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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캐슬의 원조, 사교육 시장을 만든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사교육 시장, 소비하는 부모와 학생만의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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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상파 프로그램 중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JTBC <스카이캐슬>.


이 드라마는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코디, 학원, 과외 등의 사교육 시장에서의 여러 계층의 부모와 학생, 사교육 종사자들을 등장시켜 한국 사회의 면면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교육에 대한
비난은 학부모가
희생은 아이들이

사교육 시장을 만든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없나

그러나 '스카이캐슬'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어디 사교육 시장을 소비하는 부모와 학생일 뿐일까?


'강남 엄마'들로 대표되는 사교육의 이미지는 대단히 기형적인데, 사교육 시장을 만든 '생산자'에 대한 비판은 그보다 늘 가려져있었기 때문이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우리는 다시 386세대가 한창 취업하던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90년대엔
회사를 골라서 갔다면서요?”
그러나 모두에게 축복이
내려지지는 않았고

출처한겨레 신문 91.7.20일

"90년대엔 회사를 골라서 갔다면서요?”라고 물으면, 대개는 멋쩍은 웃음을 흘릴 것이다. ‘3저 호황’의 시대에 취업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쏟아지는 듯한 축복조차 모두에게 내려지지는 않는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1991년 7월, 학원수강이 실질적으로 전면 허용된다. 이때부터 학교 밖으로 몰려나오는 중고생들을 거둬들이기 위한 학원들이 생겨났고, 학원 강사들이 사교육 기관에 대거 충원되었다.

경제 호황 속에서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던 대학 졸업자들은 학원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누가 사교육 기관의
강사가 되었을까?

학생운동을 하면서 반(反)체제 정서를 품었던 졸업생 중 일부는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일하거나 민간 회사에 입사해 회사원이 되는 것을 좀처럼 내켜 하지 않았고,


그러한 기관들 역시 이들을 맞기 거북해했다. 그런 이들에게 후학을 가르칠 수 있는 ‘학원’이라는 곳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춘 직장이 돼주었다.


스카이캐슬의 원조 전설의 학원가
1. 메가스터디의 전신
전설의 학원가 스토리
60년대생, 85학번, 386세대의 포진

메가스터디의 전신
강남 대일학원
조동기, 손사탐까지

한때 주식 시가총액이 2조 원을 웃돌던 ‘메가 스터디’의 전신은 ‘강남 대일학원’으로, 1993년 서울 대치동에 터를 잡았다.  


1990년대 강남 대일학원의 대표강사로 명성을 날린 사람이 ‘조동기’다. 85학번으로 고려대 총학생회 집행위원장이자 전대협 2기에서 활동했던 그는 1998년엔 자신의 이름을 딴 ‘조동기국어논술학원’을 차려 수십 개 가맹점까지 거느리며 규모를 키웠다. 

같은 학원에서 강의를 하다 그 후신 격인 메가스터디를 만든 건 ‘손사탐(손선생 사회탐구)’이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서울대 81학번 손주은으로, 그는 과거 노동운동의 길을 걷기도 했다.


스카이캐슬의 원조 전설의 학원가
2. 길잡이학원 비상교육
85학번이 만든 학원들은
현 사교육의 한 줄기를 이루고

길잡이학원의 정청래
비상교육의 대표 양태회

출처선거일 2004. 04. 15. 제17대 국회의원선거 서울 마포구을 국회의원 정청래 선전벽보. 그의 이력중에 <길잡이 학원>창립이 있다.

정청래도 건국대 85학번의 학원장 출신이다. 1989년 미 대사관저에 방화 시도까지 했던 정청래 전 의원은 1994년 ‘길잡이학원’을 차려 큰 성공을 거둔다.


처음 학원 사업에 손을 댈 때 그 곁을 지켰던 이가 고려대 85학번 양태회이고, 현재 그는 2002년부터 사교육 출판 시장의 큰손인 ‘비상교육’ 대표를 맡고 있다.


스카이캐슬의 원조 전설의 학원가
3. 청산학원, 유레카논술학원
전대협의 배후로 지목됐거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활동을 하다가 만든

청산학원
유레카논술학원

출처청산학원 올패스교육

두 사람은 1980년대 후반 전대협의 배후로 지목됐던 ‘자주민주통일’이라는 조직을 이끌었다. 청산학원의 대표강사 출신 장민성은 1984년 성균관대에 입학해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노맹)에서 활동하다 옥살이를 한 전력이 있다. 

출처유레카국어독서논술면접

장민성은 청산학원을 거친 후 ‘유레카논술학원’을 차려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는데, 함께 손을 잡았던 이가 같은 사노맹 출신의 성균관대 82학번 박홍순이다. 


사교육 시장의 기틀을 닦았던
386세대의 성공은
귀감이 되는 스토리로 알려지고

사교육 시장의 거대화에 대한
책임은 없어

"한국 사회 모순에 편승해서
원래 1억 5천만 원 벌 사람이
15억 원을 버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많이 버는 것은 문제가 있다’, ‘너무 많은 돈이 사교육 시장으로 흘러든다’라는 생각은 있었죠.

그래도 이것은 비판이 정교화되기 전이에요. 그런데 2004년 그만두고 나서보니까 문제가 심각하더라는 거죠.

(중략)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기회의 평등이라는 최소한의 평등 원칙에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지선, 2008)

서울대 88학번으로
대치동 스타강사가 되었다가 학원가를 떠난 이범 교육평론가의 말

386출신 스타강사의
성공이 남긴 것
호구지책으로 들어갔던
사교육 시장...

대한민국 사교육
시스템을 만들다

386 출신 스타강사들의 성공은 ‘학원 붐’이라는 시대적 조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 음 사교육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호구지책 때문이었을지 모르나, 이후엔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이 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입시가
'전략'이 되었나

386세대의 진짜 전공?

해마다 분화되는 대학 입학전형은 학원가의 ‘입시 전략’을 필수로 만들었다. 독재정권을 상대로 주도면밀하게 싸움을 치러온 386세대의 진짜 전공, ‘전략ㆍ전술’이 빛을 발하게 된 것.


교육시장의 논리에서
시대는 386을 원했고,
386은 시대의 요구에 호응했다

개인의 안위를 위해 학원에 발을
담근 게 아니라고 했고, 사교육 시장은 자신들이 ‘키운’ 게 아니라 의도치 않게 ‘커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사교육 시장의 성장에 발맞춰 병세가 깊어진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에 386세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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