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프리랜서 여성이 비혼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
30대 프리랜서 여성이
비혼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
“너는 왜 비혼이야?”
비혼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언제 비혼을 결심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중학생 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친구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결혼’은 빠지지 않는 화제였고, 나는 그중 유일하게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을 거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항상 돌아오는 말은 똑같았다. “저런 애가 제일 먼저 결혼하더라!”
나는 당신이 결혼주의자인
이유가 궁금하지 않다!
그런 불길한 예언 속에서도 나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고, 마침내 페미니즘을 만나 ‘비혼’을 스스로 정체화하기 이르렀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비혼이란 여전히 낯설고 신기한 모양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는다. 너는 왜 비혼인가. 그 이유쯤이야 백 가지는 넘게 댈 수 있지만 그냥 대충 둘러대고 만다. 그들이 질문을 던지는 진짜 이유는 궁금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의 의견에 반박하거나, 결혼을 강요하고 싶어 한다. 왜 내 삶의 방식이 논쟁거리가되는 걸까. 나는 그들이 왜 결혼주의자인지 묻지 않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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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에 얼마나 진심인지 확인하기 위해 굳이 K-드라마적 상상력까지 동원해야 하나 싶지만, 아무렴요. 마다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겨우 이 정도 신념으로 비혼 타령을 하다니. 유튜브에 전시까지 하다니!
여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비혼임을 밝히는 이유?
내가 스스로를 비혼이라 말하고 전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이 싫어서가 아니다. (물론 그 이유도 일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자꾸 드러내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기 때문이다. 투명인간 취급당하며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거나 제도 밖으로 밀려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비혼이라는 신념을 지킬 수 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 결혼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비혼이라 ‘말하기’를 포기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설령 결혼한다고 해도 이혼으로 인해 언제든지 비혼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은가. 내가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든 여성으로서의 내 삶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아무튼 비혼에 조금이라도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비혼 타령을 좀 해줬으면 한다. 어쩌다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어떤가, 지금 이 순간 비혼인 것을.
‘자기만의 시간’은
‘자기만의 집’에서 나온다!
‘비혼, 비정규직 여성인 내가 정말 집을 살 수 있을까?” 끊임없이 좌절하면서도, 절실한 마음으로 다시 일어나 전력 질주했다. 마침내 1억 원이 조금 넘는 목돈을 모아 수도권의 작고 오래된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내 삶은 더 나아졌을까? 안타깝게도 대답은 ‘아니오’다. 내 집이 생기면 보상처럼 따라올 줄 알았던 ‘더 나은 삶’은 모든 것을 놓은 후에야 찾아왔다. 느슨한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려 애쓰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들여다보았다. ‘자기만의 방’을 온전히 갖기 위해선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