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취재대행소 왱

40년 전 한국에서 실제 벌어졌던 소름돋는 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44,331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40년 전 5월,

 대한민국에선 소름 돋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매년 5월 18일이 되면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오지만 이 영상은 조금 다릅니다. 



그땐 해지 됐어요. 조용했어 모두.

우리 아기가 안 들어왔는데 12시가 넘으니께 총소리가 나고 탱크 소리가 나고 난리더라고. 그래서 내가 오메 우리 애기 나가서 안 들어왔는데 이거 뭔 일일까 왜 이런다요 뜬금없이 왜 이런다요. 내가 나가려니까 못 나가게 해요.

그래갖고 마당에서 동동동동 다리를 구르고 있었어 내가.

우리 아기 찾으러 다니다가 여기 본관 도청 본관 있거든요 그 앞에 애기들 줄줄이 여섯인가 다섯인가 누워가지고 있어. 걷어보니까 옷도 하나도 없고 빤스도 안 입혀 놓고 홀짝 벗겨놓고 얼굴이 아무것도 없어요. 얼굴 없어서 너덜너덜하니 살떼기만 있는 것 같아가지고 이것은 우리 아기 아니라도 우리 아기 없다고 없다고 그라고 찾으러 다니고 있는디...

한 열흘이나 있응께 망월동에 다 묻히고 유골이 세 개 있는데 한 번 거기 가보세요. 학생 같은 시신이 하나 있습디다.

가보니까 여기서 본 애기가 그 애기에요. 이 애기 아니라고요. 벌레가 이런 구더기가 드글드글하고 떨어져. 거기서도 못 찾았어요. 그래서 22년간을 행불자로 찾으러 다녔어요. 내가.....

묘를 팠는데 아무 것도 없어요. 닭 목 쪼가리 하나도 안 나와 거기서. 누가 그냥 맨살로 묻어 버려가지고. 임자가 없으니께.

그것이 이렇게 한에 맺히고 이렇게 가슴이 아파서 죽겠어요.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내가. 내가 너 옷 하나도 못 입혀서 맨땅에 다가 그 하얀 살을 다 썩혀버려서 기가 막히고...

내가 니 애미 아니다. 엄마라고도 하지 마라 이러지 혼잣말로....


광주 시내, 적십자, 기독교 병원, 전남대, 조선대 다 다녔죠. 다녔는데 어디서 찾았냐면 도청에 가니 내 기억에 시신이 38개인가 있었을 거예요.

거기서 제가 아버님을 찾았죠. 얼굴이 함몰이 되어 있고...

아버지상을 치러야 하는데 타지에 사는 가족이 전부 연락이 안 됐습니다.


 나중에 형과 얘기를 해보니 통신 연락이 다 통제돼서 광주로 들어오질 못했던 거였습니다.


영훈씨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부모님 생각이 더 많이 나지 않습니까.

아버님한테 불효를 했던 것이 제일 마음에 아파요. 꿈에서 한번 뵙자고 해도 나오지를 않네요.


부대 내에 도는 소문을 듣고 ‘내 고향 광주에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생각했습니다. 걱정이 됐지만 전화나 통신이 두절돼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동생이 숨졌다는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계남씨의 동생은 동국대 신입생이었는데 휴교령이 나서 광주 집에 내려왔다가 봉변을 당했습니다.


 동생은 권력에 눈이 먼 사람이 공권력을 동원해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자 마지막까지 약자들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계엄군이 도청을 마지막으로 진압한다고 하니까 도청에 시민수습위원회에서 여성분들은 전부 다 집으로 귀가하도록 했어요. 제 동생이 그 여성분들 열 한명 정도를 보호하려고 총 메고 도청 뒤쪽으로 집집마다 문 두드렸는데 마지막에는 동명교회 목사님이 교회 문을 열어줘서 거기다 다 데려다주고 제 동생은 도청으로 갔대요. 여성분들이 절대 가지 말라고 너 가면 죽음이니까 가지마라 그랬는데 제 동생은 계속 가서 상황보고를 해야 한다고 해서 거기를 다시 갔죠.


어느 날 한 사람이 한양임 할머니에게 

“돈을 주면 자식을 찾아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할머니가 돈 50만원을 건네자 그는 아들이 군 영창에 잡혀있다는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아들을 영창에서 빼내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애 써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때가 늦었습니다. 얼마나 머리빡을 때려서 머리를 병신을 만들라고 머리를 치니까 그 원인으로 해서 세상을 떴습니다.....


총 짊어진 사람 세 사람이 앞에 딱 섰어요. 총을 팍 쏴버려요 공수부대가.

아들 둘은 멀리 도망간 것을 봐놔서 그나마 괜찮겠다 싶은디 우리 딸이 죽은 것 같아요. 우리 딸 이름 부르면서 있는데 아 총이 이렇게 지나가 버려요.

총에 맞아버리니께 내가 막 보리밭에서 기다 어쩌다 정신을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안전핀 다 끌렀어요. 땡기면 총알이 나가게끔. 기관총 소리가 막 나는 거예요 기관총 소리가.

걔들이 오면서 막 총을 쏘는데 ‘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갈기고 온 거예요. 그 속에서 동지들이 몇 명이 돌아가셨는지 몰라요. 저는 2층에 있었거든요. 나무를 타고 내려가니까 밑에서 얼마나 맞아버렸어요.

솔직히 거기서 두려운 마음도 있었어요. 왜 안 두렵겠어요. 생각을 해 보세요. 그때 당시 20대 때. 얼마나 젊은 청춘 아니에요.

제 여자친구는 배가 뽈록했어요. 몇 개월인지는 몰라요. 그런 상황에 제가 가서 있었던 거예요.” 이 모든 비극의 중심엔 전두환이 있습니다.

작성자 정보

취재대행소 왱

    실시간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