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병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조회수 2021. 3. 26.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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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이’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비틀대서 ‘비틀이’였다. 사람들은 여자가 대낮에 만취해 돌아다닌다며 손가락질했다. 맨 정신인 사람이 비틀거릴 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대단한 오해였다. 비틀이의 정신은 그 누구보다 맑고 또렷했다.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척수 소뇌 변성증’. 25살 여대생이던 ‘비틀이’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 희귀 유전질환이었다. 

소뇌는 몸을 움직이고 자세를 유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소뇌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이 질병에 걸리면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다. 비틀거리며 걸을 수라도 있는 건 오히려 병의 기세가 미약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증상이 심해질수록,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 사라진다. 말하기. 걷기. 보기. 음식 삼키기. 이 모든 것이 어려워진다. 종국에는 호흡 기능에도 이상이 생겨,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진단다. 그때가 생이 다했다는 신호다.


병마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에 걸쳐 전신을 잠식한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그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정신만큼은 또렷하다는 것이다. 내 몸의 통제 권한을 잃는 순간을 분명하게, 그러면서도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거다.

치료제는 없다. 완화제가 있긴 하지만, 초기에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오늘의 내가, 남은 삶 중에 가장 건강한 모습이다. 

이 영상은 칠흑 같이 어두운 앞날을 기다리면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한. 그 하루에서 얻은 티끌 같은 보람으로. 태산 같은 남은 인생에 맞선 비틀이의 이야기다.

비틀이를 만난 건 3월 중순쯤이었다. 그는 취재대행소 왱에 메일을 보내 자신이 앓는 병을 알리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병에 걸린 29살, 본명은 OOO이고 유튜브에서는 비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유튜버 비틀이
“(척수소뇌변성증은) 우리 몸에 근육 보고 움직이라고 명령하는 기관 중에 제일 위가 소뇌라는 기관인데 그 소뇌라는 기관이 망가져서 마음대로 근육을 움직일 수 없는 병이에요."

-유튜버 비틀이
"나중에는 전신마비 상태까지 가게 되는 병인데 이게 처음에는 손발에 힘만 빠지고 이런 증상으로 시작했다가 이제 점점 병이 진행되면 눈동자, 시야를 보는 것도 눈이 떨리기 때문에 시력도 안 나오고. 그리고 글씨를 쓰기도 어렵고,

그리고 그 펭귄처럼 또 이렇게 뒤뚱거리면서 걷고 아니면 술 취한 것처럼 걷게 됐다가 이제 휠체어를 타다가 나중에는 침대까지 가게 돼서 결국 근육이랑 심장 근육까지 말을 안 들어서 죽게 되는 병이에요.”

-유튜버 비틀이
“근데 이 와중에도 정신은 마지막까지 멀쩡하기 때문에 움직이고 싶지만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서 몇 년을 지내다가 죽게 되는 병이에요”

-유튜버 비틀이
“정말 평범한 여대생으로 살고 있었어요. 근데 어느날부터 계단이나 내리막길을, 원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갔던 곳에 아무도 밀치지 않았는데 몸이 앞으로 휘청하고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것들이 빈혈이나 아니면 디스크 이쪽이라고 생각을 해서 동네 의원을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그런 거 아닌 것 같고 그냥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저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유튜버 비틀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증상이 더 심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무도 밀치지 않았는데 경사가 별로 지지도 않은 곳에서 내려가다가 넘어진다든지 증상이 많이 심해지니까 저도 너무 불안하고 그래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그때 알게 됐어요. 이 병에 걸렸다는 걸요”

-유튜버 비틀이
“하.. 진짜 너무나 청천벽력이었던 게,

처음에 진단을 받았을 때 선생님들은 현실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계시니까 마치 시한부 선고를 하는 것처럼 이렇게 말씀하세요. 지금 걸을 수 있을 때 가족들이랑 좋은 추억 많이 남겨놓고 그리고 먹을 수 있을 때 맛있는 거 많이 먹어 놓고 해라 이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유튜버 비틀이
"이게 목숨은 안 끊기는 거지만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게만 되는 거잖아요.”

-유튜버 비틀이

비틀이가 척수소뇌변성증 진단을 받은 지는 햇수로 4년. 지금은 병의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한다. 중증 환자들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비틀이의 일상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일단은 아무리 낮은 곳이라고 해도 도로에서 인도로 올라가는 이 조그마한 턱도 뭔가 붙잡을 게 없으면 올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솔직히 말해서 병 걸리고 나서 공원이라든지 경사나 계단이 잘 없는 구조는 가끔 가는데 시내에 나와서 하고 이러는 거는 거의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손도. 이제 그 손에 힘이 없고 떨리기도 하고 막 그러니까. 물건 떨어뜨리고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 병 걸리고서 쇼핑도 거의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야가 막 이렇게 떨리니까 메뉴판 같은 거는 당연히 안 보이고. 지하철 같은 거 탈 때도 역 이름이 똑바로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앉을 자리가 있는데도 (자리에) 앉으면 역 이름이 안 보이니까 아무리 먼 거리라도 그냥 문 앞에서 서서 역을 보려고 그런 경우도 많고”

-유튜버 비틀이

무엇보다 힘든 건 결론이 정해진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오늘보다 내일이, 그보다 그 다음날이 더 힘들 삶 말이다.

“(병에 걸리기) 그전에는 미래에 대한 이런 계획 같은 것도 제 나름대로 세워놓고 그런데 이 병을 알고 나니까 드는 생각이. 이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내가 지금 여기서 뭐 돈을 번다고 해서 나중에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앞으로. 10억 원이 있든 1조가 있든. 이 병을 못 고치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돈 벌고 이러는 거에 대해서 되게 많이 포기를 했던 것 같아요”

-유튜버 비틀이
"이게 차라리 한 방에 이렇게 됐으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금씩 적응을 하고 할 수 있을 텐데. 조금씩 무너져 가는 거잖아요 이게 조금씩 심해져 가는 거니까.

이게 오늘 걸을 수 있었던 일을 다음번에 못하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환자분들이 이 병을 앓고서 한 절반 이상이 자살을 한데요."

-유튜버 비틀이
"나중에는 내 손으로 죽고 싶어도 못 죽는 거죠. 그래서 가족들 부담이라도 덜어주려고 네 죽을 수 있을 때 자기 손으로 죽기라도 하는 거죠. 가족들 부담 덜어주려고.”

-유튜버 비틀이

그래도 비틀이는 내일이 두려워 오늘을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말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살기로 결심했다. 유튜브도 그래서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 병에 대해서 잘 모르시니까. 술 취한 사람이라든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하시는 부분이 많아요.

제가 유튜브를 해가지고. 구독자님들이나 뭐 보시는 분들이 한 분이라도 이 병에 대해서 알고 하면 환자들이 받는 오해가 좀 줄어들지 않을까. 좀 더 나아가서 나중에 혹시라도 치료제가 나온다면, 가격이 솔직히 희귀병은 너무나 (약) 가격이 높거든요. 그래서 보험 급여화를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유튜버 비틀이
“제가 원래는 사람들하고 진짜 벽을 쌓고 살았어요"

-유튜버 비틀이
"이 병에 걸리고 나서. 왜냐하면 사람들한테 일일이 이 병에 대해서 설명하는 게 너무 버겁더라고요. 사람들이 저를 그냥 보기에는 전신마비라고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힘들어 보이지 않으니까.

약간 어르신들이나 그런 분들을은 근력 문제나 의지의 문제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런 오해를 너무 많이 받아가지고. 거의 밤마다 날마다 울었어요. 그냥 나는 빨리 막말로 빨리 목숨이라도 끊기면 가족들한테 부담이라도 되지 않을 텐데 이거는 목숨도 안 끊기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나 절망스러운 거예요. 그래도 내가 나보다 상태가 안 좋으신 분들이 훨씬 너무 많은데. 그분들은 알리고 싶어도 못 알리는 거예요 병을.

그러니까 나라도 지금 내가 팔 차 움직이고 할 수 있으니까 그래.. 마지막으로 이거 내 모습을 찍어서 그 영상을 알려주자”

-유튜버 비틀이

오늘의 인터뷰는 미래의 비틀이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만큼 노력해서 이만큼까지 결실을 맺었던 거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고 싶어요. 이게 병이 진행하면서 계속해서 할 수 있었던 것을 잃어가고 있으니까 성취감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내가 뭔가 해냈다는 그런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근데 제가 나중에 보면 아마 지금보다 더 성취감이 없어가지고 더 우울한 상태일 텐데. 그때 이 영상을 보면 그래도 내가 팔 다리 움직이고 하고 있을 때 이만큼은 노력해서 이렇게 나와가지고 인터뷰도 하고 말도 하고 했었구나."


-유튜버 비틀이
"그래.. 너는 너는 이렇게까지 노력했으니까 너무 그렇게 우려하지 말라고. 그말을 해주고 싶어요”

-유튜버 비틀이

비틀이는 이날 인터뷰를 실명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끝마칠 때쯤. 실명을 내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의사는 혈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같은 유전병을 앓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자신의 유전병 이력이 혹여나 가족과 친척들에게 흠결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약 없는 삶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속에도, 비틀이는 내가 아닌 남이 괜찮냐고 묻는다.

보통 척수소뇌변성증 환자발병 5년차쯤 접어들면서 휠체어를 탄다고 한다. 비틀이가 비틀댈 수 있는 시간도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날의 인터뷰는 더없이 소중하다. 먼 미래. 비틀이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 찾아왔을 때. 이 영상을 보면서 너의 아름다웠던 모습과 우리의 응원이, 영원히 재생되고 기록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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