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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꿈이 없었다면 며느리 사표는 없었다”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아내를 한 개인, 한 사람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는 스스로가 판단하지 않고, 내 입장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준다. 모든 걸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각자의 모습으로 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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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작성일자2018.03.14. | 3,286 읽음

때때로 ‘잘’ 읽어야 할 책을 만난다. 책이 말하는 내용을 곡해하지 않고, 핵심을 잘 이해해야 하는 책. 『며느리 사표』 가 그렇다. 책이 나온 과정도 궁금했지만, 출간 이후가 더 궁금했다. 제목만 읽고는 소설로 착각했던 에세이 『며느리 사표』 . 지난 설 명절에 이 책을 읽고는 슬쩍 내 주변의 어머니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삶도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며느리 사표』 시작은 이렇다. 대가족 장손의 아내로 수많은 손님들을 맞이하며 23년을 살아 온 여자가 2012년 추석 이틀 전, 시부모님께 ‘며느리 사표’라고 적힌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더 이상 며느리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만 있을 뿐이었다. 버럭 화를 낼 거라 예상했지만 시부모님은 사표를 받아들였다. “아무 때든 네가 편안히 오고 싶을 때 오라”는 시부모님의 말을 듣고 여자는 결혼 후 처음으로 명절에 시댁을 가지 않았다. 친정 가족들에게 ‘며느리 사표’를 말하자 원성이 들렸다. 그래도 여자는 남은 인생을 온전한 자신으로 살고 싶었다. 이후 여자는 남편에게 이혼 선언을 했고, 대학을 졸업한 아들과 딸에게는 독립을 요구했다.

열렬히 사랑해 결혼했는데 여자는 왜 결혼 생활이 불행했을까. 여자는 스스로 나약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혼해서도 여전히 아이처럼 의존적이고 무지해서 부당함이 뭔지 몰랐고,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부딪쳐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몰랐다.”(53쪽)고 밝힌다. 여자는 꿈 공부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독립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남편은 이혼을 거부했고, 대신 여자의 세 가지 제안을 받아들여 2년간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은 짧은 졸혼 기간을 거쳐 지금, 인생에서 가장 평온한 때를 보내고 있다. 『며느리 사표』 단순히 한 여자의 독립 권유서가 아니다. 나 자신, 그리고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투고한 책이라고 들었다. 책이 나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2012년 여름, 제러미 테일러 선생의 꿈 워크숍을 수강했다. 내 꿈을 들은 제러미는 내 이야기를 글로 써야 한다고 했다. 강한 저항과 강한 울림을 동시에 느꼈고 결국 지금의 책이 되었다. 그 전까지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후 매일매일 일기를 썼고 2017년 봄쯤 『며느리 사표』 초고를 완성했다. 어떤 출판사에 투고해야 할지 찾아보는 중에 딸아이가 ‘사이행성’을 추천해줬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를 출간한 출판사였는데, 책을 읽어본 후 다른 책 리스트를 쭉 보니까 신뢰가 갔다. 물론 다른 출판사에도 투고했는데 사이행성이 가장 먼저 연락이 왔다. 

지난 설 명절에 <한겨레21>에 기사가 크게 나왔다. 한동안 크게 이슈가 됐다.

인터넷에 기사가 올라간 날, 연락을 엄청 많이 받았다. 인터뷰, 특강 요청도 많이 왔고. 책에 대한 반응이 아직도 조금 믿기지 않다. 2월 중순 이후 정신이 좀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쓸 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50대 주부의 이야기,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기대하지 못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초고 제목도 『며느리 사표』 였나?

그렇다. 사실 책을 낼 때는 제목을 바꾸고 싶었다. 그런데 적절한 제목을 찾지 못했다. 조금 위험한 단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며느리 사표’를 쓰게 된 과정, 계기, 이후를 쓴 책이니까 써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주’는 필명인가?

원래는 가명으로 쓰려고 했다. 사적인 이야기들이 너무 많으니까. ‘꿈로바’라는 이름으로 블로그 글을 써왔기 때문에 ‘로바’로 쓸까 하다가, 성을 제외한 이름으로 정했다. 50년을 살다 보니, 그동안 나는 아버지의 모습 반, 어머니의 모습 반으로 살아온 느낌이 들었다. 본래의 나로 살고 싶은 마음에 이름을 썼다.

가족사가 많이 들어갔다. 남편, 두 아이들에게 초고를 미리 보여줬는지.

물론이다.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면 안 되니까. 너무 사적인 이야기는 뺐다. 책이 나온 이후에 아들이 “내 분량이 제일 적다”고 하니까, 딸아이가 “오빠, 이 책은 언급이 덜 될수록 좋은 거야”라고 했다. 남편은 “책에 나온 이야기들이 사실이니까 괜찮다”고 했다. ‘나쁜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니까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대가족 장손의 아내로 수많은 친척, 손님들을 맞이하며 ‘며느리’로 23년을 살았다. 8년을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분가를 한 후에도 매주 주말마다 시댁을 가야 했다. 남편에게 외부 약속이 생기는 날에도 아이들과 함께 시댁을 갔다.

우리 가족 모두 시부모님에 대한 의존이 뿌리 깊게 있었다. 분가했다가 다시 들어간 집은 시부모님의 아랫층이었다. 시댁에 함께 살 때 남편에게 집안일은 다른 행성의 일이었다. 신혼 초 남편이 집안일을 해보도록 여러 번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 결혼 생활을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몰랐기에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거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나의 결혼 생활은 ‘좋은 시부모님 밑에서 풍족하게 살고 있는 복에 겨운 며느리’였지만, 나는 답답하고 힘들었다. 어떠한 시간, 장소에도 나는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며느리 사표』 를 쓰기 전, 이혼을 선언했을 때, 남편은 변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결심을 지켰다. 2년간 부부 상담도 받았고.

1년 약속했던 부부 상담을 남편은 2년을 다녔다. 처음엔 어쩔 수 없다는 듯 응했던 상담이지만, 남편은 차츰 부부 문제만이 아니라 직장의 어려움도 풀어내고 다른 관점으로 상담을 보면서 도움을 받았다. 1년 정도 상담을 했을 무렵, 평행선을 달리던 우리의 대화에 문이 열렸다. 우리는 상담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 1회 부부의 날을 가졌고 각자를 존중했다. 상담이 필요한 건, 제3자의 관점에서 우리의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요구한 제안(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사생활을 존중하고 며느리라는 의무감 없이 살겠다 등)이 일찍부터 이뤄졌다면 ‘며느리 사표’를 쓸 일도 없지 않았겠나.

그렇지만 이 역시 내가 선택한 결과였다. 나도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남편은 내가 이혼하자고 했을 때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거다. 그 전에 했던 이야기들은 귀담아듣지 않다가 그제야 현실로 받아들였다. 남편이 내게 함부로 대한 게 아니었다. 남편은 부부는 한 몸 같은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곧 내 생각이라고 여겼다. 『며느리 사표』 를 읽으면서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아내를 한 개인, 한 사람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는 스스로가 판단하지 않고, 내 입장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준다. 모든 걸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각자의 모습으로 존중하고 있다.

관련 책
며느리 사표
며느리 사표
저자
영주
발행일
2018.02.12
출판사
사이행성
가격
정가 13,800원보러가기

놓치지 말아야 할 태그

#자취생으로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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