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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청년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

실제로 60, 70대 분들도 정말 고생 많이 하셨죠.
채널예스 작성일자2018.08.31. | 227  view

어쩌면 이곳은 일찌감치 망한 나라(선망국, 先亡國).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에 휩싸였던 곳.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시간 속에서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은 희망을 발견한 듯 보였다. “현 시대의 모순을 누구보다 첨예하게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한 한국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것이었다. 과연 한국은 ‘망함’의 시기를 극복함으로서 선망하는 나라(선망국, 羨望國)가 될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쉽게 낙관하는 대신 확실한 진단을 내린다. 세상이 계속 좋아질 것을 믿는 근대 문명은 수명을 다했고 지금 우리는 전환의 시기를 살고 있다는 것, 우리 모두가 “마음속 깊이 다른 시간대로의 이동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선망국의 시간』 은 대전환의 시기에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과 다가올 시간에 대해 성찰한다. 인류학자로서 시대의 흐름을 읽으면서 대안교육, 마을살이, 청년문제와 관련해 대안적 공론의 장과 실천적 담론을 만들어 온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의 통찰과 지혜가 담겼다. 지난 4년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비롯해 인터뷰와 강연록, 대담을 모았다.

“그간 오로지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통합을 강조하며 달려온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확고한 목소리로 말한다. 선망국(先亡國)의 사람들은 “‘위’의 역사가 만들어낸 주체로서” 단일성과 통합성을 강조해 왔으며, 이들 ‘착한 국민’은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지혜로운 시민’으로 태어났다는 것.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건너갈 시간 속에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주체”로서의 시민과 그들이 가진 다양성과 연대가 자리할 거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바람으로, 저자는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시민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숨고르기의 시간이 필요한 때

‘선망국’이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망한 나라(先亡國)’, ‘선망하는 나라(羨望國)’가 그것인데요. ‘먼저 망한 나라’라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잖아요. 일제의 식민지를 겪었고, 그 후에 한국전쟁까지 겪었어요. 일본만 해도 전쟁을 겪은 후의 시간이 서양하고 동시대성으로 가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6.25 때문에 10년 늦어졌고, 그것도 아주 강압적인 형태의 군사독재적인 경제발전을 짧은 시간에 했어요. 그러면서 극단적인 불균형 발전이 됐고 ‘먹고 살면 된다, 강한 나라가 돼야 한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외부에 목적을 정해놓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달렸죠. 한편에서는 민주적이고 근대적인 이상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87항쟁을 했고요. 민주화도 굉장히 짧은 시간 내에 한 건데, 그것도 구조라는 거대한 차원에서의 민주화죠. 정말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시민 혁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조건은 아니었잖아요.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싸워야했을 때는 작은 목소리들은 그냥 잠잠하라고 말했던 거죠.

요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시면서 ‘선망국(先亡國)’의 징후를 감지하기도 하세요?

현 상태를 보면 사람들이 너무 괴로운 상황인 거잖아요. 우리가 여성 혐오를 계속 이야기하는데 미소지니(misogyny)의 여성 혐오와 달리 우리 사회는 혐오 사회가 된 거죠. 제 생각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설 때부터 굉장한 냉소와 자포자기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걸 넘어서서 굉장한 혐오와 적대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선망국(先亡國)이라고 말할 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남녀 간의 전쟁이나 기후 변화 문제를 사례로 들 수 있을 텐데요.

여성 혐오와 관련된 부분은 어떤 건가요?

며칠 전에 미국에 다녀왔는데 남녀문제와 관련해서 사람들을 만났어요. 미국에도 여성 혐오가 분명히 있어요. 어떤 한 대상을 항상 자기 밑에 놓고 지배하고 싶어 하고, 특히 여자는 자기들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그렇게 되죠. 여자에 대한 혐오, 약자에 대한 혐오는 약간 나치적인 경향을 가진 극우 남자들만의 조직에서는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여자를 미워하는 마음은 아니거든요. 대부분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는 인종문제가 먼저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자를 미워하는 식으로 가고 있죠. 예민 난민 이슈와 관련해서는 난민들이 우리 여자들을 강간할 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또 다른 혐오로 가고요. 혐오의 관념이 너무 심하게 돼있는 상태잖아요. 왜 여성을 혐오하느냐, 그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간단하죠. 우리가 마지막 냉전국가니까, 그리고 남자가 군대를 간다는 이유 하나로 그걸 보상하라는 논리가 이상하게 만들어지면서 그렇게 흘러간 거죠. 굉장히 어리석은 방향을 선택한 거예요.

그렇지만 ‘선망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건 우리가 국민에서 시민, 시민에서 난민이 됐다는 거거든요. 우리 모두가 난민이라는 걸 인정하자는 거예요. 기후 문제만 보더라도 이건 재난이고 우리는 난민이 된 거잖아요. 이런 시점에서 ‘조금만 어떻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식의 사유를 아예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조급하게 굴다가 더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근본적으로 문제를 잡아야 되는 거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시간’이라는 단어를 넣은 거죠. 선망국이냐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에 시간을 많이 쏟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근대적인 시간을 넘어서 정말 다른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숨고르기와 최소한의 여유가 필요한데,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죠.

<한겨레신문>에 연재하셨던 칼럼도 다수 실려 있어요.

칼럼을 쓸 때, 특히 세월호 이후에는 계속 우울해졌어요. 그래서 ‘우울해지지 않고 이 시간을 그대로 살아내는 방식이 무엇일까’ 생각했고요. 그러니까 글 쓰는 시간 자체가 기도하고 명상하는 시간이 된 건데, 그러면서 나 자신도 견디게 됐고 칼럼도 계속 쓸 수 있었어요. ‘그만 써야지’라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글쓰기가 괴로운 순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진리를 말하려는 행위 자체가 무모하게 느껴지는 시대”라고 쓰셨고, “더 이상 합리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글 쓰는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하셨는데요.

사안 사안마다 해결될 수가 없는 거라는 걸 느끼는 거죠. 우리가 ‘청년일자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게 일자리라는 개념으로 풀릴 수가 없는 거거든요. 기본적으로 사유의 개념을 바꿔야 되는 거예요.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게 모든 것은 우리가 가진 공공재이기 때문에 시민배당을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게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형태로 국가의 정책이 굴러가고 있잖아요.

쓰는 행위가 공허하게 느껴지실 때도 있나요?

우리는 나라가 막 좋아지는 계몽주의 시대도 살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혐오와 가짜 뉴스가 더 판을 치는 세상인데, 글쓰기를 즐겁게 하기는 힘들죠. 탈계몽주의 시대에는, 정말 기도라든가 다른 어떤 게 있지 않은 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겠어요. 그리고 ‘왜 문제를 풀지도 못하면서 어려운 소리나 하냐’고 지식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요. 최근에는 책을 세 페이지 이상 못 읽는다는 이야기도 나오잖아요. 그건 정말 이해가 돼요. 그만큼 바쁘니까 그런 거죠.

관련 책
선망국의 시간
선망국의 시간
저자
조한혜정
발행일
2018.08.01
출판사
사이행성
가격
정가 16,000원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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