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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지붕 수리를 위해 팔린 '세계 최고가 경매품'은?

조회수 2020. 4. 10. 09: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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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역사와 예술이 응축된 가장 진귀한 '채색 필사본'
히틀러가 광적으로 집착하고
나치가 끝없는 약탈을 일삼으며
컬렉션 수집에 열을 올린 필사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독일 남동부의 알프스 높은 곳에 위치한 베르히테스가덴. 1933년 여름, 히틀러는 그 도시의 오버잘츠부르크에 땅을 사 대피소 겸 개인 지휘소로 사용할 집을 짓는다. 그 후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영국 공군은 오버잘츠부르크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한다. 높은 압박감을 느낀 히틀러는 베를린의 자하 벙커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5월 4일 오후 히틀러의 베르그호프 옥상에 자유 프랑스의 깃발이 휘날렸다.


이후, 프랑스와 미군은 약탈당했던 자국의 보물과 나치의 보물을 전리품으로 챙겨 본국으로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베르히테스가덴 기차역의 지선에 세워진 여덟 량의 기차가 세워져 있다는 전보를 받은 프랑스 장교가 중세 필사본을 발견한다. 이를 발견한 장교가 중부 브리타니에 있는 보켄 수도원에 기증했다. 이곳은 중세 수도원으로 1790년에 폐원되었다가 1936년 돔 알렉시스의 지휘 아래 시토 수도자들에 의해 개원됐다. 


1967년 여름, 보켄 수도원의 예배당이 폭풍우 피해를 입자, 지붕을 긴급히 보수할 자금 마련을 위해 필사본을 루앙의 고서적상에 들고 간다. 고서적상 상인은 가격 감정을 위해 파리의 국립 도서관에 다시 조회한다. 그리고 사흘 뒤 이 필사본은 필사본 부서의 큐레이터인 마르셀 토마스와 조수 프랑수아 에이브릴 앞에 검사를 맡게 된다. 두 사람은 그 필사본이 오랫동안 실종되었던 『잔 드 나바르 기도서』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고작, 지붕 수리를 위해 팔린 중세본이 1919년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의 예이츠 톰슨 경매에서 세계 최고가를 기록한 책으로 밝혀진 것이다. 구매자는 파리에 사는 남작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로그가 사망한 뒤 딸인 알렉산드린 드 로스차일드에게 상속됐다. 그녀는 은둔해 사는 기인으로 엄청난 규모의 개인 서재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나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동안 그녀의 아트 컬렉션은 조직적으로 약탈돼 행방불명됐다. 그 후로 독일과 중부 유럽의 동굴, 소금 광, 성에 감춰진 무수히 많은 장물 속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이 책이 프랑스에 다시 나타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세계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잔 드 나바르 기도서』에
담긴
숨은 이야기!

출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잔 드 나바르 기도서』는 세로 7.25인치, 가로 5.5인치에 두께가 약 2.25인치 크기의 필사본이다. 이 책은 14세기 필사본으로 271개의 낱장, 108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었으며, 1780년경에 제본되었는데 판지 위에 황갈색 모로코 가죽을 씌웠고 가죽 위에는 정교한 도금 장식이 들어가 있다. 표지 안쪽의 면지 외엽은 진홍색 비단이고, 가장자리는 도금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처럼 화려한 외양 뿐 아니라, 기도서에 얽힌 슬픈 사연도 눈 여겨 볼만하다. 잔은 1305년에서 1316년까지 나바르 왕을 지냈고, 프랑스 왕루이 10세의 유일한 생존 자식이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녀는 겨우 네 살이었다. 어린 그녀에게 잔의 적통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되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혼외정사로 낳은 딸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또한 “살리족의 나라에서는 여자의 왕위 계승을 불허한다.”는 법의 권위에 의해 잔의 삼촌, 즉 루이 10세의 남동생이 프랑스 왕으로 즉위했다. 그 후 즉위한 삼촌이 후사 없이 죽었지만, 아버지의 사촌이 왕위 계승을 대신한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오직 장인에 손에 의해서만
글이 새겨지고, 화려함이 더해진 ‘필사본’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천 년 동안 중세의 지식은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졌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필경사, 삽화가들은 직접 그리고 쓰며 책을 엮었고 이것을 ‘필사본’이라고 한다. 따라서 필사본은 많게는 천 오백년 전 사람의 영혼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사본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하지만 중세의 필사본 장인들은 글씨 하나, 붓질 한 번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 그들의 땀방울이 맺힌 한 장 한 장은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아름답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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