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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우리가 앞으로 싸워야 할 악의 실체”

종종 “선생님, 이길 수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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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작성일자2018.08.13. | 13,692 읽음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어디까지나 극의 재미를 위해 꾸며진 이야기라고. 소설의 제1부, 그중에서도 맨 첫 번째 장을 읽은 순간부터 내내 이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바람은 가차 없이 빗나갔다. 공지영 작가는 5년여의 취재 끝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신작 『해리』 를 펴냈다.

소설의 주인공 ‘한이나’는 암 투병 중인 엄마와 함께 지내기 위해 고향 무진에 내려갔다가 한 사건을 맞닥뜨린다. 이를 시작으로 그녀는 사건을 둘러싼 고교 동창생 ‘이해리’와 천주교 신부 ‘백진우’를 추적하며 우리가 신성하고 선하다고 여겼던 것들의 추악한 어둠을 발견한다. 파헤치려 할수록 세상은 자욱한 안개가 낀 듯 답답하고, 궁지에 몰린 악인들은 점점 더 추악해지는데,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악을, 법의 테두리를 교묘히 비껴가는 악을 응징할 근거는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책을 읽고, 인터뷰를 마친 지금까지도 이 소설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종교의 흉악한 이면을 이야기하던 공지영 작가의 격양된 목소리, 대구 희망원 사건의 피해자를 언급할 때 순식간에 두 눈을 차오르던 눈물이 대신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고.

시대를 내다보고 쓴 것 같은 이야기

불매운동, 평점 테러 등으로 소음이 많았지만, 출간 이틀 만에 초판 6만 부가 매진되었을 만큼 반응이 좋아요. 응원받은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런 느낌 받았어요. 사실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심적으로도 힘들었던 게 사실이고요. 그래도 많은 사람이 이성을 가지고 세상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권으로 구성돼 있어 각오를 하고 책을 펼쳤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어요. 뒷 내용이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웃음)

고마워요. 제가 바라던 감상이에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해주셨어요. 그런데 앞으로 『해리』 를 보실 독자분들은 제발 천천히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다들 너무 빨리 읽으시는 것 같아요.

출간기념회에서 『해리』 를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에 대해 “진보의 탈을 쓰는 게 돈이 된다는 사실을 터득한 사기꾼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민주화운동을 지나온 과거 70~8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소위 약자의 편을 들고 진보의 기치를 올리면 투옥되거나 가난을 감수해야 했어요. 그래서 그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늘 우리의 마음속에 있었죠. 하지만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고,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정의를 부르짖는 게 무척 쉬워졌습니다. 특히 SNS와 팟캐스트의 등장으로 개인이 스피커를 갖게 되며, 누구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게 되었잖아요. 이를 통해 진보의 기치를 내걸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걸 감지한 사기꾼들이 대거 몰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어요. 기존 보수 정권에 대한 실망으로 정의에 목말랐던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가 물질화되어 그들에게 권력과 재물을 주었고, 대중들은 누구보다 가장 속기 쉬운 상황에 놓여버렸죠. 그걸 재빠른 악인들이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 시대의 징후로 포착한 거예요.

신작을 출간하고 난 뒤, ‘현재를 내다보고 쓴 느낌을 받았다’는 소감을 종종 밝히곤 하셨어요. 『해리』 가 출간된 뒤에도 그랬을 것 같아요.

네, 마찬가지였어요.(웃음) 책 출간하고 난 뒤, 하루는 편집자에게 문자가 왔어요. “선생님, 신부 이름을 왜 백진우라고 쓰셨어요?”라기에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더니 “이름이 진우잖아요”하는 거예요. 아니, 그 이름 1년 반 전에 쓴 건데.(웃음) 실제로 SNS에 달린 책 관련 악플 중에도 ‘일부러 이름을 그렇게 지었지?’라는 게 있었어요. 무진 시장의 이야기도, 시장이 이런 횡포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해서 쓴 것인데 지금 와서 보면 마치 작정해서 쓴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장편소설은 집필 기간이 길다는 걸 다들 아시기 때문에 오해하는 독자분들은 없겠지만, 이걸 쓴 저 조차도 현재의 상황과 묘하게 엮이는 걸 보며 소름이 돋았어요.

작가는 시대를 앞서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작가님은 특히 더 혜안이 있으신가 봐요. 왜 그럴까요?

작가는 현재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예요.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인간의 기층 심리를 계속 탐구하고, 생각한 세월이 수십 년 쌓였으니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아요. 현재 속에 들어있는 미래의 작은 단서를 포착하는 거죠. 해바라기 씨가 뜰에 떨어진 것을 보고 ‘여름이 오면 여기가 해바라기 밭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예언은 아니잖아요.

한 인터뷰에서 “『도가니』 를 쓰는 동안 온 나라가 무진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에 당혹스러웠다”고 말씀하셨어요. 반면 『해리』 는 ‘온 나라가 무진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쓴 느낌이 들더라고요.

무진은 대한민국 사회의 압축판이에요. 권력, 자본, 언론이 똘똘 뭉쳐서 약자들을 착취하는데, 그 어떤 저항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답답하더라고요.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가진 게 없는 자를 끊임없이 약탈하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어요.

기억에 남는 독자의 반응이 있나요?

‘너 이런 소설 써놓고, 그런 짓 했구나’라는 악평이 있었어요.(웃음) 난 그게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리뷰 중에는 ‘PPSS(ㅍㅍㅅㅅ)’에 실린 허희정 소설가의 글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 없이, 제 의도를 잘 읽었더라고요. 요즘은 이렇게 눈 밝은 독자들로 인해 긴장하게 돼요. 어떨 땐 나의 약점이나 나태까지도 찾아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관련 책
해리 1
해리 1
저자
공지영
발행일
2018.07.30
출판사
해냄
가격
정가 14,500원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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