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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노포에 자랑스러움과 걱정거리를 안겨드린 셈”

이런 말은 없겠죠. 물건 값 보지 말고 받아라,
채널예스 작성일자2018.05.14. | 280  view

『백년식당』 이후 4년. 박찬일은 전국의 ‘노포’를 취재해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담고 다시 돌아왔다. 모두 26곳의 노포, 노포의 평균 나이 50년이 넘는 대단한 목록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노포의 장사법』 속 쟁쟁한 노포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이고 과거로부터 찾은 식당의 미래였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어떤 중식당은 짜장면만 일고여덟 그릇을 먹었다.’(374쪽) 그래도 섭외에 실패했다. 어떤 곳은 간청하는 박찬일이 “불쌍해서” 수락해주었다. ‘용마갈비’는 70년대-80년대 서울 외곽 인구 폭발 성장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곳이기에 꼭 담고 싶었다. “갈비 정말 많이 먹으러 갔”고 간신히 허락을 받았지만 사진만큼은 끝내 거절 당했다. 이런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낮술도 많이 먹었고, 몸도 많이 상했다. 하지만 좋으니까 했다. 해야만 했다. ‘숭덕분식’의 떡볶이, ‘41번집’의 포장마차 요리들, 기사식당으로 성공신화를 쓴 ‘성북동돼지갈비집’, 오사카의 ‘오모니(어머니를 일본어 발음으로 읽은 것)’와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만든 ‘을지오비베어’까지.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얻은 영감이 많았다고 박찬일은 말한다. 특히 그는 인터뷰 말미에 “노인이 갖고 있는 힘이 있다. 노인 직원을 고용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수한 식당, 노포. 장수한 노인의 건강법을 엿보듯 장수한 식당의 철학을 엿보는 일은 그렇게 닿아 있었다.

오래된 것의 소중함

취재 기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2년 전 취재도 보이고 그렇더라고요.

심지어 그동안 돌아가신 분들도 계세요. 세 분이 돌아가셨고요. 지금도 아프신 분들이 많아 걱정이에요.

그 촉박함, 초조함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기록이 중요하죠. 그때는 기록의 중요함을 몰랐으니까요. 이것은 사실 민속기록인데요. 문학 영역에는 많이 있었지만 여기에 이런 시도는 없었던 것 같아요. 언론에서 인터뷰 하는 정도인데요. 언론에서도 이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를 않았어요. 정치인, 예술인에 대해서는 <중앙일보>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라고 연재도 있었잖아요. 하지만 거기에 요리사나 밥집 주인이 나오는 건 못 봤어요. 밥이라는 건, 밥집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대중에게 그렇게 가치 있다고 판단이 안 되었던 거죠.

왜 그랬을까요?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일까요?

원래 그랬죠. 흔한 것은 소중한 줄 모르는 법이니까요. 우선 본인들이 귀중한 걸 알지 못했어요. 식당들이 왜 이제야 ‘since’를 붙이는 걸까요? 영어를 쓴다는 자체가 새로운 유행이란 뜻이죠. ‘since2015’도 있잖아요.(웃음) 그것도 오래된 거예요. 4년 가는 식당도 많지 않아요.

한편 책에 등장하는 노포들은 평균 50년이 훌쩍 넘는 곳들이죠.

삼십 몇 년 된 집도 있는데요. 가치가 있기 때문에 넣었어요. 그 정도 되는 식당도 별로 없죠.

그 이유를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내셨잖아요. 전쟁을 겪으면서 유실된 것들도 많다고요.

그렇죠, 그게 제일 큰 요인이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외국의 예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유럽이라고 전쟁이 없었나요? 1차, 2차 세계대전 다 겪었잖아요. 일본도 공습 엄청 당하고, 파괴된 경험이 있고요. 도쿄는 완전히 평평해졌었어요. 워낙 폭격을 받아서요. 그런데도 노포가 살아남은 것은 오래된 것의 소중함을 누군가가 인정해준다는 거겠죠. 우리는 밥집은 천하다고 생각했고요. 주인들도 자신의 밥집을 대를 물려줄 거라고 상상도 안 했잖아요. 다들 돈 벌면 그만두어야지, 그 마음으로 하거든요. 이제야 이것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채는 분위기죠. 이제야.

그만큼 험한 일이기도 했고요.

험하고, 인정받지 못하고요. 사회적으로 장인이 존중받는 분위기가 없고 오래된 것의 소중함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작동한 거죠. 옛날에 조선백자가 개밥그릇이었다잖아요.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학예사, 인사동 고미술상 같은 분들이 플라스틱 바가지를 주고 개밥그릇을 빼앗아왔대요. 오래된 것의 가치를 몰랐던 무지의 시대가 있었던 거죠. 우리는 항상 새로운 걸 좋다고 했잖아요. 노포에 가도 싹 헐어버리고 새로 지은 집 되게 많아요. 옛날에 쓰던 것 하나도 안 남기고요. 다 버렸죠. 이제야 인정받는 건데요. 이것 또한 결국은 인접 국가의 영향이에요. 일본에서 영향을 받는 거예요. 가슴 아프죠. 우리 스스로 그 가치를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런 책이 적어도 2000년대 초반에는 나왔어야 해요. 유사한 책은 있었지만 이렇게 깊이, 오래된 것에 초점을 맞춰서 그것의 가치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들이 없었어요. 그런 게 좀 속상하죠.

취재의 어려움이 짐작도 되는 것이 이런 작업이 없었으니까요. 다 처음부터 시작인 거잖아요. 무엇이 제일 힘드셨어요?

이런 문화가 없으니까요. 주인들도 몰라요. 왜 우리집을 하느냐, 라고 해요. TV 촬영이라도 하면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즉각적으로 이해할 텐데 아니잖아요. 옛날이야기를 하라고 하고, 옛날 사진을 달라고 하고 그러니까요. 이게 무슨 가치가 있는지 잘 몰랐어요. 일단 섭외가 안 돼요. 또 사기꾼들이 많았죠. 식당 소개해준다면서 기사나 잡지를 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경계심도 많아요. 제가 누군지 알게 뭐예요?(웃음) 그리고 대개 노포가 자료가 없어요. 자료가 없으면 인터뷰가 어렵잖아요. 뭐가 있어야 그것을 되물어보고 하죠. 왜 식당을 시작하셨는지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짧은 시간에 밀도 있는 이야기가 어려운 거예요. 몇 번 가서 들은 이야기들이 많아요. ‘수원집’ 같은 경우는 열 번 가까이 갔어요. 제가 적자가 심하게 났어요.(웃음) 그래도 좋으니까 했어요. 돈 벌려 했으면 애저녁에 안 했어요.

섭외 설득에 도움이 되었던 좋은 논리가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논리는, 없어요. 자꾸 가서 낮술도 먹고 강짜 부린 것밖에 없어요. 술기운에 “아, 인터뷰 좀 해주세요!” 하는 거죠. 이분들은 논리적으로 설득한다고 해도 안 되고요.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거죠. 낮술 먹고, 자꾸 가서 얼굴 비치고요. ‘을지면옥’, ‘용마갈비’ 다 그렇게 했어요. 한 번에 시원시원하게 된 게 별로 없고요. ‘조선옥’도 한 서너 번은 가서 고기 먹었어요.

끝내 설득이 안 돼서 쓰지 못한 곳도 있는 건가요?

인터뷰가 안 됐으면 못 나갔죠. 취재기로만 써도 된다면 했겠는데요. 우리 책을 낼 때 원칙이 주인이 나와서 인정하고 승낙할 때까지 안 쓰는 것이었어요. 변두리의 돼지갈비라는 것이 70년대-80년대의 서울 외곽 인구 폭발 성장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용마갈비’를 담았는데요. 그분의 사진이 없어요. 적극적이지 않으셨어요. 하고 싶지 않다고요. 얘기는 해줄게, 책을 내신다니, 하는 정도였죠. 갈비 정말 많이 먹으러 갔어요. 어느 중국집은 몇 번이나 갔지만 끝내 안 하신다고 하셔서 못 썼고요. 남대문의 어느 곳은 저희 취지를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했어요. 저희가 사기 치는 것 같아서 거부하신 것 같아요. 중요한 식당인데 못했어요. 안타까운 거죠.

관련 책
노포의 장사법
노포의 장사법
저자
박찬일
발행일
2018.05.04
출판사
인플루엔셜
가격
정가 11,000원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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