는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어요. 독자들을 밀어낼 것 같은 제목도 조금 바꿨고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과정’을 강조하신 것이 인상에 남아요. “답 찾기보다 더 중요한 게 문제 만들기”(49쪽)라는 말과도 이어집니다. 저자로서 책을 쓰는 과정은 어땠나요?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궁금합니다.

쓰는 과정에서 특별한 기억보다는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철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글과 삶이 무관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에 크게 동의하기 때문에 자꾸 반성하게 됐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고요.

글을 쓰고 난 뒤, 삶이 따라오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렇죠. 저를 견인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늘 경계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글을 쓸 때, 완전히 나와 일치된 글을 썼는지 모르겠지만요.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갖고 있는 글쓰기의 철학일 지도 모르고요. 제어공학도 그래요. 목표와 현실, 이 둘이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하는 과정일 수 있는데요. 현실과 목표의 차이를 줄이려고 할 때, 이 행동은 성찰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의 행위를 기계적으로 구현했다고 볼 수도 있는 문제죠. 이른바 사람이 어떻게 제어하는지 보고, 기계도 저렇게 제어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니까요.

“읽기보다 쓰기를 더 많이 하는 처지가 불편했다”(9쪽)고 말씀하셨어요.

칼럼을 쓴 기간이 ESC 대표 활동을 할 때였어요. 그 전에는 쓰지 않고 읽기만 했다면 완전히 역전됐던 거죠. 안팎으로 써야 할 글은 많은데, 읽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처음 겪어 보는 스트레스였어요. 가까운 지인들이 “공부가 꼭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공부하는 사람에겐 공부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제 처지가 좀 불편했죠.

책이 나오면 주변에서 온갖 축하와 격려가 쏟아지는데요. 교수님께서 페이스북에 공유한 글을 하나 읽어 보니, 완전히 호평만 담긴 리뷰가 아니었어요. 보통 비판이 들어 있는 글을 저자가 직접 공유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비판을 수용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인정하지 않았으면 굳이 공유까진 않았을 텐데요. 제게는 납득이 되는 글이었어요. 그리고 그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글은 없지 않겠어요? 비현실적인 일이죠.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