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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부도덕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

양심은 두 가지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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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그의 사상은 우리 문학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큰 물줄기가 되어 흘러왔다. 문학평론가로서 한국문학비평에 기여했고, 진영 논리에 휘둘리기를 거부한 채 이분법 너머의 것들을 말했다. 동서고금의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면서 치열한 이성적 사유를 거친 끝에, 그의 글들은 탄생했다. 『법과 양심』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책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김우창 교수가 강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엮었다. 헌법재판소, 사법정책연구원, 사법연수원 등 사법기관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강연이 주를 이루는 까닭에, 자연스레 주제는 ‘법’과 ‘양심’이 됐다. 이에 대해 김우창 교수는 “양심의 문제를 생각하는 사회적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양심이란 무엇이고,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그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 ‘법과 양심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상호작용 하는가’ 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난해 출간된 책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지난 50여 년간 저자의 사상이 녹슬지 않은 채 이어져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악인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양심의 인간은 그 양심이 이데올로기적일 때 다른 양심의 인간에 대해 잔인하다”, “좋은 사회란 진실의 사회라기보다는 인간적 현실의 여러 요소가 균형을 이룬 사회이다” 같은 말들이 그러하다. 인간사회에서 끝없이 성찰되어야 할 것들이다.

김우창 교수는 1965년 <청맥>지에 「엘리어트의 예」로 등단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미국문명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거쳐 고려대와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공공지식인, 문명비평가, 문화사가, 문학이론가, 철학자로서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사상적 깊이를 보여줬다. 저서로 『궁핍한 시대의 시인』 , 『지상의 척도』 , 『심미적 이성의 탐구』, 『정의와 정의의 조건』, 『깊은 마음의 생태학』 등이 있으며, 저자의 모든 글을 모은 『김우창 전집』 이 출간된 바 있다.

‘묵시적 청탁’은 죄목이 될 수 있나

이번 책에는 사법 기관에서 강연하신 내용들이 실려 있습니다. 법학자나 법조인이 아닌 인문학자를 초청해서 법과 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법과 관련된 영역에) 객관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래서 기록을 했던 건데요. 사법정책연구원의 최송화 교수가 저를 초청해서 강연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 분이 보실 때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너무 없기 때문에 저를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어떤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할 때 ‘내 편이냐, 저쪽 편이냐’,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본 분들이 굉장히 적어서 그런 말들이 가닿지 않은 것 같아요.

문학작품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실 때가 많더라고요. 이론이 아닌 문학으로써 접근할 때의 이점이 있나요?

문학, 법, 정치, 철학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어야지요. 그것이 사회의 문화를 이루고 있어야지, 다 분리돼 있으면 안 되지요. 법은 두 가지로 우리와 관계가 있어요. 하나는, 범법을 하지 않는 한 법은 나와 상관이 없어요. 아마 일생동안 법과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예요.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이니까 존재한다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지요. 그러니까 법이라는 건 우리 일상생활과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법을 하는 사람들도 사람 사는 문제를 알아야지, 그것이 없이는 법이 존재할 수 없어요. 간단한 판결은 가능하겠지요. 사람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 이런 건 판결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정말 깊게 생각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왜 죽이느냐’ 이런 질문도 해야 하잖아요. 또 어떤 사람은 죽이는 게 괜찮다고 하지요. 가령 사형을 집행한다든지, 전쟁이 났을 때 적을 죽인다든지. 그러면 어떤 때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인지, 그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있지요.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법 조항과 판례를 잘 아는 게 전부가 아니고요.

깊이 생각하는 법관이라면 그런 감각이 있어야지요. 그런 배경이 자신한테 없더라도 법 전체에 있어야 하고요. 시카고대학 로스쿨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라는 교수가 있어요. 그 분의 원래 전공이 희랍 철학, 희랍에서 전파된 헬레니즘 철학이에요. 그런 분을 법과 대학에서 모셔간 거지요. 법학 교육의 배경에 철학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게 정상적인 나라이지, 법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지요. 이건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사실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게 있어요.

무엇인가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이 구형됐잖아요. 실제 그 케이스를 잘 보지 않아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신문에 나온 걸 보면 ‘묵시적 청탁’이 큰 죄로 되어 있어요. ‘국정농단’ 하고. 그런데 국정농단이라는 게 법에 없을 거예요. 또 묵시적 청탁이라고 하면 은근히 압력을 줬다는 건데, 그렇게 하면 죄목이 안 되지요. 실제로 판결문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이런 법 제도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건전한 상식과 양식이 있는 사회냐는 거예요. 아마 박근혜 대통령에게 잘못은 있을 거예요.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도덕적 윤리적 책임이지요. 이건 죄로 다룰 수 있지만 법으로 재판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여론이나 양식 있는 사람들한테 책임을 묻고, 거기에 대해서 본인이 답변할 수 있어야지요. 법은 어디까지 증거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지, 증거 없이 재판한다는 건 불가능하지요.

책에서 말씀하신 부분이 떠오르네요. “법은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행동이나 언어에 의하여서만,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 말하지 않는 것, 행하지 않는 것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쓰셨죠. 법에 의한 제재나 판단, 처벌은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최소한이라기보다도 정당한 근거와 절차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당한 절차는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법으로 제정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또 관례로써 수립이 돼 있어야지요.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되지요. 법관들이 다 자기 양심에 따라 재판하게 되면 법 제도라는 게 없어져 버리잖아요. 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당성이 없어져 버리지요. 한 사람의 양심이 절대적인 건 아니거든요. 그것이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절차를 정해놓았다고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넘어가는 판결도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런 건 드문 경우이지요.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형량을 더 늘려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특히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일 때 그렇죠. 이 또한 양심에서 나온 목소리이고, 동시에 현재의 법을 넘어서자고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이런 경우는 어떻게 보시나요?

그것은 정치와 사회 운동으로 이야기해야 될 일이지, 법으로 하여금 형량을 넘어서 약자를 보호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약자라는 말 자체가 우습지요.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해요. 대통령이나 청소부나 똑같은 자격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고, ‘이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니까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건 정치, 사회, 문화의 문제이지 법으로 정할 수는 없지요. 이렇게 할 수는 있어요. ‘여성에 대한 범죄는 특히 강하게 처벌한다’고 법으로 정하면 그대로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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