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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박민근 “마광수 교수는 나의 심리치료사였다”

마광수 선생님은 인간의 감정에 예의 바른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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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반 이상이 고 마광수 교수의 이야기. 하지만 책 표지 어디에도 ‘마광수’라는 글자는 없었다. 저자 프로필을 읽어보니 “1999년, 마광수 교수의 재임용 심사 문제로 학내 사태를 겪으며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고 써있다. 문학치료사 박민근의 이야기다. 『살아낸 시간이 살아갈 희망이다』 . 처음 제목을 읽었을 때, 좀더 명확하고 강한 제목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책을 다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자꾸 곱씹어 읽어야만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제목이 때때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10대 시절, 박민근은 가난 때문에 화가의 꿈을 포기하면서 첫 번째 우울증을 겪었다. 이후 어렵게들어간 연세대학교 국문과에서 고 마광수 교수와 운명적으로 만났고, 치유서 읽기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고 내적 성장을 경험했다. 작년 이맘때 마광수 교수가 세상을 떠난 후, 하루라도 빨리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마광수의 오해를 풀기 위한, 그간의 고통을 증명하기 위한 마음이 아니었다. 상처를 이야기함으로 나눔으로써,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쓴 책

프롤로그를 읽고서, 이 책의 저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글을 쓰기 쉽지 않았겠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동안 몇 권의 책을 써왔지만 이렇게 힘들게 쓴 건 처음이었어요.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뭔가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후련하다고 말하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최종 원고를 넘긴 후에는 며칠 동안 정신이 없었어요.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요?

스스로 굳이 따져 묻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하나하나 자기 분석을 해야 하는 일이어서그게 참 어려웠어요. 사실 몇 년 전부터 마광수 선생님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서 편집자 몇 분께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썩 반기지 않으시더라고요. 선생님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을 내는 일이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저도 그 부분을 모르는 게 아니니까요.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죠.

작년 이맘때 마광수 교수님이 돌아가시고, 마음이 좀 급해졌을 것 같아요.

마음이 확 바뀌었죠. 꼭 써야겠다,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은 살아생전에 너무 큰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마광수 선생님은 성 억압이 심해지면 성폭력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아주 오래전부터 하셨어요. 일본, 프랑스만해도 성문학은 문단에서 아주 중요한 장르인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워요. 매장되거나 3류소설이 되거나, 음지에서만 보고 있으니까요. 요즘 문학을 봐도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자로서 문학치료사로서 작가 ‘마광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 책으로 읽혔어요. 교수님의 연약했던 부분도 감추지 않고 쓴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한 줄 한 줄 쓰면서 엄정해졌어요. 마광수 선생님은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분이었어요. 자기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해야 나을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는데, 그걸 부정하셨죠. 마지막까지 감정의 핵은 원한이라는 걸 버리지 못하셨어요.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하셨어요. 이것이 제겐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마광수 교수님을 두고 “그는 나의 소중한 치유자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섬세한 사람, 마음을 꿰뚫는 사람”(7쪽)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육성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목소리가 특히 한 사람을 향할 때, 더할 나위 울림이 있다는 걸 떠올릴 거예요. 선생님은 인간의 감정에 예의 바른 사람이었어요. 대개의 사람들이 쓰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것을 쓰고, 남들이 칭찬할 만한 일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자신이 성적 판타지에 젖어 있는데 이걸 표현하지 않으면 문학인가? 문학가라면 자신이 느끼는 것, 자신이 경험한 것을 거짓 없이 표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한국에서는 수사가 뛰어난 문학가들이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좇지 않으셨어요. 제가 시인을 꿈꿨을 때는 몇몇 문인을 두고는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고도 말하셨는데, 후에 알고 보면 선생님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죠.

마광수 교수님의 흠은 ‘치명적인 솔직함’이었다고요.

가식적인 말을 싫어하셨어요. 잘잘못도 확실히 표현하셨죠. 저는 선생님의 그런 솔직함이 많이 부러웠어요. 자신에게 힘이나 권위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약한 자들의 허물에는 관대했으니까요. 선생님의 솔직함이 향하는 대상은 뒤가 구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남다른 직관력 덕에 단박에 사람의 성품을 꿰뚫어 봤죠. 선생님은 시인이라서 어감의 차이를 잘 아는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이 보기에 징그럽도록 적나라한 강의조차도 긴 고민에서 나온 것일 때가 많았습니다.

“언제나 글은 쉽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신 이야기도 기억에 남아요.

정말 크게 배운 점 중 하나인데요. “좋은 작가가 되려면 읽는 사람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저는 어떻게 보면 강박적일 정도로 글을 쉽게 쓰려고 노력해요. 항상 글을 쓰면 아내에게 먼저 보여주곤 하는데요. 일반 독자들이 읽을 때 어떻게 읽히는 지를 알기 위해서예요. 마광수 선생님이 글을 쉽게 쓰려고 한 건, 멋있게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가 정확하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어요. 항상 제게 되묻곤 하셨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윤동주 시인 이상의 정직한 작가들이 한국에는 많이 없다는 이야기도 자주 하셨어요.

어쩌면, 선생님은 문학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연대 국문과 사태가 없었더라면 계속 문학을 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문학치료사가 된 지금이 좋기도 합니다. 대학생 때, 교수님이 제게 “문학이 치료가 된다. 네가 대학원에 가면 이 주제로 논문을 쓰라”고 말씀하셨어요. 당시엔 새로운 영역이었으니까요. 10년 20년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셨어요.

마광수 교수님이 살아 생전 이 책을 보셨다면, 굉장히 고맙다고 말했을 것 같아요. 누군가 나를 정확하게 읽어주는 일, 이해해주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어떤 말을 해 주셨을지. 섭섭하다고 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선생님을 버린 제자예요. 어쨌든 나도 살아야겠다고, 선생님을 떠났으니까요. 하지만 선생님을 통해 제 삶이 단단해진 것, 정신이 확장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이 가장 커요.

임종 전에 교수님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요?

글쎄요.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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