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채널예스

고전문헌학자 배철현 “수련, 결국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과정”

『수련』은 머리로 쓴 것이 아니라 제 가슴과 다리로 쓴 책입니다.

1,952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참 어려운 이야기다. 그런데 듣고 보면 또 쉬운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간단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복잡하고 어렵다. ‘수련’에 관한 이야기다. 전작 『심연』 에서 고독을 통해 나를 외부와 단절시키라는 메시지를 던지던 배철현 교수가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수련』 을 들고 와서 나를 찾아나서라고 말한다. 나를 찾는 것이야 안 하겠다고 할 이유가 없지만, 그 방법이 이상하다. 그 전에 난데 없이 가진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

버리기는커녕 주워 담아도 부족한 시대. 아무리 공부를 하고 또 습득을 해도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벅찬 시대. 하나라도 더 차지해야 중간이라도 갈까 말까 한 이 시대에 버리라니. 그나마 가진 것도 거의 없는 우리에게 있는 것도 버리라니. 정말 어리둥절해진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단순해지기까지 하라고? 점점 더 복잡해지는 이 시대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닦아 내 능력을 한 단계 올리기도 바쁜 와중에 버리고, 단순해 지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하지만 조금씩 알 것도 같다. 배철현 교수가 이야기한 것들을 다시 한번 나의 생활에 비춰 되짚어 보면 말이다. ‘나는 하루의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얼마나 쓰고 있는가.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지금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정말 해야 될 것을 하고 있나, 아니면 그냥 하던 대로 하던 것만 생각 없이 하고 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하나 둘 내 생활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군더더기 같은 것이 보인다. 익숙해서 몰랐던 삶의 찌꺼기도 보인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해서 하고 있던 일들도 보인다.

아직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수련’의 세계로 입문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어떤가. 배철현 교수와 함께 자신만의 『수련』 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수련,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

이 질문부터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전작 『심연』 이라는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는데요, 이번 책 『수련』 은 『심연』과 어떤 관계에 있다고 봐야할까요?

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개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있는 그대로의 개인이 아니라 숙고하는 개인, 더 나은 자신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개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숙고하지 않는 한 자유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이 어떻게 더 나은 자신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네 가지를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 첫번째가 ‘심연’이라는 것인데 자기 자신을 깊게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을 오롯이 볼 수 있는 고독이라는 시간, 즉 자신을 외부로부터 독립시키는 시간과 장소를 ‘심연’이라는 상징어로 사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혼자 있으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바로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권도를 한다고 생각하면 노란띠에서 빨간띠 정도가 수련이라고 할 수 있죠. 그 다음 세번째 단계가 누에고치가 나비가 되기 전 상태인 ‘정적’에 해당되고, 마지막으로 나비가 되는 네 번째 단계가 ‘승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련’은 한 개인이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 전체 4단계에서 두 번째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수련’이라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을 고찰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거네요.

그래서 수련은 주로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들, 즉 흉내라든지, 욕심이라든지, 식탐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련’은 뭘 하는게 아니라 뭘 안 하는 거예요.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내가 뭔가 부족한 것은 많아도 뭔가를 버릴 것이 있나하는 생각이 드는 시대입니다. 버린 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자신을 삶을 가만히 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어요. 제가 예를 들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갖는다든지, 권력을 갖는다든지 하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이거든요. 그 대신 저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죠. 제가 정치가가 된다거나 배우가 된다거나 하지 않겠죠. 왜냐하면 저하고 맞지 않으니까요. 대신 저에게 맡겨진 인생의 배역이 따로 있다고 봐요. 그런데 자기가 맡은 배역을 알기 전에 주위 사람들이 너 이것도 필요한 것 같아, 이것도 해야 돼, 하는 일이 많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해야 될 한 가지를 찾기 위해서 굳이 안 해도 되는 것들을 솎아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버린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는 과정

자신의 배역과 내가 해야 될 일을 찾는 다는 말은 책에 소개되어 있는 로마 제국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호라티우스는 시간을 ‘남을 부러워하던 세월과 지금 이 순간으로 구분된다’고 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것을 얻으면 좋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흘려 보내요. 우주 안에서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것이 시간이거든요. 시간 앞에서는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립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판단해주는 마지막 판단자이자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괴물이에요. 그래서 이 시간을 포착해야 되는데요, 그런데 내 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내가 돼야 하는데 내가 내 시간을 포착하지 않으면 보통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게임의 룰에 의해서, 남들이 만들어 놓은 법칙에 의해서 움직일 수 밖에 없어요. 호라티우스가 말한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세월이란 이런 의미고, 지금 이 순간은 뭐냐하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강제적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밖에 없습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될 어떤 것입니다. 내가 될 어떤 것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고 그것을 수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은 힘들어도 조금은 참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질문에 ‘좋은 미래’라는 단어를 사용했잖아요. 좋은 것이 무엇이냐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그 좋은 것이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살고,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좋다고 하면 그래도 상관 없지만, 자신에게 좋은 것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 그 한 가지라면 다르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려면 자신의 생각을 깊이 보고, 내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은 것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혹은 자신에게 좋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좋은 미래는 사회나 부모나 친구들이 말하는 좋은 미래를 좋다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좋은 것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